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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8. 2022

김밥


집안마다 김밥을 만드는 방법은 다르다.

어떤 집안은 고기를 넣고, 

어떤 집안은 단무지 대신 김치를 넣는다.     

우리 집 김밥은 정형적인 김밥집 누드김밥이다.


김 위에 밥알을 꾹꾹 눌러서 밥이 밑에 가도록 뒤로 돌린 다음에 김 위로 깻잎을 깔고,

그 위에 우엉, 단무지, 햄, 시금치, 계란지단, 맛살을 올린다.

돌돌 말아서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리면 김밥이 완성된다.     

김밥을 먹으면 나는 소풍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한 해 동안 의도치 않게 전학을 3번이나 가게 되고 

나는 갑작스러운 이사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의 주변만 맴돌았다.     


가을 소풍 때,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로 바쁘셨고,

그날 아침 나의 소풍을 깜박 잊어버리신 어머니께,

나는 애처럼 김밥을 싸 달라고 졸랐다.    

 

재료가 없는 탓에 급히 싼 김밥은 김과 계란지단 위에 흰밥을 넣고 돌돌 말은 계란말이 김밥이었다.     


어린 시절 자격지심으로

나는 볼품없는 도시락이 부끄러워서 혼자서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먹고 있었다.     

지나가던 친구들이 특이한 내 김밥에 관심을 가졌고,

한번 맛본 친구들이 너무 맛있다며 내게 본인들의 김밥을 대가로 내밀었다.

창피하다고 여겼던 어머니의 김밥은 순식간에 친구들의 젓가락 속으로 사라졌다.

불티나게 팔린 어머니의 김밥 대신 나는 친구들이 준 김밥을 먹었다.     


어머니가 김과 계란만으로도 김밥을 잘 만들었던 건,

나를 키우시느라 주부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가 생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잠깐, 집 근처에서 김밥집에서 김밥을 만드셨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가게에서 걸려 온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우산을 들고 어머니를 마중 나가기 위해 간 김밥집에서

항상 화사하게 화장하시고 원피스를 단정하게 입으셨던,

예쁘고 우아하셨던 나의 어머니가,

빨간색 앞치마를 입고 김밥을 말고 계신 고단한 모습에 서글펐다.   

  

어머니는 빗물에 흐르는 나의 눈물을 모르셨겠지만,

나는 그때 꼭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 덕분에 나는 가난했지만 엇나가지 않고 자라나서,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머니가 내게 주신 김밥은 그저,

쌀과 김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자신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내게 내어주고,

나를 위해 스스로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선택하신

나의 어머니.     


그 시절의 어머니보다 늙어버린 딸을 위해,

오늘도 생일이라고 아침부터 만들어 주신 어머니의 김밥은 여전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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