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등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5부. 항해의 재개: 바다는 멈추지 않는다

by 산 사람

​23. (에필로그) 바다의 말


​[부제: 끝나지 않는 항해를 위하여]


​사내가 떠난 지 다시 한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하얀 등대는 여전히 그 고립된 절벽 끝에서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파도는 어제와 같은 소리로 바위를 때렸고, 바람은 이름 모를 항해사들의 사연을 실어 날랐다.

​노인 해언은 등대 꼭대기 난간에 서서 갓 돋아난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사내가 두고 간 낡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그 첫 장에는 사내가 등대를 떠나던 날 적어둔 문장이 남아 있었다.


​'나의 등대는 더 이상 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해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수첩을 덮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사내는 폭풍이 와도 더 이상 '왜 나인가'를 묻지 않을 것이며, 썰물이 오면 조용히 자신의 바닥을 닦으며 밀물을 기다릴 줄 아는 진짜 항해사가 되었음을.


​노인은 천천히 등대 램프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프리즘 렌즈는 오늘도 눈부시게 닦여 있었다. 해언은 다시 램프에 불을 붙였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고, 렌즈를 통과한 그 빛은 수 킬로미터 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단숨에 가르며 뻗어 나갔다.

​그 빛은 길을 잃은 배에게는 '이곳에 땅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고, 조난당한 영혼에게는 '아직 끝이 아니다'라는 희망을 건넸다. 등대지기라는 사명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었다. 세상에는 매일 새로운 조난자가 생겨나고, 매 순간 누군가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언은 등대 벽면에 새겨진 수많은 낙서와 기록들을 손으로 가만히 쓸었다. 1912년의 그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남은 이후, 그는 수많은 이들의 시간을 수선해 왔다. 때로는 서점의 주인이 되어 과거를 기록하게 했고, 때로는 등대지기가 되어 미래를 비춰주었다. 그가 머무는 장소는 달랐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당신의 삶은 침몰한 것이 아니라, 잠시 방향을 잃었을 뿐이다."


​밤바람이 등대 안으로 스며들어 노인의 흰 수염을 흔들었다. 해언은 다시 바다를 향해 섰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가물거리는 곳, 그 어딘가에서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또 하나의 작은 등대를 밝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이들 또한 각자의 절벽 위에서 자신만의 불을 지피기 시작할 것이다.


​바다는 말이 없었으나, 그 침묵 속에 모든 답을 품고 있었다. 등대 불빛은 일정한 리듬으로 어둠을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하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 항해를 축복하고 있었다.


​이제 등대의 문이 조용히 닫힌다. 하지만 빛은 남았다.

당신의 밤이 아무리 깊어도, 당신 안의 렌즈를 닦는 일을 멈추지 마라.


어둠이 깊을수록 당신의 불빛은 더 멀리 갈 것이고,

당신이 비춘 그 빛을 보고 누군가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니.


​- 제2권 <하얀 등대의 수선공: 시간을 비추는 노인> 完 -



​[프롤로그: 수천 개의 밤을 건너온 기록]

​등대 불빛이 꺼진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어떤 글은 단숨에 써 내려가기도 하지만, 어떤 글은 삶의 풍랑을 직접 온몸으로 맞은 뒤에야 비로소 한 문장이 허락되기도 합니다.


여러분께 선보일 이 기록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지난 수년간 저는 1912년의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노인의 목소리를 추적해 왔습니다.


시간을 수선하는 노인 '해언'.


그는 때로 깊은 숲 속의 서점 주인(1편 : 멈춘 시계의 서점)이었고, 때로는 절벽 위 고독한 등대지기였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기 위해 제 안의 수많은 폭풍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 연재물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날 때,


수평선 끝에서 발견한 '희망의 리듬'에 관한 정직한 보고서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그 여정의 시작점으로 초대하려 합니다.


방금 읽으신 에필로그의 평온함에 도달하기까지, 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치열한 조난의 기록과 노인의 위대한 가르침을 아주 긴 호흡으로, 그러나 단 한 문장도 소홀히 하지 않고 펼쳐내려 합니다.


​여러분의 밤이 깊다면, 저와 함께 이 등대 계단을 올라보시겠습니까?

그곳에서 여러분만의 렌즈를 닦는 법을 함께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 1장을 시작으로

매주 화, 금, 일요일, <제2권 하얀 등대의 수선공 : 시간을 비추는 노인>

연재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