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여덟 살 아이의 봄(2024.03-2024.05)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 치료인 PCIT 수업을 듣고 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수업을 들었다. 수업 방식은 간단하다.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밖에서는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방에 들어가 아이와 놀이를 주고받는 것. 그 과정을 PCIT 전문 선생님이 지켜보고, 각 상황에 따라 부모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코칭해 준다.
지금 하고 있는 놀이는 대부분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인 CDI child-directed interaction 방식. 단어 그대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놀되, 아이의 행동에 반응하고 아이의 행동을 부연 설명하며 아이의 행동에 칭찬을 해줘야 한다. CDI를 할 때는 질문도 하지 말고, 직접 지시든 간접 지시든 아이에게 지시하지 않으며, 비난을 삼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거 해 보자."와 같은 권유도 좋지 않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CDI에서 기술이라 불리는 몇 가지 행동이 있다. Praise 칭찬하기, Reflect 반영하기, Imitate 모방하기, Describe 묘사하기, Enjoy 즐기기. 영어의 첫 글자를 따서 PRIDE라고 부른단다. 이 중 반영은 아이의 행동을 엄마의 표현으로 다시 설명해 주는 것. 가령 아이가 블록을 쌓고 있다면, "OO가 블록을 쌓았구나."와 같은 형태다. 반영에서 주의할 점은 주어가 반드시 "아이"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PRIDE라 불리는 다섯 가지 기술.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놀이 과정 중 실행하려니 잘 되지 않는다. PCIT 전문 선생님은 부모가 PRIDE 기술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 체크해 알려준다. 칭찬하기 몇 번, 반영하기 몇 번 이런 식. 숫자로 표현하다 보니 상당히 직관적이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막막했던 때가 많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수치로 보여주니 유용하다.
나는 요즘 매일 저녁 10분씩 아이와 놀이 시간을 갖는다. PCIT 수업을 듣지 않는 날에도, 아이 주도로 놀이를 하고 이에 대해 기록하는 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아이와 마주 보며 놀아본 적이 없었다.
3,4년이나 지난 얘기지만, 아이는 놀 때조차 수없이 짜증을 냈다. 레고 블록이 안 맞혀진다고, 로봇 변신을 못하겠다고 짜증. 게다가 같이 놀더라도 아이는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놀기를 요구했다. 블록을 쌓았다 무너뜨리면 그 과정을 반복해야 했고, 클레이을 갖고 놀아도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다시 뭉갰다 또다시 만들었다. 조금 더 확장해 국수먹는 흉내를 내면 정말 많이 선방한 거였다.
당시 아이와의 놀이는 즐겁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아이는 거부의 몸짓을 보내곤 했으니까. 솔직히 거부가 아니라 내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아이는 늘 일방적이었다. 상호 작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대신,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퍼즐 맞추기를 선호했다. 지금도 아이의 방은 혼자서 정답을 맞히는 보드 게임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요즘 초등학교 3학년 아이와 함께 유치원 아이들이 할 만한 놀이를 하고 있다. 클레이를 뭉쳐 피자를 만들고 오래전 구입했던 블록으로 성을 쌓는다.
가끔 미니 자동차도 굴리고 아이가 가는 대로 따라간다. 가끔 예전보다 나아진 모습도 발견한다. 지금도 여전히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하지만, 때때로 내 말에 귀 기울이며 나를 쳐다봐 준다. 예전처럼 같은 방식으로 놀이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짝 변형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아이가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놀이자체를 중단했는지 모르겠다.
"발달 단계에서 거쳐야 하는 부분은 조금 늦더라고 경험하고 가는 게 맞아요. 그게 아이한테 필요해요."
오래전 언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낯가림을 하지 않던 아이가, 두 돌 즈음 낯가림을 시작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옆에만 있어도 소리를 지르던 때였다. 그때 이 말을 듣고 늦게나마 이런 경험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와의 놀이도 비슷하다.
조금 늦었지만
아이와 마주 보고 놀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