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 시절 갈치 한 토막의 추억

(feat. 부산 냄새)

by 운곡

雲谷

나는 부산이 고향이다.


고향을 떠난 지 제법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부산 냄새를 잊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 냄새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부산 냄새를 아는 사람이 찐 부산 사람이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부산 냄새의 진원지이자 늘 곁에 있는 나의 친구 같았다.


그래서 우리 집 식탁에는 늘 바다가 있었다.


동태, 고등어, 전갱이, 오징어...


그리고 그중에서도 갈치는 조금 더 특별한 생선이었다.


아버지가 유난히 좋아하시던 갈치.


그 갈치로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갈치 ‘국시기’는


국밥도 전골도 아닌, 오직 우리 집만의 특별한 한 그릇이었다.


보통의 경상도식 국시기는 남은 찬밥에 콩나물과 김치를 넣고


휘리릭 끓여 낸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우리 집 국시기는 달랐다.


은근한 갈치 비린내와 구수한 국물,


부드러운 갈치 살과 밥알이 어우러진 그 맛은


아버지만의 최애 이자 우리 집의 따뜻한 추억이었다.


커다란 양은 냄비에 갈치 토막과 애호박, 무를 듬성듬성 넣고 콩나물과 김치를 듬뿍 넣은 다음,


갖은양념으로 간을 해 식은 밥과 함께 푹푹 끓여 내면


부엌 가득 퍼지던 냄새가 문틈을 타고 방안까지 점령하면 아버지는 밥상도 차리기 전에 벌써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입맛 하나에 정성을 쏟으셨고,


그 뜨끈한 국시기 한 그릇은


우리 가족에겐 잔칫상이나 다름없었다.


시골에서 종종 다니러 오시던 친할머니도


우리 집 따뜻한 식탁의 또 다른 주인공이셨다.


할머니가 오신다는 기별이 오면


어머니는 서둘러 시장에 가 닭을 한 마리 사 오셨다.


부엌 입구에 다리를 묶인 채 서성이던 닭은


어머니가 쌀 한 줌을 뿌리면


닭은 잠시 뒤의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겁지겁 주워 먹다가


저녁상에 하얀 백숙으로 변신해 할머니 환영 만찬의 메인 요리가 되었다.


며칠간 막내아들 집, 딸 집을 들르시고


밤이면 늘 우리 집에 오셔서 주무셨다.


어머니는 할머니 상차림에 유독 신경을 곤두세우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리 잘 차려도


당신이 좋아하는 게 없으면 늘 젓가락질이 느려지고 무뚝뚝한 표정에 곧잘 어린아이 마냥 반찬 투정도 하셨다


“나(나이) 가 드니 자꾸 비린 기 땡긴데이…"


혼잣말처럼 내뱉으시며 어머니를 힐끗 바라보면,


어머니는 말없이 시장에 나가 갈치를 사 오셨다.


천일염으로 밑간하고 칼집을 낸 뒤


연탄불 위에서 정성껏 구워내시고


양념장까지 곁들여 상을 차린다.


통통한 갈치 토막은 어김없이


할머니와 아버지 상위에


우리들 상위엔 살점 없는 꼬리 쪽 토막이다.


젓가락으로 열심히 파 봐야 별 소득이 없다...


할머니께서는 갈치를 맛나게 다 드시지만 아버지께서는 우리 5남매의 똘방한 눈을 보시고는 갈치를 조금 드시다 말고 그대로 상을 물리신다..


그 상위의 남은 찬들이 우리상으로 건너 오면 그 두툼한 갈치 토막을 놓고 우리는 전투태세로 들어가게 된다...


그 조용한 격돌마저도 이젠 아득히 그리운 풍경이다.


특히 남동생은, 식어 비린내가 감도는 갈치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짜 생선 맛을 아는 녀석이었다.


어린 입맛으로도 어른도 쉽게 느끼지 못할 갈치 특유의 비릿한 깊은 맛을 즐길 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한 토막 갈치에는


아버지의 자상한 웃음과 어머니의 손맛,


그리고 할머니의 까탈스러운 입맛까지,


우리 가족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의 밥상은 비록 소박했지만


온기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로를 향한 끈끈한 정(情)이 한상 가득했다.


지금도 나는 갈치 요리를 마주하면


그 시절이 눈앞에 되살아난다.



은빛 비늘 사이로 스며든 어머니의 손맛,


아버지가 물리신 한 토막 갈치를 사이에 두고 남매들이 벌이던 웃음 섞인 전투,


그 모든 것이


내 유년의 향기,


부산 냄새의 정체였다.


흔하디흔하던 그 서민의 생선, 갈치.


이제는 귀하디귀한 몸이 되어


실한 것 두 마리만 잡아도


1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열 손가락을 다 펼쳐도 얼른 셈이 안 되는 값이다.


오늘, 민생 지원금이 들어왔다.


그 시절의 온기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


은빛 찬란한 갈치 한 마리를 조심스레 눈여겨본다.


어쩌면, 그건 단지 생선 한 마리가 아니라


내 유년의 한 조각 퍼즐이자


식탁 위에 피어오르던 그 시절의 "부산 냄새"를 향한 그리움 일지도 모른다.


운곡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