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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wling for Columbia> 감상

by 허진혁 Oct 24. 2022

마이클 무어는 정직하다. 그가 비판하는 언론, 기업, 정치가보다 말이다. 그는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확실히 이 영화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득 담았음을 전달한다. 그는 화면 안에 등장해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인터뷰 대상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주도한다. 나래이션을 통해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분석을 지속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확고한 자기 주관과 생각을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감상자는 어떠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볼지 아니면 비판적으로 볼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긍정과 비판 둘 중 하나의 태도가 아니라 그 두 가지의 영역 사이의 어느 한 지점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점은 마이클 무어는 객관적이고 비정치적인 척 속이며 교묘히 편집으로 감상자가 특정 방향으로 사고 하도록 유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언론과 기업, 정치인은 여러 매체를 이용하여 대중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지속하며 특정한 이미지와 환상을 만들어 주입시키면서 대중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상당히 교묘해서 그들의 의도를 알면서도 빠져들 수 있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도 물들 수 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도 선동적이지만 그의 영화는 가면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中     


조지 오웰은 그의 저서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크게 네 가지로 제시했다. 그  중 네 번째는 ‘정치적 목적’이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그는 자신이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이 글을 읽고서 나는 그의 글에 백번 공감했다. 경험상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가 제시한 네 가지 동기- 기억되고 뽐내고 싶어하는 ‘순전한 이기심’, 낱말과 배열의 적절한 배열을 보며 느끼는 ‘미학적 열정’, 보고 알아내고 기록하고 싶은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 - 이 작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무어에게는 자신이 보는 미국 사회에서의 문제점을 파악해 그것을 폭로하고 주목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의 동기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즉 정치적 목적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특성상 영화는 정치적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세계를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다. 프레임 안에 어떤 장면을 담을지, 어떻게 촬영된 푸티지를 편집할지는 주관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도 너무나 편향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비판은 나의 생각으로는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에는 예술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 반영되고 영화라는 것은 주관이 개입 할 수 밖에 없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편향되고 선동적인 영화를 만드는 데 사실을 조작하거나 신빙성 있는 자료를 사용했는가에 대한 지적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료 조작과 신뢰할 수 없는 자료의 사용은 주관의 객관화와 객관의 주관화에 타당하지 않으며 이는 사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영화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태도와는 맞지 않는, 그래서 결점 많은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 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기사를 선택할 때도 자신의 정치적 태도와 상반되는 기사는 배재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시선과 부합하는 기사만을 선택적으로 보지 않는가. 자신의 정치적 태도와 맞는 기사를 보면서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강화하면서 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정치하는 입’을 가진다. 발언하는 입은 없고 음식이건 무엇이건 소비하는 입만 가지고 있는 인간은 동물일 뿐이다. 발언하지 못하게 하거나 발언하지 않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해야 하고 그럴 권리가 있다.


 다양한 의견 표현의 장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서 그쪽의 생각은 틀렸다고 단언하는 일이 거의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다. 다원화된 가치를 인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상대방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런 태도의 체화는 어려운 과제이다. 힘써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다큐멘타리 영화는 직설적이고 선동적이다. 엄숙하고 진지한 톤은 아니다. 재밌고 위트있고 풍자적으로 진행된다. 제목부터가 이미 풍자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이제 행복한 장면에 쓰이면 어색할 거 같을 정도로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 너무 잘 쓰이는 노래인 것 같다.


