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물류와 운송업계에서 일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는 것이다. 특히 환경 규제라는 이름으로 밀려오는 새로운 기준들은 때로는 부담스럽게, 때로는 기회로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EU Taxonomy는 내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동시에 가장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EU Taxonomy에 대해 들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2020년 6월, 유럽연합이 발효시킨 이 규제는 단순한 환경 규정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분류하는 통합 시스템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복잡함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된 것은, 이것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2050 탄소중립을 향한 인류의 진지한 약속이라는 것이었다.
EU Taxonomy가 제시하는 여섯 가지 환경 목표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마치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다.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물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순환경제로의 전환, 환경오염 방지, 그리고 생물다양성 보호까지. 각각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목표들은 우리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Do No Significant Harm" 원칙이었다. 하나의 환경 목표에 기여하는 활동이 다른 목표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이 원칙은, 마치 인생의 균형을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전기차 도입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더라도 배터리 폐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것처럼,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리 업계가 EU Taxonomy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4퍼센트를 차지하는 운송 부문이 EU의 특별한 관심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도 운송의 경우, 전기화된 시스템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적합한 활동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았고, 내륙 수로 운송도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도로 운송에서도 직접배출량이 제로이거나 2025년까지 50그램 이하인 차량 운용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기준을 만족할 수 있었다.
해운업계의 경우 2025년까지 탄소집약도를 연간 2퍼센트 이상 개선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고, 항공 운송은 2030년까지 바이오연료 혼합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까다로워 보였지만, 차근차근 살펴보니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들이었다.
무엇보다 친환경 물류 인프라 구축이 거대한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 스마트 물류 시스템 도입 등은 모두 EU Taxonomy의 적격 활동에 해당했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기존 디젤 트럭 중심의 물류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고,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과 보고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우리 업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무적으로 EU Taxonomy에 대응하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먼저 현재 사업 활동의 분류부터 시작해야 했다. 적격성 평가라는 첫 번째 단계에서는 자사의 사업 활동이 EU Taxonomy에서 정의하는 경제활동에 해당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물류 회사라면 운송 수단별로, 물류센터 운영 방식별로 세분화하여 평가해야 했다.
두 번째 단계인 정렬성 평가는 더욱 까다로웠다. 적격한 활동이라고 해서 모두 정렬되는 것은 아니었다. 구체적인 기술 기준을 만족해야 했고, DNSH 원칙과 최소 사회적 보호 조치도 충족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데이터 수집과 검증이었다.
EU Taxonomy는 정성적 평가가 아닌 정량적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더욱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요구했다. 상세한 탄소배출량 측정 시스템 구축, 환경 성과 데이터 수집 및 관리 체계 수립, 협력업체와의 ESG 데이터 공유 체계 구축 등이 모두 필요한 작업이었다.
내부 임직원 교육과 역량 강화도 중요한 과제였다. 새로운 기준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성장해야 했다. 외부 전문가와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도 필수적이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투자 우선순위의 재조정도 불가피했다. EU Taxonomy에 부합하는 활동에 대한 투자는 EU의 Green Deal 정책과 연계되어 다양한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EU Taxonomy는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했다. 물류와 운송업계에 종사하는 기업들에게는 초기 투자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 달성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EU Taxonomy는 점진적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조기 대응하는 기업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정확한 현황 파악과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EU Taxonomy를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제 속에서 찾은 희망은 바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막연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목표를 가지고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EU Taxonomy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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