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가 수천 년 전 고대의 강물을 다시 끌어와 완벽한 직선과 비례의 성을 쌓았다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디자인은 그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격랑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나타난 아르누보(Art Nouveau)와 아르데코(Art Deco)는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19세기 말, 산업화로 인한 삭막함 속에서 예술가들은 다시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신고전주의가 고집했던 엄격한 대칭과 딱딱한 직선을 거부했다. 윌리엄 모리스와 동지 예술가들이 주도한 아츠 앤 크래프트 운동에서부터 시작된 이 흐름은, 아르누보로 이어져 식물의 덩굴, 꽃줄기, 여인의 머리카락 등 자연물에서 발견되는 유기적인 곡선을 가구는 물론 건축과 실내장식, 미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 끌어들였다.
이것은 단순히 예쁜 장식을 더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고전의 문법이라는 댐에 갇혀 있던 강물을 터뜨려, 생명력 넘치는 비정형의 물줄기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벨기에의 빅토르 오르타나 프랑스의 엑토르 기마르의 가구들을 보면, 나무는 더 이상 가공된 자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식물처럼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 화려한 곡선은 수공예적 숙련도를 극도로 요구했기에 대중화되기엔 너무나 비싼 예술적 사치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아르누보의 물줄기가 너무나 화려하고 복잡하게 굽이치던 사이, 20세기로 접어든 세계는 기계와 속도의 시대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1925년 파리 장식미술 박람회에서 정점을 찍은 아르데코는 아르누보의 비실용적인 곡선을 걷어내고, 다시 직선과 기하학적 형태를 소환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르데코가 끌어온 직선이 과거 신고전주의의 물줄기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들은 고대의 비례를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증기선, 자동차, 마천루 같은 기계 시대의 미학과 결합해 재편집했다. 신고전주의의 직선이 지성미를 상징했다면, 아르데코의 직선은 속도와 현대성을 상징했다. 샤크스킨, 상아, 래커 등 이국적이고 사치스러운 소재를 기하학적인 선 안에 가둠으로써, 고전적인 우아함을 현대적인 세련미로 치환해낸 것이다.
우리가 4편에서 만났던 존 러스킨의 시선은 여기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러스킨이 예찬했던 자연의 진실함은 아르누보의 모티프가 되었고, 그가 강조했던 공예의 도덕성은 과잉된 장식을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게 만드는 모더니즘의 토대가 되었다.
아르누보가 고전의 틀을 깨부수며 자유를 선사했다면, 아르데코는 그 자유로운 에너지를 현대적인 질서 안에 정돈했다. 이 두 물줄기는 결국 20세기 중반 미드 센츄리 모던(MCM)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만나게 된다. 셰이커의 실용성, 신고전주의의 비례, 아르누보의 유기적 곡선, 그리고 아르데코의 기하학적 간결함이 한데 섞여 우리가 지금 사랑하는 빈티지 가구의 원형을 완성한 것이다.
정리
아르누보의 파격: 자연의 유기적 곡선을 통해 신고전주의의 고전적 직선을 파괴하고 디자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아르데코의 재정의: 기계 시대에 맞춰 직선과 기하학적 비례를 재편집하여 현대적인 우아함을 창조했다.
디자인의 선순환: 모든 사조는 앞선 시대의 유산 위에서 탄생하며, 이 물줄기들이 모여 현대 디자인의 정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