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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Nov 01. 2023

길이가 줄었다 늘었다 하는 구덩이라면

음료를 기다리는 순간 끄집어낸 용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토요일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보기로 했다. 한 친구가 제주도에서 올라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간 여유는 있지만 마음 여유가 없어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날 점심에 가겠다고 연락했다. 소란스러운 카페 안에서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끄집어낸 작은 용기였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옛 친구들과의 점심조차 조심스럽다. 소중한 얼굴들을 다시 못 볼까 겁이 나서 만나겠다고는 했지만 자리에 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또 무겁다.


저만치 멀어진 것 같다.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던 언제나 미소를 띠고 있고 원만하고 따뜻한 친구 관계를 갖고 있다는 그 아이와 나는. 그리고 그 사실을 친구들이 받아들여줄까 가늠해 본다. 길이가 마음대로 줄었다 늘었다 하는 구덩이에서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나를 그들이 가볍게 바라봐주면 고맙겠다.


허덕이던 날들. 소화가 안 된 채로 욱여넣었던 나이가 불쑥불쑥 몸에서 튀어나온다. 필요한 역류다. 자리를 찾고 있다는 말을 되뇌며 구덩이 안에서 꾸준하게 작은 용기를 낸다. 고작해야 역류 아닌가. 고작해야 뒷걸음질 아닌가. 관념의 구덩이 속이라면 고집부려 폴짝 뛴 한 번의 점프로도 양지로 올라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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