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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멘토 배군 Nov 06. 2022

05. 국제정세를 읽을 수 있는 멘토의 중요성

    필자가 유학했던 고등학교에도 guidance counsellor라고 진학상담 선생들이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학상담을 해주었고, 학생이 열의만 있다면 원하는 만큼 상담을 요청할 수 있었다. 미 중부 소재의 공립학교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카운슬러 중 한 명은 그 주의 주립대학을 졸업한 생물교사, 또 한 명은 더 작은 주립대 출신의 수학교사였던 것은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그 주에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 지역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나쁜 조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성적표, 특히 다른 과목 대비 월등히 좋았던 수학과 과학점수를 바탕으로 주 안에서 이공계로 유명한 P대를 추천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그 주 출신의 학생에게는 아마 가장 가성비 좋은 조언이었음은 의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대학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직장을 잡았으니 나름 흠잡을 수 없는 조언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12학년 졸업반이었을 당시, 생물학 수업보조를 했던 인연으로 (졸업학점을 미리 이수한 학생들은 저학년들의 수업에 수업보조로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봉사를 했다) 상담교사였던 생물 선생은 I 대 생물학과를 강력히 추천했고, Premed (우리나라로 치면 의예과 과정)로 생물을 전공한 후 의대로 진학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상황에서는 제일 적절한 조언이었다는 건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은 저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언이었고, 당시에는 의대에 큰 뜻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졸업생 120명 중 절반 이상이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정도의 대학 진학률을 가지고 있었으며, 필자가 기억하는 한 타주로 (out of state) 대학을 진학한 동창생은 없었다. 그도 그럴 듯이 본인이 거주하는 주 안의 주립대학에 진학하면 거의 무료로 대학을 다닐 수 있는데,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열 배가 넘는 사립대학이나, 다섯 배 이상의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 타 주의 주립대학에 가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카운슬러들은 아이비리그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는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무지했을 뿐 아니라, 외국학생을 위해 맞춤으로 추천서를 작성해줬던 전례도 없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다. 다만 필자가 대학 진학을 고려할 때 주위에 조금 더 큰 세상을 경험한, 그래서 앞으로의 취업시장이나 글로벌하게 힘과 경제의 판도, 또는 신기술로 인해 급변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던 ‘조력자’가 있었다면,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을 좀 더 방향성 있게 보낼 수 있었고, 대학을 결정할 때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고,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고 존경한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평생을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 당신이 살아오면서 평생을 후회하시면서 이루지 못한, 아니 입학을 하고도 경제적인 사정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서울로의 대학 진학이 한으로 남아, 아들에게는 더 좋은 교육환경의 만들어 주고자 내린 결정으로 지금의 팔자가 사회생활 영위하고 먹고살고 있다는 것 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18살의 나이에 진로와 어느 전공을 선택할지에 고민할 시기에 부모님은 물리적으로 너무나도 멀리 계셨고, 미국에서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 주실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 세계정세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미래에 펼쳐질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진 인물이 얼마나 있었겠으며,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멘토로 삼을만한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시대도 아녔으니, 아들자식이 혼자 내리는 결정을 멀리서 묵묵히 응원해 주고,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셨던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드린다.

 

우선 전공선택에 대해 무지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요가 많이 없는 '특수 전공'의 학위를 가지고 구직활동 시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려 대학 졸업 후 경제활동을 시작해야 하는 불과 5년 정도의 미래만 세밀하게 따져보고 주변에서 조언을 구했다면, 곧 다가올 현실과 장애물에 대한 시그널을 계속 인지할 수 있었겠지만 필자는 그러지 못했다. 더군다나 한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운 좋게 ‘컴공’으로 조건부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세 가지 이유로 진학을 포기했다. 


