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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Feb 18. 2020

원주씨,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원주씨,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자기가 찍어준 사진을 보는데, 그냥 막 눈물이 나더라고. 내가 너무 예뻐서. 아니, 막 그렇게 평소보다 예쁘게 나왔다는게 아니라, 뭐랄까, 자기가 찍어준 사진에서 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어. 이건 분명히 나를 사랑해야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는 확신 같은 거 말이야. 걱정 마, 원주씨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니까. 그저 피사체에 대한 애정, 내가 잠시라도 자기의 피사체가 될 수 있었던 게 너무 황홀했어. 단어가 좀 웃기지? 그런데 홀,이라는 표현말고는 딱히 적당한 말을 못 찾겠어.


 사실 행복했어. 원주씨는 그냥 자기 일에 열심일 뿐이었지.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행사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자기의 일이었으니. 사진을 찍는 기술이 좋을 뿐이고. 그런데 인물 사진을 찍는 거, 그거 정말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피사체를 온전히 사랑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기 위한 그 몇 초,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누군가 나를 봐주고, 가장 좋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는 데서 그만 눈물이 터져버린 것 같아. 자기가 찍은 수십 명, 수백 장의 사진 중에 하나일 테지만 말이야.


그렇게 누가 나를 찍어준 사진이 없거든. 애들 어릴 때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내 사진이 없어. 나는 애들이랑 같이 있는 남편 사진도 참 많이 찍어줬는데 말이야.  아이들을 보면서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 애들과 같이 있는 남편 모습, 심지어는 애들찍고 있는 남편 모습까지도 많이 찍었어. 남편을 사랑했었지. 내 눈엔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동시에 남편의 모습이 함께 보여서 남편을 찍지 않을 수가 없던데 남편은 그게 아니었나봐. 애들이랑 같이 있는 내 사진은 없더라.


어느 날 애들이 그러는 거야. 엄마는 왜 우리랑 안 놀아줬냐고, 왜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은 없냐고. 내가 왜 애들이랑 안 놀았겠어. 남편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던 거지. 애들이랑 있는 내 모습, 내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던 거야. 그걸 탓해 뭐하겠어. 그냥 그런 건데 뭘. 그러고 보니 단체사진 외에는 내 사진이 참 없더라.


그런 마음을 느끼고 어딘가 씁쓸했는데, 자기가 찍은 내 사진, 정확히 말하자면 행사의 기록을 위해 자기가 일한 사진들 중에 있는 나를 보니 감정이 올라왔던 거야. 어느 한 남자가 나를 위해 잠시 멈췄겠구나, 그가 기억도 하지 못할 잠깐의 순간 동안 피사체를 사랑했겠구나, 원주라는 한 사람이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냥 자기의 일이었어도 나는 너무 고마웠던 거야.


그 사진 한 장에도 감동을 받고 있는 내가 너무 가여웠던 거.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버린 것 같아. 원주씨, 고마워. 그냥 고마워. 자기가 찍어준 사진 한 장으로 나는 사계절을 한 연인과 보낸 것 같이 벅차.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이렇게 멋지게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 싶어.  나도 순간에 정성을 기울이려고. 그러면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부는 바람도 어루만짐으로 다독임으로 느낄 만큼 마음이 얇은 사람에게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사랑으로 다올 수 있겠구나 싶어. 삶의 큰 희망이나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자기에게 돌려주기엔 원주씨가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 누군가를 위해서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볼게. 아, 물론 원주씨에게 바로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말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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