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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뒤에서

성장의 발견

by 평범한 직장인

이 녀석은 완전한 물속성이다. 어린이집에서 물놀이를 하면 젤 신나게 논다 하고, 아빠랑 목욕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겁은 많아가지고 눈이나 귀에 물이 조금만 들어가면 울고불고 난리이지만, 물속에 있으면 이내 잊고 다시 물놀이에 집중한다.




제주도에 풀빌라는 이 녀석에게 완전 천국이었나 보다. 현장으로 복귀하고 아기가 "제주도"를 외치며 끝없이 제주도로 출발하는 시늉을 하는 영상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물에서 보내더니 겁쟁이도 자신감이 생긴다. 구명조끼를 거추장스러워해서 벗기고, 대신 내가 꼭 안아주며 물을 누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빠를 꼭 안고 즐기던 아기의 자신감은 점점 커져간다. 수심이 1.2m 밖에 되지 않는 수영장이지만 아기가 당연히 혼자 수영할 수는 없는 깊이다. 그럼에도 익숙해진 아기는 혼자 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자꾸 손으로 내 팔을 뿌리치려 한다.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닌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다.




아직 많이 어리지만 가끔 나를 뿌리치며 혼자서 해내려 하는 뒷모습을 보면 좀 울컥한다. 아기들이 쓰는 발로 미는 자전거가 있다. 자전거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바퀴만 있고 페달이 없다. 부모가 잡을 수 있게 긴 손잡이도 있다. 잘 타지 못해 언제나 잡아줘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폭주를 하기 시작했다. 양 발을 믿을 수 없이 빨리 놀리며 빠르게 전진한다. 뒤통수만 봐도 신나 보인다. 또 하나 성장한 아기의 뒷모습을 보며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처음 뛰던 뒷모습, 이제는 혼자서 앞서 걸어 집 문 앞까지 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부모의 역할은 조금씩 줄어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아기가 옆에 걷고 있을 때 그렇게 주의를 많이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는 아기가 걸으면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는데 말이다. 아직은 부모의 역할이 너무나도 크지만, 이렇게 조금씩 줄어들다가 어느 날 보내게 되겠지. 힘들다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고자 한다.




수심이 0.6m 밖에 되지 않는 아기 수영장에서 안전장비를 벗은 아기는 아빠의 손을 뿌리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벽을 잡고 걷더니 드디어 손을 떼고 한발 한발 걷는다. 뿌듯함에 취한 아기의 표정은 전례 없이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감이 차오르던 그 순간 아기는 발을 헛디딘다. 아기의 자신감에 찬 얼굴을 즐겁게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라 아기를 잡아 들어 올린다. 자신감 있는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아기로 돌아와 울음을 터트린다. 이때다 싶어 물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아기를 안아 달래며 물에서 나온다. 생각보다 빨리 울음을 그친다. 다시 물에 들어가기 무서워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만든다. 아기는 "또"를 외치며, 자신이 빠진 경험조차 즐긴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아기는 또 한 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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