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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훈 May 22. 2020

우네 츠네히로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일본과 같은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은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써 성공할 수 있겠는가.”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 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신카이 마토코 감독의 <너의 이름은.>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 때마다 심심하지 않게 등장했던 논쟁이다.


[네이버 책]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서브컬처가 이렇게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글쓴이인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寛)는 서브컬처가 젊은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는지에 대하여 알려주는 지표의 역할을 해낸다고 이야기 한다. 즉, 이러한 서브컬처는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당시의 사회상황을 드러내왔기 때문에 계속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즐기는 독자로써, 또한 향후 애니메이션과 같은 서브컬쳐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은 독자로써 이 책이 어떠한 관점으로 일본의 사회와 서브컬처가 맺고 있는 역사를 분석하였는지, 이러한 것들이 문화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또 한국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교토세이카대에서 진행된 강의를 재구성한 형태의 이 책은 총 22강에 걸쳐 일본이 서브컬처와 오타쿠 문화를 통하여 일본 사회의 모습을 고찰해낸다. 글쓴이는 한국에서는 비호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오타쿠적인 기질을 자신이 강렬히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변의 공기를 읽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회의 공기 바깥에 설 수 있는 사람들로 이야기(29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와 문화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쓴이의 의견에 동조를 하는 이유는 유동적인 것을 연구하는 현재의 문화 연구의 형태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변화 속에서 사회의 바깥에 서 있는 오타쿠적인 기질을 통하여 이러한 문화의 변화 과정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타쿠와 일본


하지만 ‘옴 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사건’처럼 오타쿠적인 기질을 가진 이들의 현실 사회로의 침입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만큼 사회에 완벽히 바깥에 서 있다는 주장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의 13강에서 볼 수 있는 예를 들도록 한다. 메카닉과 SF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오컬트라는 모티프(201면)로 넘어가면 <무(ムー)>라는 잡지가 서브컬쳐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오컬트 서브컬처적인 상상과 여러 가지 종교 모티프를 섞고, 당시의 만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서브컬처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최종 전쟁이라는 모티프(212면)를 집어넣은 것이 바로 ‘옴 진리교’인 것이다. 이들은 처음 “세계는 변함없으니 자신의 의식을 바꾸어 세계를 보는 법을 바꾸자”고 제시하였으나, 이를 참을 수 없다는 방향으로 변질되어 현실을 바꾸고자 ‘지하철 사린 사건’을 벌이게 된다. 이처럼 오타구적 기질의 주체가 강렬히 좋아하는 것을 매개삼아 사회로의 침입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에 영향을 주며, 사회현상을 만들어 내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타쿠적 기질의 이들이 완벽한 사회의 바깥에 서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렇기에 자신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나타나는 시각은 역시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전후의 붕괴: 서브컬처 소비사회 그리고 세대(권혁태)”에서 보면 동일한 ‘옴 진리교 사건’을 ‘공(公)은 무시하고 오직 개(個)만을 중시해온 전후 민주주의 교육의 귀결점(102면)’으로 보는 일본 사회 전체의 분위기(103면)를 볼 수 있으며, 젊은이들을 지배한 소비사회와 서브컬처의 문제(114면)도 있었음을 지적하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일본의 전후 사회와 학생 운동의 전성기, 일본 사회를 경악에 빠뜨린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의 대두까지 일본의 서브컬처는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그 사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였는데, 한국에서의 오타쿠 및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성(性)’과 ‘폭력’에 대한 것들이 그 것이다. 강하고 굳센 존재로써 정의를 지킨다고 생각했던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은 일본이 패전하며 그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이를 보며 미국의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은 일본을 ‘12세 소년’(56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의 공업 기술 및 군사력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그에 뒤따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성장 속에서 일본은 유례없는 경기 호황기인 버블 시대를 맞게 되었고, 신체만이 성장하여 버린 일본은 성적인 능력만이 발달한 유형성숙의 모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아동용으로 출발한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산업은 이러한 시작점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세상의 눈을 피하여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이러한 유형성숙성의 표현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가면아래에서 일본 사회 속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분석한다면 <아톰>과 같이 나이는 먹지 않고 계속하여 어린 모습으로 남아 있는 모습을 통하여 사실은 성장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성장한 척(71면)한다는 소년만화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바람의 검심>과 <은혼>과 같은 어른이 된 척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저씨의 내면을 그린 작품(90면)으로 이러한 흐름은 지속되어 온다. 원피스 또한 초반 자신의 성장보다는 횡적으로 동료를 늘려가는 것을 목표(119면)로 삼는 외적인 성장만을 보여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성숙의 문제점은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여성의 성적대상화 문제가 대표적인데,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서 시민 의식과 같은 정신적 부분은 성장하지 못한 일본과도 같은 한국사회의 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사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관능과 쾌락만을 집중하여 소비를 만들어내고 있는 성인 웹툰과 같은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가면아래 이러한 본질을 탐구하기 보다는 문학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본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카이계(セカイ系)에 이어


