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지 않다. 옵션 상품이었다면 가지 않았을 테지만 패키지 상품에 기본적으로 들어있어 어쩔 수 없었다. 태국 여행 이틀 째, 방콕에서 파타야로 이동해 석식으로 수끼(일종의 샤브샤브로 육수에 고기와 해산물, 채소를 넣고 양념장에 찍어 먹음)를 먹고 알카자 쇼를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쇼, 파리의 리도 쇼와 더불어 세계 3대 쇼라 불리는 태국의 알카자 쇼는 트렌스젠더 쇼다. (세계 4대 뮤지컬처럼 세계 3대 쇼라는 표현은 그냥 장사꾼들이 붙인 말 같다) 패키지 상품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면 늘 그 지역의 공연을 한 두개씩 관람할 기회가 생긴다. 두차례의 중국 여행에서는 주로 그 지역의 소수 민족 공연을 보았는데, 아주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볼 만 했다. 특히 장가계에서 본 천문호선 쇼는 주변 아름다운 경관을 극의 배경으로 가져와 볼거리가 풍부했다. 하지만 태국의 트렌스젠더 쇼는... 출연진인 트렌스젠더와 게이에 대한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가서가 아니다. 그냥 쇼의 퀄리티가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소모되는 방식이 불편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공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트렌스젠더 쇼를 보고 느낀 바다.
알카자 쇼 역시 푸켓에서 봤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높은 하이힐 때문에 엉성해진 춤, 보는 이조차 위태롭게 느껴지게 하는 발놀림. 여기서 어떤 수준 높은 공연을 기대할까. 이 쇼를 소개하는 글에는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공연을 보면서 도대체 '여자같다'는 정의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공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덧칠한 얼굴 화장을 이르는가, 아님 터질 것 같이 부푼 가슴을 말하는가. 전반부 공연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들로 내내 불편했다.
내가 너무 비뚤어졌나?
결혼생활하며 남편과 싸우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남편의 무심함과 나의 예민함이 부딪쳤을 때. 남편의 무신경한 말을 내가 그냥 받아넘길 수 없을 때.
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을 중시하는 데 반해 남편은 그런 것에 무디다. 본인이 나쁜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므로 상대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자신이 워낙 컴플렉스가 없고 편견이 없다보니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남편이 내게 주로 하는 말은 이것이다.
"왜 꼭 그런 식으로 봐?"
남편은 나를 재밌게 해주려고 웃긴 인터넷 게시물을 보여주거나 거기서 본 농담을 그대로 하곤 하는데 그게 가끔 나를 불쾌하게 한다.
"여보, 그런 말은 굉장히 위험한 거야. 이런 말이 만들어진 맥락을 생각해 봐."
"이게 웃겨?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내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남편은 매우 의기소침해진다.
"당신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런 의도로 그랬을 것 같아?"
남편은 요즘 개그가 재미 없어진 이유를 뭐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프로 불편러들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반드시 희생시켜야만 웃음을 줄 수 있는 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꼭 인터넷에서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프로 불편러들이 있다. 무언가 나아가려 하면 꼭 딴지를 거는 것처럼 느껴지는, 통합을 저해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불편러들 덕에 어느 정도 사회가 변혁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당장에 골치는 아프지만.
결혼하고 맞게 된 세 차례의 명절을 나는 시댁에 먼저 갔다. 딱히 어떤 대화나 타협 같은 것 없이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지난 추석, 이제는 돌아가면서 각자의 집에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오히려 펄쩍 뛰었다. 요즘 애들 그러는 건 알지만 일단 시집을 갔으면 최소한 몇 년 간이라도 그 댁에 먼저 가서 가풍을 익히라는 것이다. 딸이 시댁에 밉보일까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게 맞는 말일까. 왜 남편에게는 강요되지 않는 것들이 며느리란 이유로 나에게만 강요되는 것일까.
시댁에선 싫을 수도 있다. 그들에겐 며느리가 그들의 집에 먼저 오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져왔고 거기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나에겐) 평등하게 보이는 것들이 그들에겐 뭔가를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우리 시부모님 성정으로는 절대 내게 싫은 말을 할 분들은 아니지만 속으로는 우리 며느리가 좀 드세다거나 예의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옳은 걸 옳게 하자고 말하는 며느리는 불편할 수 있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도련님, 형님, 아가씨 등 극존칭으로 높여부르는 데 비해 며느리는 제수씨, 동서, 언니 등으로만 불리는 현실. 이에 대해 며느리도 동등한 관계로 차별 없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바라며 최근 생활 언어를 바꾸려는 운동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어떤 며느리가 시댁에서 평등한 호칭으로 서로를 바꿔 부르자고 한다면 그 집안 분위기는 어떻게 될까. 엄마도 이런 걸 걱정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옳지 않아서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괜히' 분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남편과의 다툼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시각이 오히려 편협할 수 있다는 남편의 의견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다른 각도에서 알카자 쇼를 보기로 했다.
태국에는 트렌스젠더가 많다. 선천적인 요인을 이유로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태국의 문화적 특수성을 그 원인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잦은 전쟁으로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던 태국인 부모들이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지 않으려고 어릴 때부터 여자처럼 꾸미고 행동하게 했는데, 이때문에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이들이 많아졌다는 주장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다행이도 태국은 이런 트렌스젠더에 대해 굉장히 관대하다고 한다.
하지만 태국인들이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트렌스젠더의 삶이 그리 녹록한것만은 아니다. 성별을 바꾸는 게 어찌 쉬울까싶지만 생각보다도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골격부터가 다른 남자가 여성과 같이 잘록한 허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갈비뼈를 잘라내야만 한다. 바뀐 성별로 계속 살기 위해서는 호르몬 주사를 꾸준히 맞아야 하는데 돈도 많이 들 뿐더러 건강을 크게 해친다. 실제로 트렌스젠더의 평균 수명은 57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자신의 수명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트렌스젠더 쇼는 그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에 대한 격려와 갈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그들이 지금의 몸을 만들기 위해 들인 수많은 노력과 이를 통해 성취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공간. 찬사와 응원을 힘껏 받을 수 있는 장소. 이 쇼는 처음부터 아크로바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관점을 바꿔 생각하니 쇼를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반은 남자로, 반은 여자로 분장해 1인 2역을 연기하는 공연이 가장 멋졌다. 그들의 정체성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뚱뚱한 트렌스젠더를 희화화시키는 공연은 여전히 불편했다. 특히 관객석의 남자 관람객에게 가슴을 만지게 하는 등의 행동은 본인을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트렌스젠더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장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대형을 이루어 호객행위를 하며 사진을 찍자는 트렌스젠더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들을 둘러산 채 연신 머뭇거리는 사람들. 그 중 몇은 마음에 드는 이를 골라 사진을 찍고 돈을 건넨다. 코스튬이나 분장을 하고 사진을 같이 찍는 대신 돈을 받는 거리의 예술가처럼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그들을 눈요기거리로 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