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유학 준비 중 가장 큰 고민 하나는 어떻게 현지어 준비를 (여기서는 ‘영어’라 하겠습니다) 할까입니다. 그리고 가장 흔한 조언은 ‘영어로 책을 많이 읽혀라’ 일 텐데, 좋은 조언이지만, 독서 습관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곧 영어로 학업을 따라가야 하는 ‘유학’ 목적에는 부적합합니다. 미리 말씀드릴 점은 여기까지 읽고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 것 같은 기대를 가지셨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제한적인 시간 내에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휘력 vocabulary입니다. 문법은 고민하지 말고 ‘단어’의 총량에 집중합니다. 유창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는 단어로 기본적인 생존이 가능하듯, 반대로 일상 수준의 영어가 가능해도 특정 과목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의미를 모르면 그만큼 시행착오를 거쳐야 수업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하루에 사용하는 단어는 2~ 3천 단어 내외며, 적절하게 섞어 구사하면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다 얘기합니다. 하지만 학생이 수업에서 듣는 용어는 같은 단어라도 학문적인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아이 나이에 맞는 단어들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준비가 가능하니, 해외 유학을 고려하고 있다면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학년별/과목별로 나눠서 공략.
학생의 나이에 따라 커버할 양이 달라지니 나누어 접근해 보겠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또는 그 아래라면 알아야 할 어휘는 동 나이대에 외국 아이들이 배우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몸 부위의 명칭, 집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구와 물건들, 가족관계, 사물의 위치, 감정과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들로 시작합니다. 인터넷에서 주제별 그림으로 만들어진 자료들을 (예, 구글에서 ‘body parts in English’, 또는 ‘Year 1 vocabulary’ 검색) 찾을 수 있으니 학습에 활용하면 편리합니다.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현지에서 빠르게 영어를 흡수해 나갈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불안하다면, 현지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미 습득했을 수준의 단어들을 미리 익힐 수 있도록 준비해 주면 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고등학교로의 유학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기초적인 단어들 외 학교에서 접할 과목들의 어휘와 개념/정의 단어를,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바로 아래 학년에서 배웠을 개념 용어까지 미리 익혀간다면 학교에서 바로 학업을 따라가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요즘은 수학도 단순 계산이 아닌 서술형으로 개념 설명과 시험문제가 출제되기에 필자도 아이의 중학교 수준의 수학 문제를 가끔 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학년에서 쓰이는 수학 용어를 영어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필자처럼 10대 중/후반에 시작해서 유학을 마친 친구들이 오히려 고등학교나 대학 수준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알아도 초등교육과정에서 쓰이는 어휘들을 잘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몇 가지 예로 ‘다각형’, ‘공통분모’, ‘정수’, ‘소수’, ‘빗면’, ‘직각’, ‘예각’, ‘둔각’ 등의 그 학년에서 다뤄질 단어를 미리 학습해 가면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수학 시간 소화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이라면 각 학년별로 배우는 주제는 대부분 정해져 있고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배울 ‘광합성’, ‘대체 자원’, ‘조류’, ‘양서류’, ‘포식자’, ‘분자’, ‘원자’, ‘자전’, ‘질량’, ‘속도’ 등의 단어들을 모르면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있겠지요? 사실 이것들은 현지 학생들도 배우기 전까지는 모르는 단어들이지만, 이런 용어들을 하급 학년에서 영어로 접할 기회를 놓쳤다면 유학생에게 불리한 핸디캡이 될 수 있고, 이런 정의/단어들은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상급학년의 수업이 진행되니 수업을 따라가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동급생들은 다 알고 있는 기본적인 단어를 모른다면 아무래도 시험 성적관리가 힘들어질 수 있기에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구글에 ‘elementary school math vocabulary’ 또는 호주 학교라면 ‘primary school science vocabulary’라고 검색하면 이미 다 학년별로 정리된 자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 용어들이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용어들도 아니며, 같은 단어라도 학문적으로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수학과 과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특화된 용어들이 상대적으로 적고, 대입시험도 영어/수학/과학 성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니 우선은 과학과 수학 용어들을 중점적으로 준비하시면 됩니다.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학생이라면 위의 방법은 너무나 방대한 양의 단어를 커버해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렵고, 이제는 전공과목 어휘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utility’, ‘lift’, ‘drag’ 이란 단어는 누구나 아는 쉬운 단어이지만, 공학/경제학/심리학에서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이 나이대의 유학생을 위한 조언은 마지막에 짧게 별도로 언급하겠습니다.
둘째, 주제를 정해 어휘력을 넓혀가자.
어떻게 하면 덜 지루하게 어휘력을 넓힐 수 있는지 필자가 처음 미국에서 배운 방법이기도 하고, 다른 외국어를 익힐 때도 많이 쓰이는 방법입니다. 다만, 읽으시는 분 각자의 목표가 다를 테니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는 각자가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신체에 관련한 단어를 익힌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림으로 만들어진 자료는 인터넷에 넘치지만 개인의 어학 수준이 다를 수 있으니 너무 유아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기초적인 자료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손가락, 발가락 등의 단순한 외부 명칭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 깊이 있게 들어가 ‘간’, ‘방광’ 등 기본적인 장기의 명칭, 다음은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지는 않아도 모르면 표현이 불가능한 ‘귓불’, ‘연골’, ‘굳은살’, ‘인대’, ‘목젖’, ‘가래’ 등, 그리고 각 부분별로 많이 발생하는 질병 등으로 리스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신체를 어느 정도 커버했다면, 다음은 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구, 전자기기, 식재료, 장치, 물품 등을 방별로 쪼개서 첫 주는 거실, 다음 주는 화장실, 그리고 부엌, 주차장 등으로 단어를 정리해서 학습합니다. 그다음 달은 교통수단을 주제로 첫 주는 대중교통 이용 시 발견할 수 있는 것 들 등으로 그룹화해서 어휘력을 넓혀가면, 상황별로 이미지로 연계되어 머릿속에 각인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암기가 가능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집’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가구나 큰 물건들은 이미 안다 자만하지 말고, ‘두꺼비집’, ‘배수구’, ‘형광등 소켓트’, ‘멀티탭’ (이것도 콩글리쉬), ‘변기 뚫는 연장’, ‘비데’까지 연계시켜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중교통이라면 ‘지하철’, ‘자동차’ 등의 일차원적인 것을 넘어, ‘개찰구’, ‘전철 손잡이’, ‘승무원’, ‘비상구’, ‘수유실’, ‘노약자석’, ‘유모차 전용’ 등으로 확장하다 보면 분명히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것이 훨. 씬. 더 많을 것입니다.
