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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Feb 11. 2020

위트앤시니컬(Wit N Cynical)

나는 이렇게 또 쉬운 사랑을 한다

혜화동 로타리에 오래된 서점이 하나 있고

층에는

시집 전문 서점이 있

게다가 그 공간은 시인이 운영한단다


오후 한 시에 문을 연다 하니

어쩌면 그곳은 정말 시인이 운영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대학로를 걸어도 청춘은 부재하고

누구를 앞에 두고도 펼쳐 보일 역사가 없으며

사랑에 대한 기억도 소멸된 지 오래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시집만 모여있다 하니

그득한 사랑, 열망, 욕망..

흘러넘쳐 내 옷깃에 묻기를

돌아갈 때는 어딘가 스쳐간 자리라도 생기기를


말없이 책장에 빼곡히 꽂힌 시집의 책 등을 읽어나간다

손 뻗어 그 뺨 어루만지지 않고

시인의 이름과 그가 외치는 단 한마디의 절규만 읽어나갔다

어설프게 손잡아 아픔만 남은 인연들

나를 버리고 매달렸던 시간들

함부로 시집을 꺼내 펼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어 하나하나 금세 영혼에 박혀버리

아무나 쉽게 사랑해버리는 값싼 심장이기에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스프레드 천에 펼쳐놓은 타로카드 뽑듯

쭈그리고 앉아 한 권을 뽑았다

비장하게 펼친 곳에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나의 문장이 있었고

나는 주저앉은 채 눈물 떨구고

내 눈물 받아준 그이와 결국, 그 밤을 보냈다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울지 말라고 하는데 눈물이 나는 위트,

그럼에도 혼자 있게 하는 시니컬.


저 문장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나는 저 남자와 사랑할거다

부둥켜안고서 날 떠나지 말라고

끝까지 매달릴 작정이다


나는 이렇게 또, 

사랑에 빠졌다





*위트앤시니컬 혜화동 동양서적 2층에 있는 숍인숍 형태의 시집전문서점.

*정현종 시인의 시집 <고통의 축제> 중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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