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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Aug 21. 2021

싱가포르, 생일 축하해!

코비드 시대 속 싱가포르 관찰하기

Happy Birthday Singapore! 


내셔널 데이를 맞아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이 말이 참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장소, 국가라는 대상에 애정이 담겨 귀엽다. "한국, 생일 축하해" 라고 바꾸어 말하면 나도 모르게 어색하다. 광복절, 독립기념일과 같은 국가의 날에 국민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국가와 함께 축하를 표현하는 편안한 말이 한국엔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싱가포르에서 맞는 2번째 독립기념일,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로운 한국과 다른 모습들을 정리해본다. 



독립 기념일 행사가 다른 날로 연기될 수 있다.


올해 독립기념일 행사인 내셔널 데이 퍼레이드는 독립기념일(8월 9일)의 약 2주일 뒤인 8월 21일로 미뤄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사의 목적은 '축하'고 축하 받을 상황에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는 2021년 3월부터 강력하게 전국민 백신 접종을 추진했다. 고령층과 의료 종사자, 자국민 접종이 먼저 시작되었고, 약 2주 후 외국인들도 무료 접종 대상에 포함되어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정부는 내셔널 데이인 8월 9일까지 국민의 70%의 백신 접종을 마치는 걸 목표했고 실제로 달성했다. 8월 15일 코로나 케이스는 일 100건 아래로 떨어졌다. 


Source: https://www.straitstimes.com/multimedia/graphics/2021/06/singapore-covid-vaccination-tracker


공급 물량을 확보하고 빠르게 추진했음에도 기존 발병 케이스의 확산을 모니터링하며 가장 안전한 상황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자 무리하게 행사를 밀어붙이지 않고, 2차 목표를 세워 Phase 2와 '전국민 코로나 백신 접종' 상황에 맞춰 다른 사건들의 우선순위를 재정렬했다. 내셔널 데이 퍼레이드는 8월 22일로 2주 미뤄졌다. 목표 지향적이고 단호한 동시에 융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에 따라 다른 가치의 중요도는 훨씬 쉽게 바뀐다. 우선 순위에 철저하다. 정부에게도 현 시국은 복잡하고 어렵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걸 직접 말한다. 방향은 정해졌고, 같은 방향으로 가려는 시민의 참여만이 싱가포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준다고 홍보한다. 


한국에서 광복절 행사를 8월 15일보다 2주 후인 8월 29일에 한다고 하면 비난 여론이 조성됐을 것 같다. 또는 8월 15일 날짜에 맞춰 형태를 바꿔 행사를 진행했을 것 같다. 통제 불가능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한 것만으로도 정부는 비난받을 수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일 년에 한 번 전국민이 즐기고 축하하는 순간을 조금 더 늦게 갖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일년에 한 번, 정부의 목소리가 압축되어 전해지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셔널 데이 대국민 메세지, 항상 3가지


대국민 담화인 내셔널 데이 랠리(National Day Rally)도 퍼레이드 1주일 후인 28일로 미뤄져 정작 8월 9일은 조용히 지나가겠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총리가 영상 메세지를 올렸다. 역시나 3가지를 선정했다. 싱가포르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항상 3가지를 갖는다. 현지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중고등학생때부터 3가지 핵심 주제, 3가지 핵심 안건, 3가지 근거 등 숫자 3을 활용해서 커뮤니케이션하도록 교육받는다고 한다. 3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고, 3가지를 선정하면 충분히 내용이 풍부해지고, 인지적으로도 한 덩어리로 기억하기 쉽다고 한다. 


올해는 3가지는 1) 저임금 노동자, 2) 외국인 노동자, 3) 인종과 종교 다양성 였다. 



총리의 저임금 노동자 (Low wage worker) 에 대한 첫번째 언급을 듣고 놀랐다. 모두가 은근히 느끼고 있던 동시에 어려운 문제를 숨기지 않고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제도가 없고 주변 동남아시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이주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력이 싱가포리안과 외국인의 고부가가치 산업 집중에 도움을 주는 구조의 싱가포르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 언급되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사회의 가장 불안정한 부분을 건드려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작년 -- ,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숙사에서 클러스터가 발생하여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진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앞으로 또 찾아오게 될 국가 전염병 상황에서 한 국가, 한 장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다른 집단에게도 위험은 전이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다. 


불안함과 걱정이 올라오는 찰나에 정부가 먼저 아젠다를 가져갔다. 회사에서도 누군가가 이미 시작해버린 프로젝트는 그 사람에 맡기게 된다. 결과와 평가는 나중의 일이더라도 당장 불거진 문제는 누군가 나서서 일을 시작했으니 해결되리라 믿게 된다. 그렇게 이 문제는 꺼내졌고 관리되려는 것 같다. 이 문제가 가장 먼저 언급되어서 놀랐다고 말하니 싱가포리안 친구는 어떻게 해결할 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젠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어떤 정책들로 추진될지 지켜봐야겠다. 


