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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Sep 30. 2023

다이빙과 글쓰기

어릴 때 학교 수영부였어요.

오늘 문득 생각이 났어요.


국민학생일 때였습니다. 체격조건이 좋아서(?) 육상담당 선생님이 수영부 코치님께 추천했던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부모님께 연락이 되었고, 학교 운동부에 들어가 수영부 아이들과 동계훈련을 함께 했어요.


학교 일과가 마치면 지금 기억으로는 전세 버스를 타고 중앙동으로 이동해 삼일상가에 있는 헬스장에서 한동안 운동을 하고 창원호텔 수영장에서 강습과 훈련을 받았어요. 호텔 뒷골목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 간식비를 일정금액 주고, 장부에 적어가며 매일 훈련 후 과자를 먹었는데 땅콩카라멜콘(?)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영부학생 전체가 그래야만 했을 거예요. 달로 끊어놓는 간식비가 가계에 부담스러울 텐데 이렇게 먹어도 될까를 생각하며 먹었으니 기억이 날 수밖에요. 과자 한 봉지 가격이 아깝고 차라리 그 돈으로 학용품을 사서 공부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애늙은이 이기도 했습니다.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서 즐겁게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겨울이어서 매우 추운 날씨에 어두운 시간까지 훈련을 받아야 해서 춥고 고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터라 실력이 일취월장하지도 않았고요. 헬스장에서 줄넘기할 때가 가장 좋았어요. 낮시간에 운동을 해서 건물 옥상에 햇빛이 들어차있었고 운동을 할수록 기량이 느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서였나 봐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다이빙을 하게 되었어요. 높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꽤 높았어요. 다들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있고, 혼자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느꼈던 감정, 다이빙대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때, 입수시점이 다가오는 과정, 입수 시점,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때의 감정들 잊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전 아주 내성적인 이였고, 좋고 싫음을 표현해 본 적도 없었고, 특히 무엇을 거부한다거나 거리낌이 있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았던, 그럴 줄 몰랐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물에 대한 공포도 있었고, 특히 높은 곳을 무서워했습니다. 지금도 대교나 고가대로 운전을 힘들어합니다. 그랬던 아이가 다이빙대에 올라가야 했던 거죠.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감, 나에게 닥쳐올 일이 무엇인 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다는 무력감, 뛰어들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공포, 그 순간에도 소리칠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고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해내야만 한다는 책임감, 내가 뛰어드는 것 말고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단념과 체념,  최악의 상황이 맴돌고 있지만 모른 척하려는 자기기만, 고립무원의 긴장감, 긴장감, 긴장감 그리고 두려움.


..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어요.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게 두려웠어요.

그렇게 마주하게 될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글을 쓴다고 해보았자

말장난 같은 피상적인 단어들 몇 개 나열하는 것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솔직해야 손이 움직이니까요

설령 무엇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덮는 것조차

나를 알아야, 제대로 봐야 덮으려고 애쓸 수 있으니까요.


나에게 글쓰기란,

글 쓸 때의 감정이란 다이빙대에 오르는 것과 같이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브런치를 열었습니다만


글을 써내려 오다 보니

글쓰기가 아니라

그냥, 나의 삶이,

나의 시간이,

내가 살아온 세월과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지금이,

다이빙대 위에서 느꼈던 감정 그대로이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을 잊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다이빙대 위에 서 있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서 있습니다.


두려우면서

별 일이 없을 거라고 자기를 속여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글도 솔직한 글을 못쓰고 피상적인 표현만 합니다.


자기 연민만큼 촌스러운 일은 또 없어서

그런 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구나만 확인하고

부끄러운 글 하나를 추가합니다.

어둠이 깊어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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