첫째, 산속에 위치한 캠퍼스는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다웠지만 ‘아 또 이 시골에 갇혔구나’라는 선입견을 갖고 우선 거부했다. 둘째, 컴퓨터공학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필자가 가지고 있던 컴퓨터 전공자들에 대한 선입견은, 두꺼운 안경을 쓴 nerdy 한 프로그래머였고 그렇게 살기에 '난 너무 쿨하다'라고 착각했고, 정말 ‘쿨’하게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조건부 입학'이라는 게 자존심 상했다. 조건부로 입학 후 1학년 성적을 보고 컴공과로 받아주겠다는 조건이었는데, 다른 여러 대학에서도 입학허가서를 손에 쥐고 있었던 터라 기분이 상했다. 아주 어설프게 감성적으로 내린 변명이었고, 이것이 얼마나 무지한 결정이었는지를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에피소드 하나. 


대학교 1학년 필수과목으로 들었던 컴퓨터 언어,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Fortran과 C++이라는 기계어는 너무나 직관적이지 않아 이해하기 힘들었고, 프로그래밍은 그야말로 단순노동이었다. 평생을 코딩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당시 '다가올 미래'를 눈앞에서 뻔이 보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94년도는 전화선을 통한 모뎀으로 컴퓨터들이 막 연결되기 시작할 때였고 (속도는 무지하게 느렸지만) 최초로 인터넷과 검색엔진이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1년 동안 함께 생활한 룸메이트는 전형적인 ‘너드’였다. 오레곤주에서 온 그 친구는 움직이는 게 힘들 만큼 거구였고, 수업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지만, 밤새 컴퓨터 앞에서 사부작대면서 뭔가를 했다. 필자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전날 자기 전에 봤던 그 자세 그대로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으니, 당연히 수업은 둘째치고 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에 학사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밤새 엄청난 인내심으로 (사진 한 장 다운받으려면 몇 분이 걸리던 시대였다) 넘쳐나는 호르몬을 주체할 수 없는 동급생들을 위해 성인물을 다운로드하여 모니터에서 상영해 주었다. 덕분에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20명의 남자 동급생들은 주중에도 자주 필자의 방에 눈에 불을 켜며 모여들었고, 저자는 방에서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졸업 후 이 룸메이트의 소식은 페이스북에서 종종 듣고 있지만,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컴퓨터 사이언스, 프로그래밍이나 인터넷 관련 전공으로 졸업한 동기들은 유수의 IT기업의 러브콜을 받았다는 것 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작 저자는 그 중심에 있었지만 (게다가 1, 2학년은 보스턴에 있는 사립대학이었다! 지근거리에서 페이스북이 만들어지고 있던 그때다 말이다!!!!) 변화와 흐름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무심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앞으로 5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양산업의 전공이거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전공을 굳이 선택하겠다는 학생에게 진정한 멘토라면 어떤 조언을 할까? 전망이 밝지는 않지만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면 그나마 박수쳐줄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현실에 맞게 조언을 해주고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즉, 어떤 산업이나 직업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고, 그 초기 수요에 맞는 전공과목을 선택했을 때 남들과 비교해 조금 더 앞선 출발점에 서서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유학생들은 현지 학생들과 같은 전략으로 취업이나 직업을 설계하면 안 된다. 현지에서 취업이 목표라면 우선 취업비자가 발급되어야 하고, 이 취업비자도 한정된 기간만 유효하다. 영주권으로 연결될 수 없다면 귀국은 시간문제인 상황이고, 남학생들은 ‘병역의 의무’라는 중요한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현지 회사에서 유학생들을 채용하려면 비자 스폰서 비용 등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똑같은 조건을 가진 자국 학생을 마다하고 굳이 유학생을 채용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유학생들은 현지에서 취업할 때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플랜을 짜 나가야 하고, 또한 백업플랜으로 본국에서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전공은 어떤 것들이 있고, 귀국할 시기에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도 미리 예측하면서 전공 선택을 해야 한다. 이 고민을 한 사람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본인이 결정한 결과에 대한 심리적인 만족도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정리하자면, 지금 유학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과 그들의 부모라면, 현지와 한국에서의 취업이나 창업에 대해서 유학생에게 유의미한 조언을 해줄 수 있고, 곧 다가올 미래와 세계경제의 파워 이동 또는 특정 지역이나 산업에 대한 유, 불리한 부분 등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적성에 맞는 전공과 대학을 선택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경험해본 선배 또는 조력자들이 주변에 있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본인 주변에 없다면 일정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이런 멘토들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 이런 멘토들이 해주는 조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생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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