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잡을 수가 없어서
엄마, 옛날 집을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게 하나 있어. 바로 '소'야.
소는 우리 식구였잖아. 매일 소죽을 해서 먹여야 했고. 할아버지의 재산이었지. 무슨 큰 일이 있으면 소 한마리를 팔아서 뭐든 해낼 수 있었으니까.
소가 한 마리, 한 마리 줄어들더니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
소는 참 순했어. 눈은 크고 혓바닥이 길어서 콧구멍까지 날름 거릴 수 있었어. 작았던 나와 동생들은 지푸라기를 들고 소가 먹어주기를 기다렸어. 요즘은 동물 먹이체험을 하러 농장까지 가잖아. 그걸 매일 할 수 있었던 거야.
송아지가 태어나는 날에는 큰 일이 난 것처럼 뒤숭숭했어. 송아지가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어미소는 별 탈이 없는지. 모든 것이 걱정이었고 기쁨이었지.
송아지와 더불어서 생각나는 건. 외양간 옆에 있었던 재래식 화장실이야.
벽돌집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화장실은 재래식이었어. 세상에, 지금은 그런 화장실을 찾아보려해도 볼 수가 없는데. 그땐 우리집도 옆집도 화장실이 재래식이었어.
난 다행히도 그 똥통에 빠진 적이 한번도 없지만, 가끔식 잘 못해서 다리를 헛 디딘 애들도 있었어.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오랫동안 요강을 썼던 기억도 나. 동그란 꿀단지 같았던 요강. 깜깜한 밤에 애들을 재래식 화장실까지 보낼 수가 없으니 요강이 꼭 필요했지.
왜 그런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을까?
불편하기만 한 아궁이. 요강. 재래식 화장실과. 송아지. 이미 모두 사라져 버린 것들이라서 그럴까.
가끔 가마솥이 걸려 있던 부엌이 떠올라. 기다란 부지깽이로 재 청소를 해야 했던 부엌.
대청마루가 있는 한옥 집에서 딱 한 번만 더 살아보고 싶어. 마루에 앉아서 비가 똑똑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최근에 향교에 가니, 아궁이며 창호지 한옥집이 그대로 있더라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한옥에서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생각했는데 시아버지가 근무하는 작은 방 안에들어가 보니 나무문으로 보온이 되더라. 물론, 바닥은 절절 끓었어.
예전에는 서른이 될 줄 몰랐어. 어른이 되러면 한참이나 남았다고 생각했거든. 하루는 너무 길고 어른이 되려면 10년도 더 걸렸으니까.
그런데 모든 것이 흘러서 엄마가 되었네. 시간이 흘러서 남은 거라고는 사진 속에 있는 게 전부가 되고 말았어.
불편하기만 했던 것들이 조금은 그립기도 해. 마당까지 들어오는 빨간 우체국 오토바이. 우표를 사서 엽서를 보내던 그런 추억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아쉬워 잡아 세우고 싶은 시간도 모두 다 지나가 버렸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그래서 소중하고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어.
우리에겐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어서. 그래서 참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