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심리노트

chapter. 9

by 글쓰는 몽상가 LEE


* [심심한 심리노트]는 겹겹이 쌓인 마음의 깊이를 심심(甚深)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심심(心心)하게 스치는 감정 또는 사색을 담는 에세이입니다. 주로 심리를 주제로 한 영화 혹은 책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았는지 기록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영화 혹은 책 등 작품에 대한 줄거리나 설명은 간략히 할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이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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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오늘은 자신의 고통과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삶 그 자체를 예술로 그려낸 화가, 프리다 칼로의 [두 명의 프리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출처: 위키백과(왼), 나무위키(오)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화폭 위에 올린 화가였다.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살 때 겪은 버스 사고로 척추와 골반,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고 평생 지속된 육체적 고통과 반복되는 수술과 침대에 누운 채 그림을 그려야 했던 시간들은 프리다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핵심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에는 유난히 자화상이 많다. 이는 단순한 자기애나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다는 “나는 꿈을 그리지 않는다. 내가 사는 현실을 그린다”고 말하며 자신의 고통과 상처, 불안과 분열된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


갈라진 몸속에 무너진 기둥을 그려 넣은 [부서진 기둥], 두 개의 심장을 드러낸 채 앉아 있는 [두 명의 프리다]는 그녀가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사랑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리다의 그림은 종종 초현실주의로 분류되지만 그녀는 이 호칭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의 화면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상상이나 꿈 때문이 아니라 극단적인 현실을 상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유산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헨리 포드 병원]이나 가시 목걸이에 목이 조인 채 정면을 응시하는 자화상은 여성의 몸과 고통을 은폐하지 않고 정면으로 드러낸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시도였다. 또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멕시코의 정체성이다. 그녀는 전통 의상과 원주민 문화, 민속 신앙의 상징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식민지 이후 멕시코의 문화적 자긍심을 표현했다. 이는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 자신이 속한 땅과 역사에 대한 자각으로 확장된다.


프리다 칼로는 단순히 불행한 삶을 산 화가가 아니다. 그녀는 고통을 예술로 전환시킨 인물이자 여성의 몸과 정체성, 상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남긴 예술가이다. 프리다의 그림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아픔조차도 말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프리다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과 감정적 고통을 작품 속으로 전이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림이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심리적 방어이자 자기 치유의 도구였다는 뜻이다. ‘고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동시에 의미화한다’는 그녀의 방식은 자기 연민과는 다르다.


자기 연민이 고통에 머무른다면 프리다는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자신과 연결시켜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서사로 연결 지었다. 또한 프리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바라보았는데 [두 명의 프리다]에서 그녀는 강한 나와 상처 입은 나, 사회적 기대에 맞춰진 나와 내면의 진짜 나를 동시에 인정했다. 이런 자각은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통합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프리다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단순한 피해가 아닌 정체성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과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고통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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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하여]


출처: 구글 [두 명의 프리다]


그림을 처음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여인의 심장이다. 같은 얼굴, 같은 몸을 하고 있지만 심장은 다르게 드러나 있다. 한쪽은 온전하게 뛰고 있고 다른 한쪽은 상처 입은 채 피를 흘린다. 두 프리다는 손을 잡고 있지만 그 연결은 안정적이라기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이 그림은 흔히 ‘이혼 후의 고통’으로 설명되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단순한 실연의 기록이라기보다 자아가 둘로 나뉘는 순간의 내적 풍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정신역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분열이라는 방어기제를 떠올리게 한다. 감당하기 힘든 상실과 고통 앞에서 자아는 하나로 버티지 못하고, 사랑받는 나와 버려진 나로 갈라진다.


하나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관계 속에서 선택받았던 프리다다. 다른 하나는 서구식 드레스를 입고 있다. 사랑에서 밀려난 채 상처 입은 프리다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자아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망치지도 등을 돌리지도 않는다. 대신 손을 잡고 앉아 있다. 이는 프리다가 고통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고통을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처 입은 프리다의 심장은 노출되어 있고, 혈관은 잘려 피가 흐른다. 이는 상실 이후의 심리 상태, 애착 대상과의 단절이 신체적 고통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상징한다. 애착 이론에서 사랑의 상실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자아를 흔든다. 그래서 이별은 ‘마음이 아프다’가 아니라 실제로 무너지는 감각에 가까운 것이다.


반면 온전한 심장을 가진 프리다는 비교적 단정한 자세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완전히 평온하지 않아 보인다. 상처 입은 프리다와 연결된 혈관은 결국 하나로 순환함을 보여준다. 강해 보이는 자아 역시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이 그림에서 회복된 자아와 상처 입은 자아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분리될 수 없다.


프리다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극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지워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태도에 가깝다. 자기 연민과는 다르다. 자기 연민이 고통을 정체성으로 고정시킨다면 프리다는 고통을 응시하면서도 그것에 전부가 되지는 않으려 한다. 상처는 있지만 그 옆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남긴다.






이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내 안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나’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하고 평온한 자아와 상처 입고 불안한 자아가 동시에 존재하는 풍경은 단순한 자화상을 넘어 내면의 분열과 갈등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심리 지도처럼 느껴졌다.


그림을 보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의 상처 입은 부분과 강한 부분이 서로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림 속 인물에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내 감정을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했다. 상처와 강인함, 불안과 평온이 공존하는 장면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내 마음속 겹겹이 쌓인 감정을 들여다보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