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조기졸업 #물리학과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17개월 간 함께했던 133개의 펜]
2차 공부를 하던 어느 순간부터는 다 쓴 펜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살면서 펜 하나를 끝까지 쓴 적이 잘 없었는데,
수험생활 동안 써 온 펜들은 제 노력이 가득 담겨있는 것 같아서 잘 버리질 못했습니다.
어린시절에도 공부 꽤나 했던 학생이었고
살아온 대부분의 순간을 공부와 함께 해왔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열망할 수 있구나,
오랜시간 꽤나 지독한 노력을 해낼 수 있구나,
제가 가진 또다른 면을 마주할 수 있었던 2년이었습니다.
유난스럽지만
수많은 답안지를 써내려 가느라 손목보호대를 차야 글을 쓸 수 있었고,
시험 한달 전부터는 손목에 테이핑을 감고, 그 위에 손목보호대를 덧대어 고정시킨채 답안지를 썼습니다.
1년 내내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고, 몸무게가 10kg정도 빠지며 흰머리가 수북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몸이 힘든 것보단,
당장 닥친 불안감과 패배감이 스스로를 더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공부가 끝난 뒤,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서는
사회에서 고립되어 늪으로 잠겨가는 기분과,
결국은 해낼 수 있다는 희망과,
끝까지 안되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하는 불안감이 혼재되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스터디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들 다 손목에 보호대차고 붕대감고 답안지 쓰는데, 멋지고 안쓰럽다”
“젊고 멋진 나이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도, 꽤 대견한 것 같아”
저 말을 듣고 저는 잠시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다,
제 손목을 번갈아 보며 공허하고도 애틋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견하지만 온전히 만족스럽진 않았고,
자신있지만 불안했으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스스로가 정해 둔 노력의 기준을 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당당할 수 있을만큼 공부하는 것이 어렵더군요.
결국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점도, 아쉬운 점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모든 순간이 최선은 아니었지만
매순간 정말 간절히 바래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합격하니 정말 몸도 좋아지고, 힘들었던 감정들도 금방 잊혀지네요.
훗날에도 수험생활 당시의 스스로를 기억하고자 이렇게 글로 남겨봅니다.
누군가는 생각보다 쉬웠다고, 혹은 죽을만큼 힘들었다고 기억할 수험생활.
2년 간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처럼, 치열하고 파란만장하게 보냈다고 깊이 기억해두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