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심리노트

chapter. 17

by 글쓰는 몽상가 LEE


* [심심한 심리노트]는 겹겹이 쌓인 마음의 깊이를 심심(甚深)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심심(心心)하게 스치는 감정 또는 사색을 담는 에세이입니다. 주로 심리를 주제로 한 영화 혹은 책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았는지 기록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영화 혹은 책 등 작품에 대한 줄거리나 설명은 간략히 할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이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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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사람은 거울을 볼 때 무엇을 확인할까. 흐트러진 머리카락일 수도 있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순간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얼굴이 정말 나일까.

오늘 소개할 작품은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고 파이프를 문 자화상(1889)]이다.

수많은 자화상 중에서도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붉은 머리와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그 그림. 고흐는 평생 동안 3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다. 그는 모델을 구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단순한 이유만으로 이 많은 자화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자화상은 단순한 '얼굴의 기록'이 아니라 그때의 자신을 붙잡아두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상태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지금의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제목 없음.jpg 출처: 구글 [고흐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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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하여]


이 자화상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이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딘가 우리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선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분명 앞을 보고 있지만 그 초점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시선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붙잡아두기 위한 시선에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얼굴을 이루고 있는 붓질 또한 인상적이다. 짧고 반복적인 선들이 일정한 방향 없이 겹쳐지며 피부와 배경을 채우고 있다. 이 선들은 단순히 형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내는 흔적처럼 보인다. 특히 배경과 얼굴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고 비슷한 결로 이어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보통 초상화에서는 인물을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배경을 단순하게 처리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오히려 인물과 배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듯하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의 내면 상태가 외부 환경과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은 언제나 바깥과 연결되어 있고 그 경계는 생각보다 쉽게 흐려진다. 색채 역시 자연스럽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피부에는 실제와 다른 색감이 섞여 있고 배경은 단조롭지 않게 흔들리는 색의 결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색의 선택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감각과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에 가깝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선과 불안정한 색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차분하고 눌린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고요함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감정을 바깥으로 터뜨리지 않은 채 안쪽에서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폴 고갱과 함께 지내던 시기, 반복되던 갈등 끝에 관계는 결국 균열을 맞았고 그 직후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귀 일부를 자르는 사건을 겪게 된다. 이 사건은 종종 충동적인 행동이나 기이한 일화로만 소비되지만 그 이면에는 단순한 분노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겹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 느껴지는 불안과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 감정이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사람은 그것을 바깥으로 표출하기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향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견디기 어려운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붙잡아두려는 시도처럼. 그렇게 놓고 보면 이 자화상 속 인물은 단순히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아니라 이미 한 번 무너진 이후의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지만,사실은 표면만 확인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감정이나 상태는 쉽게 지나쳐버린 채 괜찮은 척하는 얼굴만 익숙해진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피할 수 없게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온다.

그때의 시선은 타인을 향할 때보다 훨씬 더 낯설고 때로는 더 불편하다. 어쩌면 고흐가 반복해서 자화상을 그렸던 이유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끝내 이해되지 않는 자신을 계속 바라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고 싶은 모습만 선택해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tienne-girardet-KzTuBks7IWc-unsplash (1).jpg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