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업계에서 바라본 탄소중립, 그 험난한 여정의 기록

by GLEC글렉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물류업계 선배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요즘 탄소중립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파.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의 말에서 물류업계가 직면한 현실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물류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매일 이 업계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아침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탄소배출량 보고서들이 책상 위에 쌓여있고, 회의실에서는 친환경 운송수단 도입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깨달았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을.


거대한 산업의 그림자

물류산업은 현대 사회의 혈관과 같다. 우리가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부터 밤에 주문한 택배까지, 모든 것이 물류의 손길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이 편리함 뒤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환경적 대가가 숨어있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4퍼센트를 차지하는 운송 부문. 그 중에서도 화물운송의 비중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화물운송량의 90퍼센트 이상이 도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화물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우리 하늘을 얼마나 무겁게 만들고 있는지 상상해보라.


물류센터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조명, 끊임없이 가동되는 냉난방 시설, 자동화 장비들의 윙윙거리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현실. 특히 냉동냉장 창고에 들어서면 그 차가운 공기와 함께 전력 소비량에 대한 걱정도 밀려온다.


정부의 의지와 업계의 혼란

2050 탄소중립. 이 세 단어는 이제 물류업계 사람들에게 숙명과 같은 단어가 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운송 부문 탄소배출량 95.6퍼센트 감축 목표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것이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탄소배출량 측정 및 보고 의무화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업계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 거지?" "우리 회사는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씩 준비해나가고 있다.


정부의 지원 정책들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전기트럭 충전소 설치 지원,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 친환경 물류센터 건설 보조금 등. 이런 정책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정부도 이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업계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려 한다는 의지가 보인다.


선구자들의 도전

얼마 전 해외 물류 기업의 친환경 사례를 조사하다가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기차 도입, 태양광 발전 시설 구축, AI를 활용한 경로 최적화 등을 추진해왔다. 처음에는 비용 부담과 기술적 한계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지금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라스트마일 배송에서 전기차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고, 물류센터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 LED 조명으로 교체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도들도 활발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경로 최적화 시스템이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계산하고, 연료 소비량을 최소화하는 이런 기술들을 보면서 기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기술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

전기 트럭을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기존 디젤 트럭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고, 매연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주행거리와 충전 시간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다. 그런데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 트럭도 장거리 운송에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도 놀랍다. 인간보다 더 연료 효율적인 운전이 가능하고, 최적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면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완전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다.


드론 배송 시스템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작은 상자를 들고 하늘을 나는 드론을 보면서, 미래의 물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았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교통 체증도 피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들이 상용화된다면 물류산업의 탄소배출량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측정의 중요성, 현실의 어려움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탄소배출량 측정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에서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Scope 1, 2, 3 배출량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솔직히 막막했다. 자사 차량의 연료 사용량은 그나마 측정이 가능하지만, 전력 사용량, 그리고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까지 파악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물류산업에서는 Scope 3 배출량의 비중이 매우 높다. 협력업체, 하청업체, 운송업체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의 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첫 걸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확한 현황 파악 없이는 목표 설정도, 효과적인 감축 전략 수립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전문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측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실적인 실행 전략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1단계에서는 에너지 효율 개선부터 시작한다. LED 조명 교체, 단열재 보강, 효율적인 에어컨 시스템 도입 등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런 작은 변화들도 누적되면 상당한 효과를 가져온다.


2단계에서는 친환경 차량 도입과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한다.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영비 절감과 탄소배출량 감소라는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3단계에서는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한다. 자율주행 차량, 드론 배송, 완전 자동화된 물류센터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기술들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면 물류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것이다.


함께 걸어가야 할 길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물류산업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사, 협력업체, 정부, 기술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참석한 업계 세미나에서 한 CEO가 말했다. "탄소중립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 말이 깊게 와닿았다.


실제로 ESG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친환경 물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고객사들도 공급망의 탄소배출량을 중요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결국 탄소중립 전환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된 것이다.


도전과 희망 사이에서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높은 초기 투자비용, 기술적 한계, 전문 인력 부족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 제약, 수소차의 높은 비용과 인프라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희망적인 변화들도 보인다. 정부의 지원 정책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고, 기술 발전 속도도 예상보다 빠르다. 무엇보다 업계 전체가 이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도 등장하고 있다. 탄소배출량 측정 및 관리 서비스, 친환경 물류 컨설팅, 그린 로지스틱스 솔루션 등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무리하며

물류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런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우리도 이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정확한 현황 파악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기술 혁신과 상호 협력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좌절하고 막막할 때도 있겠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모두 함께 이 도전에 맞서 나가기를 바란다.


#물류ESG #탄소중립 #스마트물류 #친환경운송 #그린로지스틱스 #전기트럭 #수소상용차 #물류자동화 #지속가능물류 #탄소배출량측정



https://glec.io/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작은 숫자 뒤에 숨겨진 거대한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