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좋게 말하면 잘 들어요
체육대회 날, 계주를 하다 우리 반 아이가 다른 반 아이와 부딪히면서 넘어졌다.
보건 선생님의 응급처치가 끝나자, 그 아이는 자신과 부딪힌 아이에게로 돌진했다.
다급하게 아이를 말리고, 흥분한 아이를 진정시킨 후 달래 가며 대화를 했다.
넘어진 아이는 다른 친구가 일부러 자신을 밀어서 넘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기 중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므로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혹시나 방과 후에 큰 다툼으로 번질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다친 부위도 제법 넓었기에 학부모에게 전화를 드렸다.
보건선생님의 응급처치가 있긴 했지만 다친 부위가 제법 넓어서 살펴보고 계속 드레싱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며 다른 반 아이와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도 함께 전했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시며 요즘 아이의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아주 모범적이지는 않지만 특별히 가정에 지도를 부탁할 정도의 학생은 아니었고, 오히려 교사에게 매우 살갑게 다가오는 애교스러운 아이라 특별한 문제없이 친구들과도 선생님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라 전했다.(가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실내에서 실외화를 신어서 벌점을 받기도 하지만 부모님께 전화드릴 정도의 문제행동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벌점이 한 번씩 문자로 와서,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고 하셨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미학적인 대화였으나.
뒤를 이어지는 어머님의 폭포수 같은 발언들.
- 우리 아이는요, 화내면서 얘기하면 더 엇나가고 잘 안 듣고 그러거든요. 잘못을 해도 조곤조곤 타이르면 다 알아듣고 잘 들어요.
- (어머니. 교실에서 운동화 신지 말라고 조곤조곤 수십 번도 더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만..)
- 그리고 우리 애가 목소리가 커서 행동도 더 커 보이고 잘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억울할 때도 많거든요. 전에도 우리 애가 다른 친구를 때렸는데요. 그때도 자꾸 자기를 놀려서 참다 참다 한 대 때린 건데 선생님이 우리 애한테 잘못했다고 하셔서...
- (이유를 떠나 친구를 때렸는데 잘못한 게 아니면 뭐죠 어머니?)
- 그래서 우리 애가 선생님에 대해서 불신도 좀 있고요. 자꾸 지적하고 혼내고 화내면 더 안 들을 수도 있어요. 좋게 좋게 얘기하면 다 알아듣고요. 욱하는 것도 좀 있어서.. 욱할 땐 좀 뒀다가 가라앉고 나서 얘기하면 대화가 잘 되고요.
- (선생님에 대한 불신은 어머니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아 그런가요? 사실 저는 A 지도하면서 전혀 못 느꼈던 부분이거든요. 제가 지도할 때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고, 늘 살갑게 애교도 많은 편이고요. 그리고 A뿐만 아니라 이 나이 때 아이들이 거의 그래요 어머니. 사춘기잖아요 하하. A 지도하는 데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많이 다친 것도 있고 학급 대표로 계주 나갔는데 넘어져서 여러모로 속상할 것 같기도 하고, 집에서 한번 살펴보시고 다독여주십사 하고 전화 한 번 드렸습니다.
-... 네. 수고하세요 선생님.
어머님께서는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했다.
물론 나 포함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을 보아도 대부분의 경우, 차분하게 조곤조곤 설명하고 타이르는 편이다. 그것이 학생과의 장기적인 관계 형성에서도, 교육 면에서도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때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단호하고 크게 꾸짖을 만한 상황도 생기고는 한다. 친구들 앞에서 반항하는 게 더 멋지다는 착각을 하고 선생님과 힘의 줄다리기를 하려고도 한다.
과연 그 '우리 애' 자신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다 좋게 얘기했을까?
앞으로 살아나갈 사회에서도 모두가 자신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상황만이 있을까?
오늘도 나는 '우리 아이' 사용법을 익혔다.
'우리 아이'들이 '타인'의 사용법도 익히며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