 감독은 예리한 시선을 통해 사태에 대해 분석하고 문제를 이슈화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논리를 펼치거나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한계라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는 감정적이고 행동적인 사회운동가이자 선동가이다. 그가 영화를 만든 목적은 이슈를 만들어내 대중들이 그 사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면서 뒤이어 커다란 사회운동으로 발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영화 <엘리펀트>를 본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어릴 시절에 보았지만 학교 안에서 총기 난사를 하는 장면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 대해서는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소년의 어머니가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는 내용의 책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볼링 포 콜럼바인> 영화를 보고 저 영화와 책이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미디어를 통한 대중 선동,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정경유착과 총기 문화의 문제를 과감히 분석하고 풍자를 곁들여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총기문제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그 문제의 시작은 미국 건국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 쫓겨온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나라가 없자 스스로 총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에게 ‘개척자 정신’이라는 신화를 부여한다. 이 ‘개척자 정신’ 신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되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나라가 건국되고도 이 문화는 남아있어서 ‘수정 헌법’의 기틀이 된다. 이로써 이 신화는 상당히 강력해져서 그 시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신화를 당연히 믿도록 교육받는다. 이 신화를 이용해 기업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채웠고 심지어 무기를 팔기 위해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도 타격을 받았지만( 9.11테러 등) 오히려 그 사건을 이용한다. 언론 등 여러 매체를 이용해 미국인에게 일상적인 공포심을 심어 무기를 팔고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고 신화로 그 추악함을 신성화하고 정당화한다. 공포심에 물든 미국인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신화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은 쉽게 총을 들고 범죄를 일으킨다. 이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찰튼 헤스턴은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 ‘개척자 정신’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신 신화에 대한 열성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우리나라 예로 들자면 박정희 신화를 열성적으로 믿는 ‘박사모’의 모임 같은 느낌이다. 찰튼 헤스턴은 어쩌면 미국 총기협회 와 군수업체 그리고 정치인에게 이미지로 그리고 방패막으로 이용되고 있는 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흑인 문제도 총기 문제와 그 결이 다르지 않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견지하듯이 흑인에 대한 차별 문제도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흑인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인들이 종교적, 과학적 신화를 만들어냈고 그 신화는 미국 문화에 잘 스며들었다. 노예 해방 후에도 그 신화는 유지되었고 차별적인 법률을 만들어냈다. 그 둘은 원인과 결과로써 서로를 강화하였고 그 결과 흑인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흑인은 멍청하며 폭력적이라는 문화적 편견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흑인들도 자신이 열등하다고 내면화하게 되었다. 문화적 편견은 흑인들의 의식 발전을 제한하였고 차별적인 법률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견고한 사회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영화에도 그 악순환이 남긴 사람들의 인식과 편견이 드러난다.


<Cops>라는 TV 프로그램에는 범죄자 흑인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폭력적이고 무식하게 그려진다. 범죄를 일으키는 흑인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악순환 때문이다. tv 매체가 문화적 편견을 재생산하고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비단 하나의 매체가 아니라 여러 매체에서 이런 편견의 재생산과 확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이클 무어가 <Cops> 제작자를 찾아간 것은 이런 악순환에 대해 말하고자 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요즘에는 난민과 관련한, 또한 이슬람교 신자에 관련된 악순환의 고리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슬람교 신자 및 난민과 관련된 차별적 법을 제정하고 있고 그들에 대한 서구 사회의 사람들의 경멸과 편견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느낀다. 여러 대중 매체들은 그 편견과 차별의 확산을 돕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정말 기가 차는 것은 애초에 난민이 발생하게 되고 급진 이슬람교가 성전을 외치게 된 배경에는 서구 세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 번 피해자는 역사적으로 계속 피해자가 되는 불편한 진실이 깔려있다.


 영화 중간에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에서 캐나다 시민은 이런 말을 한다. “미국인은 자물쇠가 외부인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반면 캐나다인은 자물쇠가 우리를 막는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트럼프가 세우려고 하는 멕시코 장벽이 생각났다. 유시민의 말처럼 역사적으로 외세를 두려워하는 국가는 성벽을 세웠다. 성벽을 세운다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이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시황은 유목 민족을 두려워해 만리장성을 세웠으나 정작 제국의 붕괴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성벽을 쌓으며 외부만을 경계했지만 실제로는 내부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멕시코 장벽은 미국이 패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이 외부의 힘이든 내부의 힘이든 간에 말이다.


 성벽은 차별과 편견 그리고 단절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벽을 허물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있는 성벽과 다른 존재 사이에 만든 성벽도 말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성벽, 개인과 사회의 성벽, 국가와 국가 사이의 성벽, 타 민족과 종교 사이의 성벽을 말이다.


 우리는 선동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육을 벌이며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우리가 공통의 어떤 것을 믿을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사피엔스>에서는 ‘상상의 질서’라고 일컫는다. 미국의 개척자 정신도 사람들에게 공통분모를 부여해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신화이다. 우리는 ‘상상의 질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중요한 점은 ‘나는 왜 믿는가? ’‘내가 믿는 것이 옳은가?’ 되물어보는 성찰이다. 독일 국민들이 실제로 폭력적이고 잔인해서 히틀러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선동당했다. 라디오와 tv, 영화와 연설을 통해 히틀러가 만들어낸 경제 신화와 민족주의 신화를 믿으면서 말이다. 저 정치인이 하는 말이, 저 언론이 내는 보도가 믿을만한 자료에 기초한 것인지, 근거가 명백하며 논리의 비약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거시적 입장에서 언론과 정치인이 어떠한 정치적 선동을 이끌어내려 하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가십거리에 신경이 팔려 우리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해버리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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