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평균율? 번역의 한계가 들려준 평균적인 음악?

평균율, 조율체계

by 고음악Iㄱㄴㄷ

현대 사회는 마치 음악의 평균율(平均律)로 조율된 음악과 같다. 모든 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져 겉으로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그 균질한 아름다움 속에는 각 음이 가진 고유한 색깔과 음의 진동이 사라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과 표준화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 또한 그 흐름에 맞추어 ‘적당히 비슷한 사람’으로 조율된다. 이 모습은 음악의 조율 방식이 변해온 역사와 닮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원래 평균율이 아니었다. 한때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음을 지닌 존재였다. 누군가는 평균율이 아닌 다른 음률 체계의 밝고 따뜻한 장조의 울림으로, 또 누군가는 진지하면서도 애잔하고 중후한 단조의 떨림을 가지고 삶을 노래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수학적 질서 속에서 완전음을 찾아내어, 그 가장 순수한 울림으로 신을 찬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그 다양함을 불편해한다. 다름은 비효율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평균율은 어떤 조로 전조 하더라도 연주가 가능한 안정된 체계를 마련하였기에 분명 음악의 표현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조성과 다양한 화성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음악은 자연이 지닌 고유한 미적 가치를 상실하였다. 이와 같이 현대 사회의 질서도 인간의 내면적 다양성을 희생하여, 자신만의 울림을 감춘 채 살아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조화는 균일함 속에서 동일성만을 추구할 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할 때 비로소 조화가 생겨난다. 평균율로 조율된 세상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진동수를 지닌 채 삶을 노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양 음악은 평균율(Equal Temperament)에 기반한다. 독일어로는 ‘동일하게 규열 된 조율 체계(gleichstufige Stimmung)’, 혹은 ‘동일하게 반동되는 조율 체계(gleichschwebende Stimmung)’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체계에서는 어떠한 조로 전조 하더라도 음정 간의 비율이 동일하게 유지되므로 다양한 조성의 음악을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한 옥타브를 1200 cent로 설정하고 각 반음의 간격을 100 cent로 균등하게 분할하여 조율한 구조이다. 즉, 평균율은 한 옥타브의 진동비를 12개의 동일한 반음 간격(도, 도#(레b), 레, 레#(미b), 미(파b), 파(미#), 파#(솔b), 솔, 솔#(라b), 라, 라#(시b), 시(도b), 도)으로 나누어 모든 조성에서 동일한 음정 비율을 유지하도록 고안된 조율 체계이다. 여기서 #과 b를 함께 기입한 이유는 평균율이 아닌 조율 체계에서는 반음의 관계, 그리고 #과 b가 서로 다른 음정을 갖기 때문에 각각 다르게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균율이 정착되기 전에는 피타고라스 음률, 순정률, 중간음률 등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조율 체계들은 자연적 조화의 원리에 충실했으나, 일부 조에서 불협화가 생겨 전조의 자유 측면에서 제약이 있었다. 이에 따라 17세기에 조 전환이 가능한 ‘Well-tempered tuning(고른율)’이 등장하였고, 모든 조로의 전조가 가능하면서도 각 조의 개성이 살아 있는 조율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이론가로는 안드레아스 베르크마이스터(A. Werckmeister), 키른베르거(Kirnberger), 발로티(Vallotti)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 조마다 약간씩 다른 음정비를 유지하면서도 전조가 가능한 여러가지 종류의 절충형 조율법을 개발하였다. 이 체계의 핵심은 조성마다 고유한 색채를 보존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데 있었다. 이 체계의 핵심은 자연의 미세한 불균형을 제거하지 않고 남겨두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음계의 미학을 이루는 데 있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Das wohltemperierte Clavier》를 통해 이러한 조율법의 예술적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한국어로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으로 알려졌으나 여기서 사용된 “wohltemperiert”라는 독일어는 영어의 “well-tempered”로 번역되지만, ‘평균(Equal)’을 의미하지 않는다. ‘wohl(풍성한, 잘 조화된)’은 조성마다 미묘한 음색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적 일관성을 확보하는 조율을 뜻한다. 독일어 사전 두덴(Duden)에서는 ‘wohl’은 단순히 ‘좋음’이나 ‘편안함’ 이상의 의미로, 조화, 균형, 내적 평온을 내포한다고 설명한다.