다른 주제로 생선 종류, 꽃 이름, 동물 이름, 음식 이름 등으로 일상생활을 하며 맞닥뜨리게 되는 장소나 상황별로 단어를 그룹화시켜 익히게 하면 분명 아이가 더 흥미 있게 소화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본인의 흥미에 맞는 주제의 단어들은 확실하게 잡자.
위에서 얘기한 ‘주제별 그룹화’에서 한발 더 나아간 방법인데, 특별히 아이가 흥미를 가진 취미나 특기가 있다면 거기서 사용되는 용어들은 좀 더 집중적으로 영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분야는 스스로 찾아보고, 관련된 용어들을 익혀가면서 지식을 넓혀 나가기 마련입니다. 제 아이가 산악자전거를 선물로 받고,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자전거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더니 자전거 종류, 부품, 기술 및 제조사 등을 술술 얘기하고, 언젠가는 또 축구에 관련된 용어와 유명 선수들,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 등은 저보다도 훨씬 다양하게 영어로 표현을 하더군요. 즉, 어떤 분야던지 (컴퓨터, 피아노, 사진, 게임, K팝 등) 무관하게 아이가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다면 어휘력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로 활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서양권에서는 본인의 의지와 호불호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거나, 어느 상황에서 뭘 좋아하는지 설명해 보라는 주제의 스피치/에세이 시간이 주어졌는데,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일차원적인 수준에서 못 벗어나던지, 적합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해 본인의 열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진짜로 이걸 좋아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요리를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관심이 많다는 것 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누군가 김치가 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던지, 학교 스피치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 만드는 방법 설명하기’라는 주제로 5분 정도의 시간을 채워야 하는 경우의 상황이 발생했는데, 정작 발효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단순하게 ‘코리안 피클’이라고 얼버무려 버린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중요하게는 요리학교 입학을 앞둔 인터뷰일 수도, 유명 식당에 요리사가 필요한 상황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란 것을 알고 한번 떠보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어휘력 부족으로 자기 열정을 피력하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본인의 특기에 대해 어필을 해야 할 경우가 많기에, 자기의 전문 분야는 열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어휘력은 장착하고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건 처음 유학을 시작해서 친구를 사귀는데도 주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넷째, 전문분야는 한국어와 영어 둘 다 잘해야.
대학 수업 중 한 번은 교수가 필자가 한국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물체를 위로 올리는 힘인 lift 가 한국말로 뭐냐고 물었는데, 불행히도 저는 ‘Lift’가 ‘양력’이라는 것 알지 못했기에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참 나중에서야 깨우친 것은 스스로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국말과 영어로 동시에 정확하게 전문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 중 만나게 되는 상대가 본인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필요에 따라 그 사람이 익숙한 용어로 정확히 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본인의 전공이나 업무와 관련된 부분에서 명확한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틀린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본인의 신뢰도는 하락하게 됩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취직을 하였는데 본인의 직무나 전문성을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상대방에게 설명하거나, 회사 내부에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경우 본인의 지식을 영어로밖에 표현을 못 한다면 상당히 불리합니다. 또한, 불합리하게 보이겠지만 조직 내 통용되는 용어들이 있고 이 용어들을 정확히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보고서나 이메일 작성 시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단어 선택을 해야 하기에 가능한 전공 관련 용어는 한국어와 영어 둘 다 편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알아야 글의 수준이 올라간다.
지금까지 어휘력을 넓히는 방법으로 명칭 즉 명사를 주로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어가 익숙해진 시점에서 작문을 하다 보면 글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부사와 형용사라는 걸 알게 되고, 영어로 된 문학작품을 읽을 때 해석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주인공의 감정이나 주변 상황 묘사하는 표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작문 능력이 상당히 중요시되는데, 아무리 잘 써진 에세이라도 부사의 사용이 제한적이면 글쓴이의 감정과 표현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높은 평가도 받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크다’라는 것을 표현할 때 big, huge 만 아는 것과 jumbo, large, big-boned, gigantic, immense, massive, vast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쓴 에세이는 뿜어내는 뉘앙스 자제가 틀리겠지요? 역시 이번에도 다행인 것은 이것들도 구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Popular adjective to describe an emotion’이라고 검색해 보면 약 150개의 기분을 나타내는 형용사들이, 사람이나 성격을 표현하는 ‘adjective to describe a person or personality’ 에는 90개 정도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작문적인 표현력을 기르고 싶다면 부사와 형용사의 활용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을 유념해 두면 좋겠습니다.
내용이 길었습니다. 마무리하자면, 언어란 각 나이대별로 익히는 단어의 종류와 군이 다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기유학생 출신들은 본인 스스로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영어로는 가장 기초적인 유아적 단어들, 한국어로는 고등교육에서 배우는 학문적인 단어들을 모르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영어도 애매하고 한국어도 애매한 딱. 그런 상황입니다....
다른 분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어 준비를 해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