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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May 03. 2023

이삭을 줍다가

허리 펼 새가 없었습니다

고개 들어 앞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두 발이 놓이는 곳

그곳에서 묵묵히 이삭을 주을 뿐이었습니다


등 위로 어둠이 내리고

한기가 다녀가자

작열하는 태양이 살갗을 태우더군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발끝만 보았습니다

풀섶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땅끝 벼랑에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습니다

빛을 피할 곳도 없었습니다


가만한 훈풍 덕에 

언덕배기 큰 나무 아래 나를 봅니다


조심스레 허리 펴고

부터 온 곳과 부터 갈 곳을 가만 봅니다


기대어 쉴 수 있음과

하늘 아래 잠시 숨을 곳 있음에


    하다 -

다시 이삭 주을 채비를 합니다


뒤돌아보면

그는 그곳에 있겠지요


살아온 만큼 또 살아가다가

다시 나무 아래 쉴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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