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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Oct 27. 2024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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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미미는 중얼거린다.   

  

‘나 같았으면 차 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데리고 다녔을 텐데, 나 같았으면 차가 없더라도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어디라도 함께 다녔을 텐데, 나 같았으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새로운 문화에 접하도록 도와주었을 텐데, 나 같았으면 매일 먹는 한식이나 한국에 들어와 있는 패스트푸드보다는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소박하더라도 캐나다식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한국에는 없거나 찾기 힘든 레스토랑에 데려갔을 텐데, 나 같았으면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데려가서 머무르게 해 주었을 텐데,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


 한번 입 밖에 나온 ‘나 같았으면’은 수많은 ‘나 같았으면’으로 변형되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물론 육성으로는 아니고 속으로만.     


 제니의 일상으로 들어온 건 미미와 순이다. 제니는 미미와 순이에게 여행을 가자고 하지 않았다. 좋은 곳을 돌아다니자고 한 적도 없다. 단지 자신이 있는 캐나다로, 밴쿠버에 놀러 오라고만 얘기했었다. 이제 자기 방이 생겼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그렇게 말했었다. 첫 해외여행에 가슴 부풀었던 건 미미 자신이었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걸 경험하려고 했던 것도 미미 혼자서 한 생각이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KFC에서 치킨버거와 비스킷을 먹고, 맥도널드에서 특별하지 않은 치즈버거를 살 때면 서운해지는 마음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간 유학길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되려고 하던 찰나에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망이 없었고, 지방대에 입학하거나 재수를 준비하기보다는 이참에 유학을 가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께 또 다른 좋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도 없었다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캐나다에 들어오게 된 거라고 나란히 누워 뒤척이던 어느 날 밤 제니는 고백하듯이 말했다. 미국보다 안전하고 한국인들도 많다고 들은 것도 제니의 유학 결심에 한몫을 했다고 말하며 이젠 괜찮다고 했다. 항상 자신감 있고 해맑던 제니에게도 이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이와 미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국 생활이라는 단어가 무엇보다 매력적이었고 뭐든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언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유학생으로서의 삶이 과히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라 미미는 예상했다. 또 아무리 용돈이 넉넉하더라도 마음 기댈 곳이 없으니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을지 모르겠다. 방학을 해서 한국에 들어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수도 있고 10대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보면서, 별 고민 없이 보냈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캐나다에서도 한국과 연결된 친구와 같이 있고 싶었을 수 있다. 그때는 이제 막 겨우 20대에 진입했을 뿐이었으니까. 제니도 순이도 미미도, 모두가 10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하게,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멋진 포스터와 아름다운 광고에 이끌려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였다. 시애틀이라는 지명은 그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이미지가 늘 그렇듯이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로맨틱하고 평화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미미와 순이를 시애틀의 유혹으로 끌어들인 그녀의 이름은 지혜, 영어 이름은 제이였다. 아버지가 시애틀 지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시애틀로 왔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조금 다른 걸 하려고 밴쿠버 대학으로 유학을 왔고, 오랜 시간을 사귀어 온 남자 친구는 여전히 시애틀에 살고 있다. - 모든 정보는 순이가 미미에게 말해주었다. 미미는 제니와 같은 숙소를 쓰는 다른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단지 그녀들의 식사 시간이나 어울림 시간에 순이가 있기에 자리를 함께했을 뿐이다.     


 지혜가 거실 한쪽을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생활이 가장 힘든가 보다고 미미는 혼자 예상만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파트를 실제로 렌트한 장본인이 지혜였다. 똑 부러지는 면도 있고,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물론 돈도 받고 관리도 하고 있을 거다. 사람을 좋아해서 집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방이 하나 비었을 때 제니가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집에서 파티도 하고 외부인을 초대하기도 하지만 연인일 경우에는 다른 방에 혹시라도 불편을 줄 수 있으므로 잠은 외부에서 잘 것, 이게 이 집의 첫 번째 규칙이라고 한다. 여성만이 거주하는 집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도 찾아오면 집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미미와 순이가 예외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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