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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첼 Feb 18. 2023

겸손 따위 필요 없다. 겸허하기만 하다면!

겸허, 지속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세.

대한민국 사회에서 겸손은 미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겸손이란 미덕이 개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제목처럼 스스로 겸허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겸손한 태도를 미덕이라며 은근히 강요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겸손 따위 왜 필요 없는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업을 하면 채용면접을 많이 보게 된다. 내가 직원을 뽑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가'에 여부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어도 성장성이 낮은 사람이라면 나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무조건 경험이 적고 현재 능력이 부족해야 뽑는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이 오히려 더 성장 가능성이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장 가능성은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원자가 겸허한 자세를 갖췄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겸손한 자세가 아니라 겸허한 자세다. 

겸손: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겸손한 태도란,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을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신이 겸손한 태도를 강요받았을 때나 혹은 봤을 때는 언제인가? 수능 만점자들은 인터뷰에서 국영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고 하고, 미모가 뛰어난 연예인들의 비결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고, 국가대표가 금메달을 딴 뒤 소감에선 국민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한다. 결국 자기의 노력이나 타고난 능력으로 공을 돌리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개인이 어떤 성과를 냈을 때 자랑하고 싶다면 그 크기만큼 자랑값을 지불해야 한다. 회사에서 승진을 했을 땐 승진턱을, 시골에서 자식이 서울대를 입학하거나 공직에 임용되면 현수막의 크기만큼 돼지라도 잡아 동네사람들에게 대접해야 한다. 심지어는 생일 축하를 받을라 손 치면  생일빵이라도 맞아야 한다. 


이런 문화는 개인의 성과나 성공을 사회가 축하해 주기보단, 축하받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심기를 고려하여 시기, 질투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일종의 서비스적인 자세이다. 결론적으로 겸손함은 타인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는 태도이다. 겸손함의 중심은 자신보다 타인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겸손하다는 것은 그만큼 진심으로 타인을 염두한다는 뜻이 되는 이율배반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의도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타인에게 의식적으로 방출시키는 에너지는 결국 소모되는 것이며, 때문에 겸손한 태도는 지속가능성이 낮고 기간이 짧다. 


내가 나 자신과 우리 직원들에게 겸허함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모든 삶의 중심엔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인식하면 되기 때문이다. 

겸허: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

겸허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허 虛'를 깨닫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비어있다는 것이다. 

내가 비어있음을 깨닫고 있는 상태. 이것이 겸허한 자세다. 겸허한 사람은 잘난 척을 할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스스로가 부족(허)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겸허한 사람은 타인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에너지가 들지 않으며 지속가능하다. 스스로 '허'의 크기를 인식하면 그만일 뿐이다. 내가 비어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만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반증이다. 내가 어떤 공부나 일을 할 때 내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딱 그 부족함 만큼만 노력해서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겸허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직원을 뽑을 때, 지원자가 얼마나 경험이 없는지, 얼마나 일을 못하는지, 능력이 없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내가 앞서 말했듯이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겸허함이 부족하다. 스스로가 어디가 얼마큼 비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친구들은 본인의 비어있음을 차있음(滿)으로 곡해하곤 한다. 그러면 결코 성장할 수가 없다.


겸허하다는 것은 내가 차오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차오르고 있다는 것은 결코 만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빈 공간을 느낄 수 있다면 차오름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동기부여나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서 정말 중요하다. 다이어트나 공부를 할 때, 우리는 노력에 대가에 따라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 


겸허하다는 것은 내 그릇의 크기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차오름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만족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그릇이 찼다는 뜻이다. 가득참(滿)을 느껴서 만족을 느낀다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 그럴 땐 과감히 자신의 허의 크기를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겸허하지 못한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그랬다. 편입을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 이상의 배움은 없었다.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해도 만족감은 그때뿐이었다. 만족의 끝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공허함이었고 방황이었다. 


그래서 사업을 할 땐 겸허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나 비어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레 손님들에게 겸손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이번에 세 번째 가게를 오픈한다. 누군가는 욕심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나는 스스로 영역의 한계를 넓힘으로써 어떻게든 허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 자신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늘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런 끊임없는 도전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빈 공간(허)을 늘린다. 만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더 커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겸허하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과 희망이다. 결국, 늙어가지 않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 어떤 노력을 기울여 허점을 메꾸려 할지라도 풍선효과처럼 다른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린 모두 완벽한 신이 아니기에 내 안에 '허'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 부족을 새로이 채워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은 '허'의 존재를 인정하고 채워나가는 행위라고 여긴다. 내 아내는 20년 가까이 해금만 연주했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음식을 만들고 공간을 브랜딩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가게를 위해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빵을 만들기 위해서 밀가루를 만진다. 스스로의 부족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고, 채우고 싶기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모르기에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도전 자체가 어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도전하다 실패하면 어떤가? 그 실패를 통해 다른 모습의 '허'를 분명히 채웠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성공이 기적이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런 겸허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늘 새롭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여러분, 겸손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겸허하기만 하다면요. 


겸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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