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3년 차
정현종 시인의 시집, 고통의 축제
속옷을 한 번 사보려고 인터넷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 밥을 챙겨 먹이고 씻기고 일기예보 확인해가면서 옷 입히고 싸우는 걸 말리고 겨우 둘을 차에 태워 큰 애는 초등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아직 온기가 돌지 않는 빈 교실에 들여보내 놓고 출근시간 겨우 맞춰 사무실에 앉아 하루 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사담을 나누는 일도 없이 업무를 마무리 하면 눈치가 좀 보이긴 하지만 가장 먼저 사무실을 빠져나와 둘째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싣고 초등학교에 가서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첫째를 싣고 집으로 돌아와 먼저 씻기고 아이들 노는 동안 식사 준비를 하고 밥 먹이고 배가 불러 좀 여유로워진 아이들이 그럭저럭 놀고 있을 때 화장을 지우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마른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직도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줘야 하는 아이들 둘을 양 옆에 눕히고 한 시간 책을 읽어주다 잠들어버리는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동안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없고
말없이 누워서 살이라도 부비적거릴 이 없고
하루하루 하루가 덧입혀지다가
어쩌다 마주친, 그렇게 기다리다 마주친,
잘 알지는 못하는 그 사람 앞에서 벗어도 부끄럽지 않을 속옷 세트를 하나 사려고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살피다가
나 지금 모르는 남자 앞에서 벗어도 부끄럽지 않을 속옷을 사려고 해,
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 졌다.
그래도 농으로 알고 변화가 없을 일상의 그림자가 무거워
그러면 정말로 요란스럽지 않고 정숙한, 속옷 한 벌 사다가
절대 고요의 어느 방 하얀 시트 위에 정숙하게, 누워
잘 알지 못하는 그 사람과 가만한 인사를 나누게 될까 봐
장바구니에 담긴 그것들을 조용히 비우고
정현종 시인이 30대쯤에 노골적인 언어들을 뱉어놓은
시집 고통의 축제를 담고
정말의 고통의 축제를 보내보려
어느 도시 네온사인 뒤
어둑한 관공서 주차장에서의 입맞춤은 지워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