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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화 Apr 08. 2021

1. 숨 가쁜 사회, 우리의 갈림길

1) 똑똑한 전화기여 만세!

 우리의 삶 속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연인의 따뜻한 손? 추억 속 친구가 떠나며 건네준 작은 선물? 마음의 양식이라며 가까이하던 위로가 되는 책? 아마 현세대 인류, 정보의 지배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은 ‘스마트폰’이라며 자신 있게 대답할 것입니다. 


 저는 거리를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거리를 걸으며, 평소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길가의 나무나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한층 나아지곤 합니다. 물론 가끔 길가에 한참을 서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뒤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숨 가쁜 하루를 마치고, 일주일 내내 회식으로 자신을 살찌우는 악랄한 상사를 마음속으로 욕하며 작년에 사둔 옷에 몸을 다시 맞추기 위해 오랜만의 조깅에 나선 선량한 시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럴 때는 산책로에 가만히 서서 정체 구간을 만들어내는 소소한 악행(?)을 잠시 멈춰주고 다시금 걷기 시작합니다. 뻔뻔히 버티고 서 있기에는 그들의 분노 어린 시선이 따갑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제 산책 시간에 항상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역시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에 연결한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는, 귀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빠져들다 보면 산책이 더욱 즐거워지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드라마 속 OST를 들으며,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분위기를 잡아보기도 하고, 슬픈 음악이 흘러나올 때는 나라라도 잃은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누군가가 가까이를 지나가면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되지만요. 그러다가 휴대폰에서 알림음이라도 울리면 휴대폰 속 SNS의 세계로 한참을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밌는 사실은 이와 같은 모습으로 한참을 서서 스마트폰의 불빛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는 이들이 거리에선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산책로 중간에 자치구에서 설치한 공공 와이파이 구역이라도 있으면, 다른 조명이 필요 없이도 곳곳에서 빛이 환한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폰딧불이'들의 자연적 집결소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앞을 보지 않고 화면만을 바라보며 걷는데도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능력자도 여럿 보입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면서 웃고, 울고, 찡그리고, 분노하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 속에 어느새 깊숙이 녹아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스마트폰의 활용이 당연해진 우리 현대인들의 삶에서 스마트폰을 분리하면, 우리는 즉각 불안함을 먼저 느끼곤 합니다. 특별히 올 급한 연락이나, 빠르게 처리해 주어야 할 시급한 업무가 있는 것은 아님에도, 스마트폰과 분리된 잠깐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합니다. 버스에서도, 거리에서도, 카페에서의 만남에도, 대학교 강의 도중에도 우리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것이 바로 스마트폰이 가져온 ‘더욱 빠른 사회’의 단면입니다. 스마트폰은 연결과 속도를 최우선의 과제이자 목표로 개발됩니다. 즉 사용자를 사회와 확실하게 연결하고, 그 어떤 매체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스마트폰의 지향은 그 사용자로 하여금 조급하고 숨 가쁘게 하루를 시작하고 기술을 활용하도록 부추깁니다.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메시지는 분 단위로 상대방에게 읽히고, 상대방은 읽은 뒤 즉각 답장을 보내주어야만 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오랜 시간 동안 읽지 않거나, 읽었음에도 즉각 답장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초조해지고 불안해하곤 합니다. 이렇게 기다림과 느림이 우리의 삶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소중함과 간절함이 연결의 용이함과 편리함으로 점차 옅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보다 더욱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관계 맺음하고 있음에도 외롭기만 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를 오랜 시간을 들여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컴퓨터의 보급으로 우리는 시간적, 매체적 제한은 뛰어넘었지만, 인터넷의 연결과 컴퓨터의 설치라는 공간적인 한계는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러한 한계마저 뛰어넘었습니다. 어느 통신사의 광고처럼 한라산 정상부터 독도까지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스마트폰을 활용해 과거의 정보부터 검증되지 않은 종류의 정보까지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일반 시민들 누구나 전문 영역의 지식을 습득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로 인해 항상 숨 가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굉장히 생소한 이 신조어는 스마트폰을 마치 신체의 일부와 같이 활용하는 인류를 일컫는 말입니다. 좋은 의미로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인류를 뜻하는 이 단어는 지극히 비판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 어원인 ‘호모 사피엔스’는 직역하면 ‘슬기로운 사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포노 사피엔스’를 번역해보면 ‘슬기로운 전화기-사람’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이 활용해야 할 도구인 전화기가 슬기롭다니. 이제는 사람보다 전화기가 더 우월하고 총명한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과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 그것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의 한 단면이자 현실입니다.


 인류가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생각하기 어려운, 의존적 존재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나가야만 할까요?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한 기술의 발전이 어느새 우리들의 숨을 가쁘게 만들어만 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것들을 찾고, 무엇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까요? 고민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바꾸는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편리함을 위해 편안함을 희생해버린 지금의 시대, 이제는 분명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숨 가쁜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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