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격차
예비 중등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세대를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조금 무식한 질문으로 아이들의 띠를 묻고는 한다. "아~ 너희들이 내 친구가 말했던 그 유명한 백사띠 애들이구나."(초등 교사였던 친구가 꽤나 힘들어했던 학년의 아이들이었다.) "어머! 너희는 역시 우직한 소띠야." "역시 양띠라 순해." 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첫인상을 정리할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아이들 개개인은 다 다르고 띠 이야기는 그저 애들과 웃자고 하는 소리다. 우리 학원 예비중등은 대체로 두 개의 초등학교에서 올라오고, 아이들마다 수준차이가 벌어지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보통은 국어과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다른 과목보다는 쉽고 즐겁게 느껴지는 편이라 수업에서 눈에 띄게 뛰어난 아이가 하나 둘 있기는 해도 대부분 수준이 비슷하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다.
나는 겨울 방학마다 모든 학년에게 비문학 과제를 준다. 수능에서 비문학 지문의 중요도가 높아진 이후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비문학 교재들이 학년별로 나오고 있어서 매일 한 지문씩 읽고 푸는 과제로 쉽게 내준다. 예비 중등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의 활동이었고, 그런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도 기본인 어휘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비중등의 문제집에도 지문에 나온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알맞은 단어를 찾는 간단한 활동이 있는데 유독 그것을 못 하는 아이가 A였다. 결국 내가 바로 앞에 앉아서 단어를 찾아 쓰는 것을 도와주다가 나는 A의 진짜 문제를 찾고 말았다.
- 극진전
내가 불러준 단어는 '급진적'이었다. 예비 중등에게 어려운 단어일 수는 있다. 단어의 뜻을 모를 수는 있다. 문제는 내가 불러준 단어를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아니고, 초등학교 6학년. 그것도 이미 학기는 모두 종료가 되고 졸업식을 며칠 앞둔 아이가. 차라리 아이가 '급찐적'으로 썼다면 이해가 될 법했다. 들리는 대로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들어서 착각할 만한 소리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ㅂ'과 'ㄱ'은 그 소리가 분명하게 다르게 들린다. 'ㄱ'과 'ㄴ'소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평소 아이들이 적을 때, 발음이 혼동되기 좋은 것은 나는 쓰기 좋게 불러주는 편이다. "매개체, 아이아이어이다." "희! 화화야. 희!" 표준발음에 맞게 읽는 게 아니라 정말 쓰기 좋게 불러준다. 그러다 보니 하루는 고등부 아이가 "쌤 그 정도는 쓸 줄 알아요."라고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급진적도 표준 발음대로 불러준 것이 아니라. "급, 진, 적." 부러 일부러 끊어서 된소리 되기가 되지 않도록 조절해서 불러줬던 거였다.
A의 받아쓰기는 그것 하나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겹받침을 못 쓰는 일은 아주 기본이었고, 전혀 상관없는 발음의 받침을 적은 단어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했던 A의 비문학 과제책엔 붉은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학습에 있어 기초적인 읽고 쓰기가 다 안 되는 상황. 이미 A가 올라올 때 영어는 심각한 학습부진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기초적인 알파벳도 정리가 안되었고, 파닉스는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 A는 애초에 영어는 초등 저학년을 지도하는 영어선생님께 1:1로 개별 수업을 맡겨야만 했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A의 다른 교과들도 걱정이었다. 당장 A의 국어 학습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교과는 더더욱 따라가기 힘들 것이 보였다. 정말 안타까운 건 A의 어머님이 A를 그전에 방치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각종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이용해서 어머님 나름으로 교육을 시켜오신 경우였는데, 결과적으로 A에겐 적절하지 않았다.
반면에 같은 반에 있는 B의 경우는 상황이 너무 반대였다. B 역시 국어만 놓고 이야기한다면 따로 사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우리 학원은 초등부의 경우 영어, 수학만 운영 중이며 B는 초등부를 우리 학원에서 보냈다.) 아이들이 학습하는 비문학 지문의 경우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B는 거기에 나오는 환경 문제, 과학 기술, 역사, 예술 이야기들을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글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에 대해서 B는 종종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거나, 스스로 원리를 파악해 낸 것이 맞는지 내게 확인하면서 즐거워했다. 아이의 생각의 폭이 글을 읽으면서 더 성장하는 것이 보이고, 이렇게 퍼져 나가는 사고가 다른 교과에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래서 국어는 도구과목이고, 국어 하는 것만 봐도 이 아이의 가능성이 보인다.) 문학 작품을 분석함에 있어서도 B는 핵심을 너무 잘 찾았고, 이해가 빠르고 수업을 매우 즐기는 아이였다. 아이를 초등부 때 지도하신 영어 선생님 말씀이 B의 어머님도 아이의 교육문제로 고민이 매우 크셨다고 했다. 주변에 이런저런 말들이 너무 많아서 상담을 하셨는데, 우리 부원장님이 '독서'를 강조하셨고 B의 어머님은 아이를 틈만 나면 도서관에 끌고 다니셨다고 했다. 어떤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B는 도서관, 책과 함께 사는 아이로 성장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B인 것이다. (두 자녀를 잘 키운 경험이 있는 부원장님의 교육 철학은 초등은 영어, 수학 다지기와 독서만을 강조하신다. 나도 초등에 있어서는 국어가 학습으로 부담스럽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적극 권하는 바이다.)
사람마다 아무리 재능이 다르다고는 해도 같은 공교육과정을 거쳐 온 두 아이의 (A와 B는 같은 초등학교다.) 학습 수준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나타나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중등 교육 과정에서 A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A는 하위권으로 B는 상위권으로 중학교를 마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건 고등에선 더 이상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의 큰 격차로 나타날 것이다. 매년 어느 학년에서나 이렇게 격차가 나는 아이들을 마주하기는 하지만,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의 격차가 이토록 벌어지는 것은 내게도 충격적이다.
그렇게 가만히 또 생각을 해보니, 작년부터 우리 학원에 새로 왔던 신입생들 중에서 종종 목격한 현상이기도 했다. 아니 중학교 2학년이 이것도 몰라? 중학교 3학년이 이것도 안된다고?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 코로나로 학교에 안 가던 기간에 방치된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1학년이 자유학년제이다 보니 부모님들이 심각성을 인지 못하시는 경우도 많았고, 건강을 우려하여 비대면의 교육 방법을 선호하셨으나 관리가 잘 안 된 경우들도 꽤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학교가 정상운영이 어려웠던 시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많이 교육적인 면에서 방치가 되었다. 단 일 년이었어도 아이들의 일 년은 어른들의 것과 같지 않았고, 학교에 따라서는 일 년이 아니라 이년, 삼 년간 문제가 지속되었으니 그 영향도 컸다.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고 있다는 요즘. 올해는 부디 아이들의 교육이 다 정상으로 돌아가서 그런 부진학생들 문제가 해결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아이들 주변에서 아이들의 기초학력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챙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 고등에 올라가기 전부터 학습 격차가 벌어져서 최소한의 도전조차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