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노빠꾸 북토크

벨기에에서 진행 된 노빠꾸 북토크

by 고추장와플

인생은 수수께끼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출간을 하게 될지 몰랐고, 당연히 출간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으니 북토크 같은 이벤트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줄 알았다.


1월에 집안 행사 때문에 한국에 가서 갓 출간된 교보문고의 따끈따끈한 신간코너에서 매대에 올려진 내 책을 만져보고 감격을 했고, 출간 된 책을 내 손에 닿는 종이로 느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하고 벨기에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벨기에에서 어느 날 인스타페이지로 DM하나가 도착했다. 네덜란드에서 사는 같은 이민자로서 함께 울며 함께 기뻐하며 책을 읽었고 노빠꾸 상여자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북토크를 함께 해 보자고 네덜란드의 이벤트 에이전시, 스마트 컬렉티브(smart Kollective) 김민지 대표가 제안했다.


사실 김민지 대표에게서 뿐만이 아니라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서 전자책으로 읽고 '내 이야기 같아서 함께 울고 웃었다, 책을 출간해 주어서 고맙다. 해외생활 하는 와중에 위로가 되었다'라는 메시지를 인스타를 통해 여러 차례 받았다. 내가 벨기에 살이에 지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내 처지를 이해하는 누군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사랑을 따라 여기까지 왔어도, 소수인종으로 남의 나라에 사는 어려움을 남편이 백 프로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가끔씩 서럽고 외로운 마음에 훌쩍거리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내가 아니던가. YES를 외치고 나와 한 배를 탄 김민지대표와 준비에 들어갔다.


언어는 같아도 성향이 천지차이인 소심쟁이 벨기에 인들은 네덜란드어를 쓰지 않으면 잘 받아주지 않았고, 주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던 김민지 대표를 도와 내가 네덜란드어로 장소섭외를 진행했다. 네덜란드는 단일언어국가로 타 언어에 대한 수용도가 높지만, 벨기에는 장시간 프랑스어 사용자에게 천대받은 네덜란드어 사용자들이 반드시 네덜란드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옆 나라라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앤트워프 공공도서관에 문의를 네덜란드어로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된 출간이고, 북토크가 한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대관료가 어마무시한 호텔 회의실을 빌리려고 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는 법, 지인의 소개로 적정한 가격에 앤트워프 YMCA에 자그마한 미팅룸 하나를 빌릴 수 있었다.


벨기에에 거주하는 한인은 1000명 남짓, 그 마저도 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은 훨씬 적다. 벨기에에서 한국어로 진행되는 북토크라... 말아먹을 확률이 크다. 한국사람이 있어야 북토크에 올 것이 아닌가. 김민지 대표와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몇 명이 오든 진행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인터뷰도 준비하고 미니 강연도 준비했다.


어마무시한 가격의 호텔은 20명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YMCA 미팅룸은 정원이 10명이 최대치다. 그러거나 말거나 10명도 내게는 버겁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인회 활동을 좀 열심히 해 볼걸 그랬나? 아는 한국사람도 없는데 이거 큰일 났다.


그러는 사이 티켓 세일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서점도 없고, 장소도 대관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료로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 돈을 주고, 어느 무명작가의 북토크에 온다? 과연 누가 올까?


나: 대표님, 티켓 몇 장이나 팔렸어요?

김민지 대표: 티켓 한 장 팔렸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두고 보죠.

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인맥도 뭣도 없고, 부족해서 어쩌죠.


그렇게 몇 주간 티켓은 1장 팔린 게 다였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티켓이 매진되었다.


확률로 따져보자. 벨기에 교민이 대략 1000명이니 10명, 교민의 1%가 북토크에 참여하는 셈이다.


티켓이 안 팔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졸였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러 여기까지 오시는데, 준비를 제대로 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수업이라면 아이들 학교에 가서 한글 보여주기, 한국소개하기 수업도 했고 벨기에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것도 지겹도록 했겠다, 벨기에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게 과학적인 출처를 사용하여 글 쓰는 방법도 여러 번 강의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쓰게 된 이야기, 책에서 썼다가 삭제한 이야기들, 벨기에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나답게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토크 당일이 되었다. 뭘 입을까 고민하다 옷장에서 남편 재킷을 발견했다.