“Das Wort ‘wohl’ im Deutschen trägt immer etwas von Harmonie, Ausgeglichenheit und innerer Ruhe in sich.”

이러한 어원적 맥락에서 볼 때, ‘wohltemperierte Stimmung’의 ‘wohl’은 ‘균등(equal)’이 아니라 ‘풍성하고 조화로운’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따라서 바흐의 조율 체계는 현대의 평균율과 동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각 조의 고유한 개성을 살린 비평균적 조율, 즉 고른율(well-tempering)에 해당한다.




그러나 평균율이 마치 후기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용되기 시작한 것처럼 알려진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른 바로크 시대부터 이미 평균율의 개념이 존재했으며, 부분적으로 실천되기도 했다. 바흐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평균율(equal temperament)의 이론적 틀은 이미 자리 잡고 있었고, 나이트하르트(J. G. Neidhardt)와 마르푸르크(F. W. Marpurg) 등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장 필립 라모(J. P. Rameau) 역시 평균율을 적용하기도 했으나, 조성 고유의 성격이 살아 있는 고른율을 더욱 선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평균율이 당시 보편적이거나 표준 조율법이었던 것은 아니며, 바흐가 실제로 평균율을 의도했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특히 바흐와 교류가 있었던 안드레아스 베르크마이스터 (A. Werkmeister)가 자신의 저서 《Musicalische Paradoxal-Discourse》(1707)에서 피타고라스 콤마를 12개의 완전 5도에 고르게 분배한 조율법을 “wohltemperiert”라고 명명한 사실이 이러한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그러나 그가 말한 ‘wohltemperiert’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평균율과는 성격이 다르다. 반면 바흐의 아들 칼 필립 임마누엘 바흐(C. P. E. Bach)는 아버지가 12개 음정을 균등하게 나누는 평균율이 아니라, 5도 간격이 서로 다르게 배치된 고른율(wohltemperiert)을 선호했다고 밝힌 바 있다.





Das wohltemperierte Clavier 1722


《Das wohltemperierte Clavier》는 24개의 전조 프렐류드와 푸가로 이루어진 대표적 작품으로, 전통적으로 평균율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조율학 연구는 바흐가 평균율(gleichstufige Stimmung)을 의도하지 않았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서문 첫 장에는 단순한 장식으로 보기 어려운 원형 패턴과 문자 기호들이 적혀 있다. 이 기호들은 장식적 기능을 넘어 특정 조율 방식을 암호적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2005년 브래들리 레만(Bradley Lehman)은 이 장식이 실제 조율 지침이라고 주장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후 하프시코드 제작자이자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조율법을 가르치는 에밀 조뱅(Emile Jobin)이 레만의 가설을 다시 검토하고, 더 타당성 있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조뱅은 서문에 등장하는 원형 기호의 구조와 의미, 그리고 이를 통해 도출되는 중간음률적(메소토닉) 웰 템퍼링 모델에 대한 바흐가 사용한 음률은 12 평균율이 아니라, 조별 색채를 유지하는 비균등 웰 템퍼링(wohltemperiert)을 지향한 체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먼저 “Clavier”라는 글씨 위에 있는 작은 ‘C’는 이 기호가 음도 ‘도(C)’를 가리킨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장식의 첫 형태는 그리스 문자 φ(phi)를 연상시키는데, 이 기호가 그 당시 오르간 제작자들 사이에서 ‘F(파)’를 상징하던 것과 비슷하다. 결국 바흐는 F를 조율의 출발점으로 삼아 12개의 5도 순환을 그려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장식은 11개의 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12개의 5도 순환을 담되 마지막은 처음으로 되돌아가므로 실제로는 11개의 연결 고리만 그려도 완전한 구조가 된다. 조뱅은 이 고리들의 생김새, 매듭의 위치, 형태의 복잡도가 모두 각각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즉, 기호의 모양 자체가 “이 5도는 어느 정도로 좁히거나 넓혀라”라는 조율 지시였다는 해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목 “Das Wohltemperirte Clavier” 가운데, ‘D’ 아래에 조그맣게 적힌 ‘Es’이다. 독일어로 Es는 영어로 Eb을 뜻 하는데 이는 레♯/미♭이라는 음이 조율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임을 암시한다. 이 음 주변은 전통적으로 불협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에, 조율의 균형을 잡으려면 이곳에 "좁은 5도(–1/4 syntonic comma)"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흐는 바로 이 원리를 장식 속에 숨겨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중간음률적 조율을 표현하면서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시각적 암호 같은 기호를 사용했던 것이라 추측한다.



