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관광에 대해 알고 오셨나요?

<태국 여행 1편>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관광객과 가이드의 기싸움

by 오만
저... 선택 관광인 건 알고 오셨죠?"


가이드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서른둘의 젊은 가이드는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 노력했지만 얼굴에 이는 당혹스러움은 감출 길이 없었다.


"저 정도면 진짜 착한 거야."

엄마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얼마나 나쁜 애들이 많은데. 쟤는 진짜 착하다."



태국여행 이틀 차. 새벽에 도착했지만 1박을 했으므로 이틀 차라 하자.

오전, 오후 관광이 끝나고 마사지샵에 가는 차 안, 가이드는 드디어 선택 관광에 대해 얘기한다.

올 것이 왔구나.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시간이다.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딜 가도 참 어려운 일이다.

노련함을 논하기엔 아직 젊은 그 가이드 역시 그랬을 것이다.


"돈에 대해선 오늘 딱 하루만 얘기하고 끝낼게요."

가이드는 나눠준 종이에 있는 선택 관광 일정을 소개하고 만약 전체 패키지 상품을 차량에 탑승한 일행 모두가 선택한다면 기재된 가격의 절반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가격 괜찮지."

엄마와 나는 함께 여행을 하게 된 다른 팀원들도 가이드가 제시한 상품을 구매하길 바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차량 뒤쪽으로 이동하며 관광객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구하고선 한참 후에야 우리가 있는 앞쪽으로 왔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가격으로 전체 패키지 관광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선택 관광은 처음이신가요?"

가이드는 선택 관광에 대해 설명했다. 관광객들이 선택 관광을 하지 않으면 가이드는 버는 돈이 전혀 없다는 말이었다.


"저거 다 사기야!"

뒤에 앉은 한 아저씨가 부인에게 말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그 남자는 어떠한 선택 관광도 신청하지 않았다.

"저희는 그냥 산호섬 가서 휴양 즐기러 온 것뿐이에요."

부인은 남편의 말을 가이드에게 좋게 얘기하려 애썼다.


하아. 이십 몇만 원만 추가하면 요트 여행을 비롯한 모든 선택 관광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엄마와 나는 12월 15일(일)에서 19일(목), 태국 방콕-파타야(일명 방파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저가 항공사를 이용한 패키지여행으로 3박 5일 일정에 39만 원이었다. 이 금액에 비행기로 다섯 시간 반이나 걸리는 나라를 다녀올 수 있다니. 그것도 호텔에서 숙박하고 마사지도 받으면서 관광을 할 수도 있다. 웬만한 국내여행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하지만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 함정이 있거나. 지나치게 가격이 낮은 제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한 번씩 의구심을 갖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가격의 제품은 물건에 하자가 있거나 상품을 만드는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지 않았기(이를테면 저임금) 때문일 것이다.


선택관광도 그렇다. 국내 여행사는 일정 마진을 남기고 관광객들을 모집해 비행기에 싣는 것으로 제 임무를 마친다. 그럼 노마진, 심지어 마이너스 마진에서 관광객을 맞이해야 하는 현지 여행사는 이 관광객들을 어떻게든 구워삶아(?)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여기서 관광객과 가이드 간의 기싸움이 발생한다. 패키지여행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 중 과반수가 쇼핑 및 선택관광에 대한 과도한 권유를 이유로 든다.


패키지 상품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엄마는 실제로 중국에서 가이드가 강제적으로 선택관광 전 상품을 구매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선택 없는 선택 상품이었다. 관광객들이 항의하자 가이드가 일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관광지에 도착했는데도 언제까지 버스로 돌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관광객을 드넓은 외국 땅에 내팽개치자 화가 난 일행들이 여행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가이드가 교체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일비재라고 한다. 나와 엄마는 기분 좋게 온 여행에서 괜히 가이드와 얼굴 붉히기도 싫고 워낙에 저렴한 가격으로 왔기 때문에 패키지 가격 정도의 여윳돈을 준비해 와 선택 관광에 모두 쓸 계획이었다. 그래서 같은 차량을 탄 일행들 모두가 동참해준다면 요트 투어 가격을 거의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선택 관광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다른 이들을 욕할 수 있을까?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여행지를 관람하고 있어도 이들과 나는 같은 가격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동남아 관광엔 겨울이 성수기이기 때문에(특히 1월), 같은 상품도 날짜별로 가격이 판이하다. 15일 밤 비행기를 탄 우리는 다음 날 16일에 출발하는 사람들보다 10만 원 싸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분들 중에는 나와 엄마처럼 저가 항공사를 이용한 경우도 있고 메이저 항공사를 이용한 분들도 있었다. 대구, 인천 등 출국 장소도 달랐다.

선택 관광을 전혀 신청하지 않은 뒷좌석 가족 역시 나와 엄마와는 다른 여행 가격을 지불하고 왔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어린 자녀들 역시 성인과 같은 가격으로 모든 일정을 계산한다면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가격 부담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택 관광은 선택 사항이 아닌가. 나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들만의 여행 계획과 희망 지출액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이번 달에는 집도 한 번 못 들어갔다는 가이드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님들보다 늘 먼저 일어나 늦게 자며 손님들은 좋은 음식, 좋은 숙소에서 잘 때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빵으로 배를 채우던 가이드의 업무가 무료 봉사는 아니지 않은가. 그들도 돈을 벌기 위해 나온 사람이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일을 하지만 오히려 적자를 볼 때도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손님들이 필요하다는 것들을 사비로 마련해야 하고, 뇌물이 만연한 태국 시내에서 경찰에 잡히기라도 하면 그들 손에 쥐어주는 돈도 가이드의 지갑에서 나간다. -태국 경찰들은 관광객 차량이 보이면 일단 잡고 본다. 시간에 쫓기는 가이드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 서로에게 불편한 이 현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의 말미에 꽤 친해진 가이드가 다음 팀은 그래도 풀옵션 팀이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노쇼핑 풀옵션 팀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가이드 임금이 따로 지불되기 때문에 가이드가 기를 쓰고 관광객들에게 관광 상품을 팔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정답은 가까이 있었다. 여행에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싼 가격에 현옥 되지 말고 그 금액이 정말 타당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공정 무역에 관심을 갖고 상품의 제조과정과 유통 형태 등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국내 여행보다 싼 해외여행이란 누군가에 대한 착취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게 바로 여행을 가는 본인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같은 일정의 노쇼핑 풀옵션(또는 노옵션) 패키지의 경우 내가 결제한 금액보다 약 2~30만 원 정도 비쌌다. 하지만 선택 관광에서 풀옵션을 선택하고 나니 거의 비슷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불필요한 쇼핑센터 방문이나 유쾌하지 못한 눈치 싸움도 없으니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는 처음에 했던 말처럼 그 날이 지나고 나선 돈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선택 관광을 일절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번 팀에는 꽤 있어 분명 이 며칠간의 노동에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난감한 표정에서 벗어나 웃으며 제 할 일을 했다. 아무래도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나 역시 원치 않는 재능 기부를 강요당할 때가 있어 그 가이드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현재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는데 재능까지 기부를 요구당해야 할 때 느끼는 그 난처함, 그리고 분노. 그 감정을 나와 동갑인 그 가이드는 잘 조절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엄마와 나는 그를 응원해주고, 잘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날 쇼핑센터에서 호구 짓을 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갑을 열고 싶거든, 감정을 두드려라 - 쇼핑센터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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