빙고! 찾았다, 벨기에 노빠꾸 북토크에 찰떡인 옷을!


조금 크긴 해도 요즘엔 오버사이즈드가 대세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는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커버우먼으로 북토크가 예약된 곳으로 향했다.

1층 카페로 들어가니 위층으로 연결된 계단에 붙여진 반가운 한글,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북토크 Saida로 오세요.


진짜다. 이제 저 위에서 내 생애 첫 북토크가, 한국도 아닌 벨기에에서 시작된다.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2층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층인가 보니 다음 층에도 없다. 계단도 가파른데 숨을 헉헉거리며 마지막 층까지 올라가니 김민지대표가 걸레로 책상을 닦고 있었다.


"작가님, 오셨어요! 여기 청소도 안 되어 있고 더러워서 제가 빨리 시작 전에 닦고 있어요."


저렴한 대여료에는 셀프청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김민지대표가 1층에서 헉헉거리며 3-4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프로젝터도 빌려오고 걸레도 빌려왔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참여자 중에 노약자가 없길 바란다.


프로젝트를 연결하고 커튼을 치려고 보니 이런... 커튼이 없다. 블라인드도 없다.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하나도 안 보인다. 결국 노트북 화면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나둘씩 참석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말했다. "1층의 카페에서 들어오는데, 누가 한국인이냐 물어봐서 맞다고 하니 오늘 여기 뭐 있어요?라고 묻던데요? 그래서 북토크 한다고 말했어요."


하고 많은 카페에서 오늘, 이 시간에 친구랑 같이 하이킹하자고 약속했다가 취소되어 북토크가 열리는 아래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한국인 K양은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북토크에 참석했다. 아무래도 인연인 것 같다. 이렇게 최대 수용인원 10명에서 1명이 추가된 11명과 북토크를 진행했다.

벨기에에서 사는 외국인으로서, 소수인종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싶은 내용들을 나누었다. '유쾌하게, 무겁지 않게'가 내가 가장 고심한 부분이다. 내가 책을 무겁게 쓰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북토크도 재미있게 즐겁게 하고 싶었다.


웃기는 개고생이야기에서 웃김을 빼면 개고생만 남으므로.

독일에 위치한 유럽 한인들의 마음의 곳간을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되는 '한달두권서점'에서 북토크를 위해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해 주신 책도 거의 다 팔렸다. 북토크의 마지막은 벨기에 퀴즈! 한국인들은 점수와 관련된 것에는 진심이다. 모든 분들이 즐겁게 참여해 주셔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한 곳에 모이기가 쉽던가.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2차로 카페에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선가 갑자기 엄청난 양의 벨기에의 자부심인 감자튀김을 들고 나타나신 한 분, 모두가 먹을 충분한 양을 샀다고 했는데 장정 20명이 먹고도 남을 양을 사 오셨다.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분을 세어보니 나 포함 다섯이다. 차에 낑겨타면 어떻게 탈 수 있는 숫자다. 남으신 분들에게 "저희 집에 가서 같이 저녁 드실래요?"라고 물었더니 모두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이셨는지 좋다고 하셨다. 때 마침 어제 삼겹살도 사다 놓았는데 모든 것이 퍼즐처럼 딱딱 맞춰졌다. 우연히 카페에 있다 얼떨결에 북토크에 오게 된 K양은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집에서 상추를 씻고 있었고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맡은 바를 다해 접시를 놓고, 파채를 만들고, 삼겹살을 구웠다.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딱, 이심전심으로 어쩜 그리 잘 통하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 왠지 뭉클했다. 내가 태어난 곳을 나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쌈장이 뭔지, 어떻게 먹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파채도 얹고 잘 말아서 이빨로 쌈을 자르지 않고 한 입에 먹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온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김민지 대표를 제외하면 오늘 처음 본 분들만 우리 집까지 오셨지만 마치 오래도록 알아 온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따듯했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가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늘 그리웠던 한국이, 그리고 쉽게 찾을 수 없던 나와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가까이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마음이 꽉 채워지고 따스함으로 물든 그런 하루였다.


앞으로 남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의 북토크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