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 종갓집 장녀, 유교녀다. 벨기에에 산 지, 어언 16년. 그래도 종갓집 장녀인 것은 변함이 없고, 유교녀인 것도 변함이 없다. 김치를 16년 일본에 둔 다고, 기무치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나는 여전히 유교녀이다.
최근 친구 중 한 명이 폴리아모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 다자간 연애 혹은 사랑이다. 동시에 여러 사람과 연애,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게 뭔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고?
하지만 나는 남의 취향은 최대한 존중하는 편이라, 그냥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의 친구는 여성이고, 현재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7살짜리 아들이 있다. 벨기에에서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행정적으로 파트너쉽을 등록하면 모든 권리는 결혼한 사람과 동등하다. 대다수의 벨기에 사람들은 합리적인 파트너쉽을 선택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회의를 느끼고 간단한 파트너쉽 절차만 밟고 같이 살고 자식도 함께 낳는 사람이 많다.
각설을 하고, 뭐여? 폴리 아모리이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내 지인 중의 한 명이 할 것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최근 사랑에 빠졌다 한다. 남자친구가 주지 못하는 다른 감정을 그 사람에게서 받고 있다 하였다. 그래서 남자친구의 동의하에, 주말마다 하루를 그 사람과 보낸다 하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뭣이? 동의? 남자친구도 동의를 했다고오오???
나는 모르겠다. 사람 마음에 한 사람이 아닌 다자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나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사람이다. 나에게는 흑과 백 두 가지밖에 없다. 선택지는 고로, 예스 아니면 노다. 이것을 나와 남편에게 적용한다 해보자. 아,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싫으면 그냥 나를 떠나가던가. 난 나 말고 여러 명과 함께 남편을 공유할 생각은 전혀 전혀, 하늘이 두쪽이 나도 없다. 여기가 하렘이냐.
내가 너무 유교녀라 이해를 못 하는 것인가? 아니, 그래도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떠나면 되는 거지, 구차하게 둘 다를 사랑한다는 말을 나의 남편이 혹여라도 날리게 된다면 나의 주먹도 함께 날아가 강냉이 몇 개쯤 털어낼 것 같다.
그리고 그 친구가 최근 소식을 업데이트해 주었다. 남자친구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새로운 관계를 정리했다고. 그리고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잘 지내고 있다고. 가정으로 돌아간 친구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다자간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과 평생을 지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동시에 여러 명과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없던 일로 하고 덮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가 있는가. 한 번은 어렵지만, 두 번째는 쉽다. 솔직히 이것이 외도와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남편의 동의가 있었다고 외도가 아닌 것은 아니다. 함께 하는 동안, 내내 이 사람이 또다시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텐데, 나는 그 짓은 못하겠다.
그냥 한놈만 사랑하며 살든가, 아니면 찢어지든가.
벨기에 고인 물도 때론 여전히 문화충격을 느낀다.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친구의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