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ChatGPT가 등장했을 때는 이것이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고,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미래를 긍정하지 않는다. AI는 그동안 우리가 만들 수 없었던 수준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 쓰이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것을 훨씬 값싸게 재생산하는 데 쓰인다. 기술 자체는 분명 새로운 것이지만,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장인 정신이 소멸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AI는 아직 그렇게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지는 못한다. 코드를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정립된 best practice도 별로 없는 프로젝트에서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당장 기능을 구현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컨텍스트를 잘 넣으면 된다고 하겠지만, 애초에 그 미묘한 뉘앙스를 언어로 다 담을 수도 없다. 여러 다양한 옵션 별로 각각 장단점이 있고, 그 장점과 단점의 크기를 잘 저울질해야 하는데 AI는 그런 미묘한 판단에 매우 약하다. 그런 건 학습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림도 그렇다. 우리가 개발한 이전 게임에서는 게임 아트를 하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AI 그림을 활용했었다. 근데 난 그게 항상 너무 아쉬웠고, 지금도 그때 만들었던 것을 보면 부끄럽다. 그래서 지금 개발 중인 신작에서는 AI를 쓰지 않는다. AI의 윤리적인 문제고 뭐고를 떠나서, 그냥 퀄리티 자체가 안 나온다. 지금 게임 아트를 하시는 분한테 AI를 활용해 보라고 할 생각도 없다. 절대 내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수도 없고, 도움도 안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모두가 AI를 써서 작업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는지 자랑하는 시대에, 아직도 수작업을 고수한다는 것이. 근데 난 진심으로 그들에게 묻고 싶다. AI를 써서 만든 작업물이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게임, 소설 등 모든 것을 통틀어서, 내가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대충 한 것이 없고 하나하나 깊은 고민을 담아 만든 것이 느껴지는 것들, 난 그런 것들을 볼 때 감동을 받는다. 지금의 AI는 절대 그 정도 깊이의 고민을 담지 못한다. 난 그렇게 영혼 없는 창작물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별개로 앞으로 이 세상에는 점점 더 AI로 만든 쓰레기가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지금도 그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에는 구글에 어떤 주제를 검색하면, 그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연구하여 나온 통찰을 담은 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AI 돌려서 만든, 매우 일반론적이고 안전한 얘기만 하는 쓰레기 SEO 글밖에 안 나온다. 보석 같은 글은 그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발견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논리를 통해 생산된 무가치한 글들만이 우리에게 진열될 뿐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진 생산 비용은 역설적으로 정보의 질을 훨씬 더 악화시키고 있다. 글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 AI 시대에 금광을 찾아 뛰어드는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눈이 먼 것만 같다. 나도 한때 그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안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다 보면 “돈만 벌면 된다”는 마인드가 마치 종교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돈만 벌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세상.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떠한 가치도 중요하지 않다. 정말 제대로 된 정보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헤매든 말든, 돈만 벌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업가로서 추앙받는다. 나는 정말 좋은 것을 경험하고 즐기고 싶은데, 이 사업가란 사람들은 계속 쓰레기를 들이민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어떤 AI 서비스가 또 출시 소식을 알리며, 어딘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사람들이 이제 대체되었다며 요란을 떤다.
이제는 아무도 더 이상 퀄리티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개발자라면 뛰어난 개발자를 롤모델로 삼고 그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 공부하고, 혼자서 라이브러리를 만들어보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이 더 좋은 코드인지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계속해서 본인의 실력을 연마해 나갔다. 근데 이제는 아무도 더 이상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번에 무슨 바이브 코딩 툴이 나왔고, 에이전트가 어쩌고, 이걸 쓰면 이제 프롬프트만 딸각해도 코드가 만들어지니 뭐니, 온통 그런 얘기뿐이다. 그로 인해 떨어지는 안정성과 수준 낮은 UX는 모두 소비자의 몫이다. 요즘 빅테크 서비스들에서도 어이가 없는 버그를 자주 발견하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는 된다. 높은 퀄리티의 가성비가 안 나오는 거다. 사실 지금도 이미 상당수의 개발자가 AI보다 개발을 못한다. 지금 AI의 수준이 70이라 가정했을 때, 원래 같으면 이 수준에 도달하는 데만 해도 최소 2년 이상의 공부와 훈련이 필요했다. 그것도 정말 학습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 가정했을 때. 그러면 이제 막 개발을 공부하기 시작한 입장에서는, 어차피 2년 새빠지게 공부해 봤자 AI로 코딩하는 것만도 못하고 속도도 훨씬 느릴 텐데, 뭐 하러 공부하나 싶은 거다. 근데 문제는, 그런 사람은 아무리 AI를 잘 써도 절대 70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수준을 하려면,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서 70까지 도달하고, 그다음 80까지 도달하고, 그다음 90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인데, 애초에 0에서 70이 너무 높아 보여서 일찌감치 포기하는 거다. 그럼 앞으로 누가 90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AI가 10분 만에 만든 70짜리 결과물과 사람이 한 달에 걸쳐 만든 90짜리 결과물이 있을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하면 대부분은 전자를 선택한다. 그게 훨씬 쌀 테니까. 그러면 90짜리 결과물을 만들던 사람들은 점점 더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90짜리 결과물을 누릴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세상에 90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90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남았을 때, AI는 스스로 학습해서 90을 만들 수 있을까? 난 상당히 회의적이다.
이건 사실 AI가 있기 전에도 항상 있어왔던 문제다. 장인이 한땀한땀 만드는 신발이 50만원에 팔린다고 가정했을 때, 과거에는 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만든 신발이라고 해도 30만원은 했을거다. 그럼 30만원에 퀄리티 낮은 신발을 살 바에는 50만원짜리 사겠다는 사람도 많았을 거다. 근데 이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꽤 괜찮은 수준의 신발이 10만원에 나온다. 그럼 대부분이 10만원짜리를 산다. 그렇게 50만원짜리를 만들던 장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는 AI로 인해서 그런 일이 모든 곳에서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 AI에 대해 가장 불만인 점은 이거다. 90을 만들던 사람이 95를 만들기 위해 AI를 쓰는게 아니라, 대부분이 70을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경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누군가를 탓할 문제라기보다는, AI 시대에 각자가 하는 최선의 선택이 전체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고, 안타깝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선가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아크 레이더스라는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했는데, 게임이라는 게 이 정도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충격을 받았다. 적 움직임을 구현하는데 머신러닝을 사용했는데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고 정말 지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몰입감이 대단했다. 그 외에도 게임 메커니즘 디자인, 그래픽, 사운드 등 모든 측면에서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인상 깊었다. AI를 사용한다면 이런 식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동안 알던 게임은 아무리 해봐야 90이 최대였는데, 95까지 갈 수 있는 거였어?’를 깨닫게 해주는 게임. 나도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더 이상 퀄리티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AI를 사용해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한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내 생각을 꺼내봤다. 나는 내가 죽기 전까지도, 사람이 무언가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무수히 많은 고민을 담아 만든 것의 가치가 남아있을 거라 믿는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적어도 ‘어차피 곧 AI가 다 대체할 텐데 뭐 하러 그렇게 고생해’라며 매너리즘에 빠지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