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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029 공감의 배신

by 평범한 직장인
아주 오래전 극장에서 "위 워 솔저스"라는 영화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영화의 내용이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제 마음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영화는 베트남전의 미군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참전 용사 배우자의 행적이 부곽 되면서 전쟁의 아픔과 절실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이 지점이 영화 내내 거슬렸습니다. 저의 공감의 시선은 영화에서 아무런 서사가 없었던, 악당으로 묘사가 되어있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전 용사 아내의 절실한 기도는 신에게 적을 잘 죽이도록 청하는 것인지, 아무리 봐도 압도적으로 좋은 환경에 잘 살고 있어 보이는 미군이 왜 불쌍한 것처럼 나오는지 계속 의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베트남 전은 미군의 침공에 의한 전쟁이었으며, 미군이 침공을 하지만 않았으면 저런 절박한 상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같은 공감이지만 그 방향에 따라 정 반대의 결론이 나오며, 방향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꽤 오래전에 이번 글의 내용을 생각하고 "공감의 배신"이라는 단어가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 놀랍게도 이 제목의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감을 비판한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똑같은 작명을 했을 줄이야. 괜히 베낀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다른 제목을 쓰려 생각해 봐도 이만큼 어울리는 제목이 없어서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내가 먼저 썼다고 우기는 건 아니고, 단지 그 책을 읽고 쓴 건 아니라는 것만 좀 알리고 싶어서 사족을 달았습니다.




b9c19a4be7d841e57b8eb39414ce6bf9.jpg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자까)의 한 장면

공감 능력은 한동안 꽤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능력이라 여겨졌고, MBTI가 유행하면서 T와 F의 차이로 많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원시 시대에 다른 동물보다 약한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로 자신의 집단에 대한 공감과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를 통해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공감의 반경을 넓혀 약자를 배려하고, 동물권을 존중하기도 합니다. 이를 다른 생명체와 다른 인간만의 위대한 능력으로까지 평가하기도 합니다.


트롤리 딜레마를 나타내는 그림

공감 능력의 핵심은 입장 바꿔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명을 희생시켜서 5명을 구할 수 있다면 1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옳다고 답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희생당하는 1명에 감정을 이입하여 망설입니다. 희생당하는 1명이 아기라면 더 크게 망설이게 될 것입니다. 최근 실험에서 쥐에게도 공감 능력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는 것으로 봐서 공감 능력이 인간만의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출처='어쩌다 어른' 방송 캡처> 출처 : 이뉴스투데이(http://www.https://www.enewstoday.co.kr/)

하지만 공감 능력에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그 반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내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은 매우 슬픈 기분이 들지만, 미국에 제임스 씨의 죽음에 비통해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반경을 넓혀도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없으며, 할 수 있게 된다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때문에 강한 공감은 편 가르기로 될 확률이 높습니다. 내 집단에 대한 강한 공감은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로 발현되는 모습을 사회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게 동조했던 것은, 그들이 모두 희대의 악인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 조건이 형성되어 자신의 집단에 대한 동조와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가 극대화되었을 뿐입니다. 배타적인 종교, 남녀 혐오 문제,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 모두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키는 비논리로 인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뿌리에는 공감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의 생존만을 유지하면 생존에 유리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 사회는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세상은 넓고 빨라져서 COVID-19를 어느 생물보다 빠르게 전 세계로 퍼드릴 정도로 세계는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단지 자신의 집단만을 위한 태도로 제도가 결정되면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고, 이는 종의 생존에 결국 불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사회 제도를 일시적인 분노에 휩쓸려 바꾸는 것은 사회 구성의 논리를 흔들어버려 더 혼란스러운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공감은 근시안적인 생존 욕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을 보완해 주는 기능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오히려 집단의 구분으로 빠른 파멸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표지 그림 : Red panda AI, Prompt : Draw a picture of people's brains all over the world connected in a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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