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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Mar 12. 2023

그해 그리고 오늘

그렇게 아들이 찾아왔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 두 달 뒤 임신 사실을 알았다. 나의 첫 임신이자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갖게 된 날이다. 남편은 기뻐 어머님과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남편의 말을 시부모님은 너무도 좋아하셨고 축하를 주셨다. 아버님은 몸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을 재차 반복하시며 당부하셨다. 그러나 첫아기를 가진 기쁨은 잠시, 2개월 만에 유산의 아픔을 겪고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몸을 추스르며 다음에 다시 찾아올 아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인가,

남편의 사무실로 가던 중 신고 있던 샌들의 뒷굽이 계단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생겼다. 오른쪽발 뒤꿈치가 부러졌고 긴 시간이 넘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진통제와 항생제가 들어 있는 약을 먹으며 병원에서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 통깁스를 한 상태에서 목발을 짚고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뒤 속이 메스껍고 구토 증상이 일어났다. 입원했던 병원으로 전화를 하니 메스꺼운 증상이 일어날 수 있는 약성분이 들어 있다고 참고하라고 했다. 지시대로 따랐지만 그래도 구토 증상이 일어났다. 달력의 날짜를 보았다. 한 달에 한번 일어나는 몸의 반응을 수상히 여겨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두줄의 기쁨과 걱정이 서로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경기도 양평 수목원 내 풍경

다니던 산부인과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수술한 것과 복용한 약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원장님께서 일단은 남편과 내원을 하라는 지시였다. 소변 검사를 통해 정확한 임신 사실이 나왔고 당시 6주였다. 그러나 수술로 인한 약복용으로 인해 찾아온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당한 고민과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려움이 찾아왔다. 원장님은 나의 큰 걱정과 기형아 출산의 위험을 고려해 다음에 다시 갖는 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찾아온 귀중한 이 생명을 어쩌란 말인가........

 

그런 나를 보며,

원장님이 기형아 검사도 하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야 나는 그러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다. 권사님이신 어머님은 아이에게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하셨다.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절대로 생명을 건드려선 안 되는 일이라고 나의 걱정스러운 생각을 굳게 잠가 버리셨다. 

 

이튿날, 

어머님이 기도원을 향하셨다. 3박 4일 오직 나와 뱃속에 찾아온 첫 손주의 때문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아기는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잘 있다가 나를 찾아올 것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은 기도 가운데 음성을 들으신 거다. 그리고 아기의 너무도 건강한 모습까지.... 그래도 마음속에서 걱정은 떠나지 않았다.

경기도 양평 수목원 내

임신 16주 차 기형아 검사를 했다. 

산부인과 원장님께서 아기는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니 그간 내원하며 지시에 잘 따르라고 했다. 출산하며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목발을 짚고 2주에 한 번은 정형외과로 또 다른 한 번은 산부인과를 다녔다. 그해, 나는 초음파로 아기를 만나며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강한 예비 엄마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렇게 여름날 뜨겁게 찾아온 나의 아기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임신 막바지를 향해가며,

출산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현 상황에 자연분만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다 엄마 뱃속에서 뛰어놀던 아기가 갑자기 거꾸로 돌아섰다. 자연분만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거꾸로 있는 아기가 제자리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분만에서 2주 앞당긴 제왕절개의 수술 날짜가 잡혔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

별 탈 없이 아기를 잘 낳으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남편은 전날 내가 먹고 싶다는 삼겹살을 먹였다. 이튿날 수술대 위로 올라가기 전 어머님이 내 손 잡고 기도를 해주시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아버님이 꽃바구니를 들고 오셨고 어머님과 남편이 아기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취를 하고 정신을 잃은 그 순간 아기가 나오는 문이 열리고 작은 울림이 들렸다.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던 나의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공, 오 년, 생 아들

그리고, 그해, 바로 오늘

아들은 바깥세상으로 나와 생의 첫 신고식을 치렀다.

 

그렇게 찾아온 아들이 내년엔 성인이 된다. 차분하고 훤칠한 키는 아빠를 닮았다. 운동 신경은 엄마를 닮았고, 예능은 선택반 엄마 반이다. 


아빠의 경제가 두둑해지라며 지갑을 선물하는 아들, 엄마 몸 아플 땐 걱정스러운 말로 병원 가자며 손잡아 주는 아들, 오늘 네가 있는 건 우리 가족의 행복과 삶의 이유야.


이만큼 너의 시간과 엄마 아빠의 세월을 잘 견디며 따라와 주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뜨겁게 사랑한다. 아들아.


하늘이 준 나의 아들아

흩어지는 한 줌의 재가 되지 말고

온 세상 하얗게 덮어주는

사랑의 눈 되어

아니 닿는 곳 없이 뿌려주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다오

[려원, 그 설레임. 아들아(1) 중 부분문장]


깨진 그릇을 보고, 눈물을 보이기보단, 비워짐에 새것으로 채울 줄 아는,
 어리석지 않음의 네가 되어라. [려원, 그 설레임. 아들아(2) 중. 부분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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