두번째, 외국인 노동자 (Foreigner Worker) 에 대한 내용은 나와도 연결될 수 있기에 더 관심갖고 들었다. 전세계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경제 성장 둔화 추세가 싱가포르도 예외는 아니다. 외국인 비중이 국민의 30%가 넘는 싱가포르에서는 젊은 세대의 취업난과 집값 상승에 외국인 유입에 대한 정책이 항상 밀접하게 연결된다. 여기에 싱가포르로 들어오려는 주변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권과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의 수요는 더 높아지고 있기에 정부로서는 안밖의 균형을 잘 잡아야하는 문제다. 


"I understand these anxieties and problems. We have to adjust our policies to manage the quality, numbers and concentrations of foreigners in SingaporeTurning inwards is against our fundamental interests. Most importantly, it goes against our values of openness, and of being accepting of others who are different from us."


세번째, 인종과 종교 (Race and Religion) 다양성은 그야말로 싱가포르의 환경이자 문화다. 아시아에서는 경제 수준이 높은 편인 한국과 싱가포르는 사회에 흐르는 안건이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데, 취업난, 부동산 가격 상승, 저출산 등의 문제는 공통되면서, 싱가포르는 여기에 중국인, 말레이시안, 인디안, 동남아시안, 전세계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이 각각 30~50%의 구성을 차지하는 다인종 사회이기에 정책과 발언 하나하나에 이 다인종, 다종교를 고려하여야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환경에 맞춰 빠르게 정책을 변화시키고, 다시 적응하고, 평가하고 또 변화하는게 싱가포르의 숙명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국가의 숙명인 '다인종, 다문화, 아시아의 글로벌 허브'는 지키면서. 정식 내셔널 데이 랠리, 대국민 담화에서는 어떤 국정 과제가 어떤 논리와 함께 소개될지 궁금하다. 분명 이번에도 3가지일텐데 이 3가지 안건이 내부에서 어떤 논의를 거치고,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고, 누가 선정에 참여하는지까지도 궁금하다. 싱가포르 친구들과 함께 와인잔 기울이며 담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기대된다. 



다같이 축하하는 날. Happy National Day, Singapore!


즐거운 광복절! 행복한 광복절! 이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다소 어색하다. 선조들의 피, 땀, 눈물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무거운 메세지들에 '기쁨'과 '축하' 보다는 누군가의 희생을 슬퍼하고, 감사하고, 진지해야 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정부가 자화자찬도 하고, 국민들이 빨간 옷 (싱가포르 국기색) 을 챙겨 입고, 국기를 흔들고, 싱가포르의 번영과 성장을 축하한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매년 찾아오는 일상이기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넘어간다. 그럼에도 공휴일에 쉴 수 있어 기뻐하고, Happy National Day, Happy Birthday 라며 나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소셜미디어 포스트가 많이 올라오는 건 외국인으로서 보기 좋다. 


코로나로 현장 참석 인원은 제한되고 유튜브(Mediacorp)로 생중계된 2021 National Day Parade


그러고 보니 싱가포르는 자축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일, 국가의 행사, 추진한 정책, 정책의 효과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자축'하는 결론까지 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때마침 회사의 퍼포먼스 리뷰철이라 공들여 제출하는 셀프 리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60도 피어리뷰와 셀프 리뷰 내용을 통해 1년에 2번 회사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성과와 기여도를 꽤나 엄격하게 평가 받는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 내가 모르는 성과는 남도 모른다. 내가 직접 내 자원, 시간과 지식, 노동력 투자를 결정한 만큼 이를 활용해 만들어낸 비즈니스 임팩트는 직접 의미를 해석하고 효과를 정리해 명확히 알려야 한다. 그 결과가 매니저와 동료의 눈과 머리에도 합리적으로 인식될 때 인정받고 보상받고 축하받을 수 있다. 



자축과 동시에 어렵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그 어려움을 인정해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함으로써, 그럼에도 생기는 문제와 피해와 실패 속에서 여전히 어렵지만 노력하다 해결하는 결론을 갖게 되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조직은 위기에 대체하기 어려운 그런 조직이지 않을까. 특히 모두가 동시에 위기를 맞았을 때 더 빛나는. 좋은 정책의 효과는 시차를 갖고 찾아온다. 해가 쨍쨍한, 또는 비가 조금 내리는 호시절에는 드러나지 않는 둑의 미세한 실금들이 비가 많이 오면 터지기 시작한다. 한번 터진 둑은 사라져버린다. 미세한 실금을 끊임없이 없애며 견고하게 만드는 것만이 우리 모두의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해주지 않을까.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관리하며, 도시의 강점과 국가의 강점을 알고 취하는 도시와 국가 그 사이에 있는 싱가포르.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의 모습과 유사한 점도 참 많고,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에서 개인적으로 배우는 점도 참 많다. 이 나라에 살며 실시간 대응을 외국인의 눈으로 지켜보는게, 또 한국과 비교해보는게 나의 일상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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