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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화 Apr 07. 2021

0. 지금 숨 가쁘지는 않으신가요?

연재를 시작하며

 현대인들, 그중에서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를 꼽아보라고 하면 무엇이 꼽힐까요? 스마트폰? 정보화시대? 시장경제시대? 방금 열거한 단어들은 현대 사회 자체를 지칭하는 객관적인 단어로는 기능할 수 있어도 복잡 다난한 현대인들의 삶을 응축하여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필자는 현대인들의 삶을 간단히 한 단어로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숨 가쁨’입니다.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보면 ‘숨 가쁜 사회를 살아가는 숨 가쁜 사람들의 숨 가쁜 삶’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고민할 때 지극히 객관적이며 이성적인 범주 속에서 머무르기 위해 애씁니다. 그것이 자신의 전문성을 입증하고,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태도로 비추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엘리트 위주로 편성되어 돌아가는 사회의 고질적 풍조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회 현상은 단순히 수식과 같은 방법론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사회 현상은 종종 분석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생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행정과 정치는 종종 수식적 사고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을 대중 앞에 설파하다가 마주한 대중의 원인 모를 분노에 당혹스러워하곤 합니다. 분명 수치상으로 모두가 만족할 결론이라고 자신했건만 대중의 강한 분노를 마주하며 당황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살아있는 이들의 유동적 결합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모든 것에 주목해야 만이 사회 현상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 해결점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 우리가 사회 현상을 보다 확실하고 현실적으로 고민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정과 마음의 영역, 나아가 문화와 예술 등 사회 구성원들의 삶 자체를 범주에 올려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바꾸는 데에 정치와 행정 못지않게 문화와 예술이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 현상을 다루는 범주는 극히 협소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와 사회 문제를 일종의 ‘무거운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연스러운 형태의 담론 테이블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일상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실상 사회 문제와 정치의 문제는 ‘정장 입은 무거운 사람들’에 의해 집행되고 다루어지는 문제로 변질되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 문제에 대한 혐오감과 무관심을 더욱 촉발하는 결과를 야기합니다. 아울러 이토록 ‘딱딱한 사람들’에 의해 ‘딱딱하게’ 다뤄지는 정치와 사회 현상은 너무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숨 가쁜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것조차 벅찬데, 재미없고 따분하고 어려운 정치 문제를 고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죠.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정치는 종종 인간 삶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과 방향보다는 문제에 대한 잠시간의 임시방편과 사후 처방에 급급하곤 합니다. 그렇게 정치의 범주는 아직 너무도 협소하고 딱딱합니다.


 정치가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사용됩니다. 먼저 첫 번째, 실제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며, 우리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방식인 ‘정책’과 ‘입법’입니다. 이것을 좀 더 고차원적으로 묘사하자면 ‘사회와 집단에서의 물질적 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현실 정치인들이 가장 이상적 모델로 꼽으며, 지향하는 방향일 것입니다. 합리적이며 전문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와 집단에서의 물질적 작용’이라는 방법은 일견 합리적 일지는 모르나,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지극히 급진적이며, 부작용 역시 크다는 단점이 있어 사회가 가진 갈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위험성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의 거대 담론, 예컨대 언론 개혁, 검찰 개혁 등의 이슈에서 국민의 갈등이 극대화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편합니다. 입법과 정치는 직접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는 있지만 그만큼 많은 반대 의견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실제 효과를 완전히 예상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자칫 잘못된 판단이 내려졌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방식은 ‘설득’과 ‘공유’를 통한 방식입니다. 이는 간단히 말해 ‘개인과 일상에서의 정신적 작용’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요. 첫 번째 방식이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집단과 사회에 주목한다면, 두 번째 방식은 그 시선을 개인과 정신에 두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 해결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방식은 물질에, 두 번째 방식은 정신에 집중하며, 문제에 접근합니다.


 현대의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삶의 기본권을 겨우 보장받는 수준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정치로도, 정책으로도 쉽게 고쳐나가기 어려운 범주에 속해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제까지 우리 모두가 외면해왔던 감정과 정서의 영역에 집중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숨 가쁜 까닭에는 정치의 부족보다는 감정과 정서의 영역을 미쳐 돌보지 못한 사회적 한계가 더욱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수치를 언급하며 조금 더 걸을 수 있다고만 하니 더 걸을 생각이 날까요. 누군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잠시 쉬어도 괜찮다며, 느리게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 사회는 보다 따뜻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지금부터, 기존의 정치가 주장해왔던 물질과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 보다 본질적이며, 실질적인 마음과 삶에 대한 문제를 위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해결책을 찾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속에 묻어두고 살아왔던 상처와 아픔을 나열하고 발견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에 위로로 다가올 수 있는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숨 가쁜 우리의 삶 속에서 제 글이 한숨이나마 돌리며 쉬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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