이후 2000년대로 접어든 일본 서브컬처는 ‘세카이계(セカイ系)’로 이어진다. 정확한 정의는 되지 않았지만 ‘세계의 문제를 자의식의 문제로 왜소화 시킨다’라는 특징(243면)으로 거론된다. ‘포스트 에반게리온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세카이계의 대표적인 작품인 <에반게리온>을 지나 어딘가로 향해있는 로망으로 가득찬 모험을 그리는 서브컬처와 애니메이션에 부여된 역할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같은 현실의 일상(225면)이나 <케이온!>과 같은 이상화된 일상(263면)을 그려내는 것으로 변화한다.


일본대지진 이후 서브컬처는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현실인 아이돌이 허구인 애니메이션을 앞지르며, <러브 라이브!>, <아이돌 마스터>와 같은 아이돌 애니메이션이 시장을 석권(271면)하게 된다. 이제의 일본 서브컬처는 현실화 되고 노스텔지어화된다.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도 과거의 명예를 잇는 영화들의 속편만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다면 과거의 음악을 재해석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나, 과거의 생활모습으로 향수를 불러낸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문화의 노스텔지어화가 계속되어가고 있다. 기술의 진화로 더 이상 소비층은 애니메이션이 대표되는 서브컬처와 같은 이차원의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삼차원적인 체험을 원하며 다른 이들의 감정에 이입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주역이 된 이야기를 체험하는 쪽(333면)으로 이동해간다.


글쓴이는 ‘허구’의 두 가지 의미를 탐구한다. 하나는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었던 것을 허구의 세계에서 실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존재, 실현될 수 있지 모를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336면)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허구, 그런 상상력이 요구된다고 본다.


일본과 한국의 사회 발전의 역사를 보면 독재정권 아래 시민운동과 학생 운동을 경험했으며, 유례없는 경제호황기를 겪었고, 유형성숙의 모습까지 비슷한 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며 분명 일본 사회 문화와 서브컬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의 사회에 적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서브컬처


한국의 지속되는 혐오문화와 편 가르기 문화가 이러한 서브컬처에 대한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다. ‘오타쿠’라는 단어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한국에서도 이러한 ‘오타쿠’ 문화를 한국의 정서에 맞게 만들어낸 ‘덕후’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몰입과 자기만족,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머물러 있다면 한국의 ‘덕후’는 공감과 소통, 특정한 아이템과 경험을 중시하는, 다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소통에 열린 한국의 ‘덕후’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오타쿠’의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기는 사회적인 부작용을 해소한 채 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에서의 순 문학이 마치 오타쿠계의 모습과 같이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의 순 문학 낭독회나 독서 토론 모임은 대규모의 행사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도서와 장소에서 소규모로 진행되거나 독립서점 및 사회커뮤니티 센터에서 다수의 시민들과 독서 경험을 나누며 진행된다. 이러한 문화가 한국 오타쿠계의 대한 건강한 방법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거나, 알지 못한다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과 다양한 의문점이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하지만 서브컬처를 통한 새로운 문화적 시각과 사회 해석을 위한 능력을 갖고 싶다면 이 책을 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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