이렇게 F(파)를 출발점으로 하여 5도를 차례로 쌓아 올리면, 위에서 제시된 순서대로 음들이 배열된다.

바흐는 파 - 시 b - 미 b - 솔# 음에 두 개의 원형 기호를 남겼는데, 이는 해당 음들의 완전 5도가 약간 넓게 조율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다음 원형이 하나만 표시된 음들은 완전 5도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수 있으며, 그 뒤에 이어지는 세 개의 원형이 그려진 구간에서는 완전 5도보다 약 –1/4 syntonic comma만큼 좁힌 조정이 필요하다. 즉 단일 고리는 순정한 5도를, 복잡한 고리나 매듭은 5도의 변형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매듭의 위치는 5도가 좁아졌는지 혹은 넓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C–E 사이의 순정 장 3도이다. 바흐는 이 관계를 특히 아름답게 울리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는 특정 위치에 좁은 5도를 배치하여 장 3도의 순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원리는 당시의 중간음률(mitteltönige Stimmung)의 전형적인 사고방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중간음률에서는 완전 3도를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좁은 5도(–1/4 comma)를 핵심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즉, 바흐는 조율 전반에 특정 위치의 좁은 5도(–1/4 comma)를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전체적인 음계 구조를 형성하여 각 조가 고유한 색채를 유지하여 살아있는 음률을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흐의 장식 기호에서 읽을 수 있는 조율 구조는 다음과 같은 조합이다.

조금 넓은 5도: 3개
순정 완전 5도: 3개
조금 좁은 5도: 5개


이는 12개로 균등하게 나뉜 평균율과는 전혀 다르고, 각 조성의 개성과 색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균등한 웰 템퍼링(wohltemperiert)"이다. 결국 바흐가 실제로 연주한 음률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평균율’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장 3도, 단 3도, 완전 5도 같은 기본 개념만 가르치기 때문에, 순정음정과 콤마(comma) 조율 같은 복잡한 전통 조율 체계가 설명되기 어렵다. 그래서 바흐의 조율이 평균율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자주 간과되지만, 실제로는 바로크 시대의 조율법이 그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에 해당한다.




바흐가 남긴 작은 원형 장식 기호들은 단순한 꾸밈이 아니었다. 그는 하프시코드로 표현할 수 있는 각 조성의 고유한 빛깔을 살리어 섬세하고도 풍성한 음향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레만의 직관과 조뱅의 치밀한 분석이 더해지면서 우리는 그 기호들에 담긴 비밀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작은 흔적들 속에 숨어 있는 음악의 질서를 하나씩 발견해 갈 때, 어쩌면 우리는 바흐의 음악을 더욱 특별하게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점점 더 완벽한 평균율에 맞추어 조율될수록, 우리는 오히려 각자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순정률의 맑고 고유한 울림’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지닌 근원적 진동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Well-tempered Life”의 참된 의미에 다가설 수 있다. 풍성하게 조율된 삶은 서로 다른 색을 지닌 음색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아름답고도 다채로운 합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안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숨어 있다. 아무리 평균율로 조율된 음악이라 해도, 인간의 개인적인 감정과 영혼의 색채가 스며드는 순간, 그 음악은 더 이상 ‘평균적’ 일 수 없다. 감정은 생기를 불어넣는 숨결이며, 그 숨결은 매 음마다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균질함의 틀 속에서도, 음악은 돌연 자신의 고유한 숨결을 되찾는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이끄는 근본 원리, 즉 감정의 미학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