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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Oct 28. 2021

아나키스트 활동 그룹 선언

정기회비를 걷는 행위에 대해서

나의 이름은 김정현이다. 나는 아나키스트 그룹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적으니 꽤나 거창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 들의 잦은 논쟁을 방관하는 것이 나이다. 이 같은 무기력함을 바꾸기 위해 나는 오프라인 모임을 제안했고 5명이 광주에서 모였다. 그렇게 모인 5명은 앞서 말한 무기력함을 공유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회비를 걷자는 의견을 냈다. 현재 정기회비 모금에 대한 아나키스트 그룹의 움직임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긍정적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앞으로의 글이 쓰여진다.

회비를 걷자는 의견이 나오자 예상대로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생겼다. 차근차근 그 거부감을 줄여 보겠다. 아나키스트로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 필요성에 선뜻 동의하지만 막상 돈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주춤하는 꼴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들을 설득할 정도의 관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가리 다물고 꺼져라 현 국가 시스템을 붕괴하자는 사상에 동의를 표한 자가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말이지 비겁한 것이다. 그 정도의 배포도 없으면서 아나키라 떠들어 대는 것은 그저 하나의 패션으로써 사상을 가지고 노는 어중이떠중이인 것이다. 사상은 실천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옳다! 동의했으면 나의 태도, 나의 몸짓, 나의 눈빛이 변하는 것, 그것이 사상인 것이다. 그러니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아나키를 읊을 생각이라면 다분히 꺼져 줬으면 한다.

아나키 사상 특징상 돈 그 자체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행해지는 끔찍한 악행들, 우리는 그것들을 충분히 주시해왔으며 가슴 아파했다. 그런 우리가 자본 즉 돈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허나 돈 그 자체가 나쁠 수는 없다. 애초에 돈이란 사회적 약속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약속이었어야 하는 돈에 권력이 작용하고 격차가 생기는 것은 돈 그 자체의 특성이라 보기 힘들다. 반대로 어떤 형태의 권력 하에 돈이 움직였기에 불평등이 양산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상에 드러내는 반감은 돈의 쓰임새와 흐름에 있어야 한다. 또한 현 사회가 지향하는 돈의 흐름에 반기를 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 스스로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무단한 고민과 실천일 것이다. 아나키스트 그룹에서 정기 회비를 걷는 것에는 돈을 통해 연대와 활동을 추진하고자 하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지 그 돈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끌어 당기기 위함이 아니다. 돈은 사람을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 사람 간의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것이 돈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이다. 단절과 격차를 위한 돈이 아닌 단결과 유대를 위해 돈은 쓰여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안타까운 현실 하나를 직시해야만 한다. 어쨌든 돈은 있고 없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질로서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반면에 돈은 오직 양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한다. 고로 돈에 의해 생기는 격차 즉 돈을 내는 회원과 그렇지 않은 회원 간의 차이에 의해 묘한 계급 형성이 생길 것이다. 확실히 돈을 내는 회원이 그렇지 않은 회원보다 발언권이 쌔질 것이다. 이 같은 작은 차이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권위적 시스템이 생겨날 것임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나는 분리하고자 한다. 아나키스트 그룹이라는 큰 조직에서 따로 분리되어 하나의 유닛으로서 아나키스트 활동 그룹을 만들 것을 주장한다. 두 조직의 차이는 단순히 돈을 내고 그렇지 않고 가 아닌 것이다. 아나키스트로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적극성에 그 차이를 둔다. 개 같음을 느낀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자 우리는 무장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 역시 갖출 수도 있다. 폭력이란 수단 역시 써야 할 땐 쓸 수도 있다. 아나키스트 그룹과의 협력은 있으되 위협을 대처하는 것은 오로지 아나키스트 활동 그룹의 몫이다. 정기회비를 낸다는 것에는 이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인지했으면 한다.

 그렇기에 나는 아나키스트 활동 그룹 참여 조건 하나를 내세우고자 한다. 아나키스트 활동 그룹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자여야 만 한다. 노동을 통해 자신이 번 돈이 아닌 돈을 회비로 내는 자의 돈의 무게는 너무 가볍다. 반대로 자신의 생계를 내팽개치고 활동가로 전업하는 자의 돈은 너무 무겁다. 생계를 내팽개친 자는 자신이 무거운 존재임을 스스로 자각하기 마련이다. 그때 문제는 발생한다.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심리에 의해 행해지는 악행, 그리고 그 악행에 대한 무감각함, 대부분의 조직은 이따위 인간에 의해 붕괴되고 갈등을 빚게 된다. 그 같은 꼴은 생기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에 한하여 회원을 모집하여야 한다. 절대 어떤 이유에서라도 자신의 생계를 포기하는 행위는 받아들이수 없다. 생계를 포기한 자가 내미는 돈을 쓰기에 우리 조직은 너무 착하다. 또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노동을 하는 자를 의미한다. 노동을 행할 수 있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은 아나키 사상에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 같은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아나키 사상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기에 같이 어울려 놀아 줄 수 없다. 노동을 해본 자가 노동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노동을 해본 자가 노동의 아름다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 하에 아나키스트는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노동에서 배제되는 이들을 안타까워한다. 같이 놀 친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 확실히 안타까운 일이니 말이다. 개인을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활동 중 하나다. 나는 개 같은 시스템 하에 적응하여 살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개 같은 시스템을 겪으며 우리의 눈초리는 날카로워지고 우리의 심지는 곧아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무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 회비가 걷어진 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모금된 회비는 당연 투명한 공개하에 쓰여야 한다. 그 방도는 끊임없이 논의될 것이다. 또한 어떻게 쓸 것인가 역시 회원 간의 무수히 많은 논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현 사회에서 실현되지 않는 직접 민주주의를 우리 조직에서는 가능하게 끔 해야 된다. 논의, 갈등, 참여는 최대한 활발하게 진행되야한다. 이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의심이란 단어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심을 긍정하여야 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의심을 표할 때 귀찮다는 식의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의심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며 신뢰가 쌓이는 것이지 신뢰가 먼저 일수는 없다. 신뢰를 먼저 요구하는 행위는 확실히 사기꾼의 태도이다. 의심 먼저 달게 받아라. 의심을 부정한다는 것은 역사 또한 부정하는 것이 된다. 한 개인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역사와 그 사람과 함께 쌓이는 역사를 들춰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의심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소중한 것이며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 역사가 없으면 사람 간의 연결은 극히 어려워진다. 역사란 기존의 시스템을 확고히 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의심하기로 결정한 자의 기록이며 그 결과다. 그 숭고함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 같은 의심 후에 결정되는 신뢰는 끈끈할 것이며 아름다울 것이다. 의심은 곧 아름다운 사람 간의 관계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누군가 나를 의심한다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기뻐하며 그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자. 그 같은 당당함에서 아나키스트의 멋이 표현될 것이다. 아나키는 확실히 사람 간의 신뢰를 조장하는 사상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다분한 의심을 받아들이는 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의심을 견딜 수 있는 강한 인격체를 목표로 하며 사람은 그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아나키는 활동한다. 사람은 연약하며 추악하다 말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나키스트들이 있다. 여기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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