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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Oct 27. 2024

여행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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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캐나다는 미미의 첫 해외여행이다. 제니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저렴하다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았다. 여름은 성수기라 여름보다는 겨울이 조금 더 저렴했고, 모든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1월보다는 오히려 11월 말이나 12월 초가 조금 더 저렴했다. 일주일 사이에 몇십만 원씩 오르내렸다. 캐나다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중간에 잠깐의 휴식도 취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몇 시간의 여행도 할 수 있다면서 비싼 직항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유를 추천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니는 대부분 비행기는 직항으로 타고, 비행기 티켓은 금액에 상관없이 일정에 가장 적합한 걸로 예매하는 사람이었다. 직항과 경유는 금액 차이가 많이 난다. 저렴한 금액의 티켓이 나오면 바로 티켓을 예약하는 게 관건이라고 제니는 말했다. 미미와 순이는 겨울방학이 시작하고 가장 저렴한 티켓이 있는 날짜에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이왕 가는 거 제니도 겨울에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제니네 동네에서라도 오랫동안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도 가장 저렴한 날짜로 구하기로 하고 일단락 지었다.     


 공부는 뒷전에 두고 정신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12개월 무이자는 없었다. 우선 첫 학기 등록금으로 받은 통장의 돈을 비행기 티켓 값으로 먼저 사용하고, 그 금액을 여행을 다녀온 그다음 달부터 12개월 동안 분할해서 통장에 다시 넣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미미 혼자서 해도 될 일이었지만 혹시나 갑자기 미미가 힘든 상황이 생기면 그 돈이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서였다. 아빠는 무슨 해외여행이냐며 난리를 쳤다. 엄마는 자기가 벌어서 간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용돈도 주지 않으면서 그러는 거 아니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받아쳐서 또 한 번의 전쟁이 일었다. 넉넉하게 뒷받침해 주지는 못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미미 너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 보면 좋겠다고 엄마는 말했다.      


 학교에서는 조교를, 저녁에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주말에는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돈이 된다고 하면 어디든 무작정 지원해서 일을 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남은 강의는 뒷전에 두고 백화점에서 풀타임으로 판매직 근무를 했다. 돈이 조금씩 모이자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여행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도 이곳저곳 많이 찾아보지도 못했지만 제니가 있고 순이가 있으니 안심이었다. 그렇게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왔고 드디어 비행기는 떴다. 그 비행기 안에 미미가 있었고 미미 옆에는 순이가 있었다. 캐나다 공항에는 제니가 마중 나와 있을 거였다.     


 제니는 캐나다의 밴쿠버에 살았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에 하나라고 했다. 다운 타운에 나가면 한국말도 제법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다운 타운에 나갔을 때 진짜 외국에서 진짜 한국말이 들리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이상하기도 한 얼떨떨한 기분을 미미는 느꼈다. 원래 계획은 2주간의 여행이었다. 그 여행은 3주 반으로 늘어났고 나머지 절반 동안 우리는 밴쿠버가 아닌 시애틀에 머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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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는 캐나다이고 시애틀은 미국이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육로로 국경이 접해 있다. 자동차로, 버스로, 걸어서도 나라 간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중고등학생 시절, 한국사보다는 세계사를 더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던 미미지만, 나라 간의 통로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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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는 초중고 모두 강북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학생들 대부분은 부모가 둘 다 일을 하는 엇비슷한 수준의 가정에서 살았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여름에 며칠 계곡이나 바다로 휴가를 가는 정도로 방학을 보내는 그런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휴가는 고사하고 각자의 삶만으로도 바쁜 생활을 하는 가정에 속한 친구들도 여럿 되었다. 고등학교는 사립이라 조금 다른 애들이 있기는 했다. 누구누구는 아빠가 변호사라더라, 엄마가 의사라더라, 새로 생긴 아파트 넓은 평수에 산다더라, 방학마다 해외여행도 다닌다더라, 개인 과외를 몇 개씩 한다더라, 학교 이사장이랑 친척이라더라, 교장의 손녀라더라 등등의 소문은 많았는데 그런 애들은 보통 전교에서 손가락 순위권 안에 들어있었고 반에서 회장이나 임원을 하는 애들이어서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를 무시하고 교실에 없는 듯 조용히 공부만 하든지.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은 학교에 배정받아서인지, 머리가 조금 커서인지,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느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게 된 것 같다. 성적도 성격도 집안도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서 친구가 되었고 혼자 다니는 애들이 있어도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뒤에서 수군거리지도 않았다. 인문계 고등학교다 보니 선생님들은 입학하자마자 대학 얘기를 끊임없이 했고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대학 입시라는 그 어마무시한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제니는 순이의 고등학교 친구다. 물론 미미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그 학교를 졸업했다. 미미와는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지만, 순이와는 2학년, 3학년 모두 같은 반이기도 했고 크지 않은 학교라서 복도에서 오가다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는 나누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는 순이도 미미도 각자의 삶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실제로 떨어져 있었던 물리적인 거리도 멀었고 미미가 느끼는, 아니 미미만 느끼거나 어쩌면 미미가 만들어 낸 순이와의 정신적인 거리감도 있어서 만나면 다른 친구의 소식까지 전달받을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가끔 만나면 순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여전히, 미미가 느끼기에, 한결같이 세세하게 빠짐없이 얘기했지만 미미는 전보다 말수가 줄었다. 할 말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고 순이와 다르게 느껴지는 자신을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사춘기가 이제야 찾아오는 건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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