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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Dec 30. 2022

정리, 괄호하고 치료 종결

여덟 살 아이의 겨울(2022.12-2023.02)



수업을 정리했다.




이것저것 치료란 명목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한 지 만으로 5년이다.


두 돌, 정확하게 21개월 언어치료를 시작했으니 개월 수로도 63개월이다. 너는 정말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센터에 다녔구나. 그 흔한 문화센터가 아니라 발달센터인 게 좀 아쉽지만.


최근까지 언어 그룹 수업, 감각 통합 치료와 특수 체육, 인지 수업 총 4개의 수업을 받았다. 이 중 두 개를 정리하고 인지 수업과 감각 통합 치료만 남긴다. 이유를 묻는다면 첫째, 다른 활동으로 치료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둘째,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보다는 강점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약 3년 동안 6명 그룹으로 언어 수업을 들었다. 아이는 그중 잘하는 축에 속했는데 몇 달 전 새로운 친구가 들어온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아이는 가장 똑똑한 아이가, 내 아이는 그저 그런 아이가 되어 버렸다. 선생님도 알고 나도 느끼고 아이도 눈치챈 것 같다.


"OO이는 똑똑해."
"왜 그렇게 생각해?"
"걘 기억력이 좋아."
"너는?"
"나는 기억을 잘 못하잖아."
"그렇지 않아, 너도 똑똑해."


아이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똑똑하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괜히 내 속만 상한다. 그룹 수업은 언제나 평가가 뒤따라 왔다. 수업 중 잘했을 때마다 받는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아이는 늘 신경 쓰곤 했다. 수업 태도가 좋을 때도 동그라미를 받고, 잘하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했을 때도 동그라미를 받고, 문제를 맞히거나 게임에서 이겼을 때도 동그라미를 받는다. 예닐곱 살 때 만해도 동그라미는 꽤 좋은 강화였는데, 요즘 들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동그라미 개수를 비교하며 실망감을 표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이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룹 수업 후 부모 상담 시간, 아이에 대한 칭찬은 들을수록 기분 좋았고 반대의 경우는 속이 상했다. 선생님의 피드백에 기분이 왔다 갔다 한 적도 많다. 그런데 요즘은 선생님이 지적하는 아이의 부족한 부분에 반기를 들고 싶어졌다. 모든 상황에서 또박또박, 시의적절한 말을 해야 할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까?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불편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선생님은 지적한다. 그냥 얘기할 땐 말을 잘 하지만 발표를 해야 하거나 자기 차례가 되어 말할 때는 너무 경직된다고. 보통의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데 내 아이는 아무 말하지 않거나 그냥 모른 척한다고. 아니면 아예 다른 말로 사람 관심을 돌리려고 한다고. 나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딴생각이 났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면 좋겠지만, 그런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 아이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선생님 말씀은 좀체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날 하루 내 눈엔 아이의 단점만 들어온다.


이게 그만두라는 신호인가? 같은 선생님과 3년 간 수업을 했으니, 내 아이가 그동안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얻은 게 아닐까? 지금까지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2,3년까지 여러 선생님과 수업을 했다. 정확하게 세어보니 모두 15명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선생님과 몇 번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지 선생님인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일단 말을 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으니 그 과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언어 치료뿐만 아니라 놀이 치료과 감각 통합 치료도 비슷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선생님이 아이에게 가르쳐 수 있는 수업의 내용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특정 상황에서 아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머리로 알고 있더라도 적절한 반응이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체화시켜야 했다. 자연스럽게 1:1 수업보다는 그룹 수업을 찾게 되었고, 점점 더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만나는 게 힘들어졌다. 예전엔 동네 센터 몇 군데만 돌아봐도 답이 나왔는데, 아무리 멀어도 차량으로 20분 이상 이동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점차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아 서울 쪽으로 가는 일이 잦아졌다. 유명한 선생님일수록 상담도 몇 달씩 기다려야 하고, 상담을 받더라도 선생님 스케줄이 이미 차 있어서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받고 있는 수업을 정리한다는 건, 그냥 이 시간을 비워둔다는 걸 의미했다. 솔직히 불안하다.


초등학교 1학년은 무사히 마쳤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마 아이가 열 살이 되고, 열한 살이 돼도 내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믿어야 한다. 결국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센터가 아니다. 이젠 실전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수업 2개를 정리하는데 이토록 주저리주저리 쓴다. 결국은 내 마음을 놓지 못했다는 반증이겠지. 나중에 이런 수업이 또 필요하면 어떡하든 맞는 선생님을 찾아다니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이런 생각이 내게 위로가 된다면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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