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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린 Aug 20. 2021

천직이란 있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읽기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회를 읽었다.

2회의 내용은 하루키의  20대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고 데뷔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루키의 에피소드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용이다. 아마 내가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초능력자나 슈퍼 히어로가 나오는,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마블 영화가 재미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너무나도 범상치 않고 특별한 에피소드니까.


어제의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 번 더 이 에피소드를 요약해서 말해보고 싶다. 하루키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아내와 결혼을 했고, 하루 종일 좋아하는 재즈를 맘껏 듣고 싶어서 열심히 돈을 벌고 꾸며 고쿠분지에 재즈바를 열었다. 빚이 많아 난방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매우 힘들었다고. 그러다가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히고, 어느 날씨 좋은 날 야구를 보러 갔는데 첫 타자가 2루타를 치는 모습을 보고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때마침 내 손안에 떨어졌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아무튼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46-


하루키는 경기 관람을 마치고 그 길로 신주쿠 기노쿠니야에 가서 만년필과 종이를 사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설을 이리저리 다시 쓴 결과(다시 쓴 방법도 무척 특별하고 재밌는데, 그것은 책에서 확인하세요) 문예지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은 날, 상처 입은 비둘기를 발견해 두 손에 들고 파출소로 데려가던 중에 틀림없이 신인상을 탈 것이고 소설가가 되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와우.


 부러웠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살면서 예감 같은 건 종종 느낀다. 이를테면 '남편이 오늘은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했는데 이 녀석이 왠지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버리지 않을 거 같다'라든가, '내비게이션은 이쪽 길이 빠르다고 하는데 분명 저쪽 길이 더 빠를 거 같다.'라는 예감들. 틀릴 때도 있고 맞을 때도 있는 그런 예감들이다. 간혹 하루키처럼 확신이 들 때도 간간이 있다. '이건 틀림없이 합격이군.'같은 느낌이다. 아주 가-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런 확신을 느낀 적이 없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루키처럼 인생을 통튼 매우 중요한 일에서 확신을 느끼고 그게 탄탄대로로 이어지는 일은 지금까지는 없어... 던 거 같다. 직업 선택에서 틀림없는 확신을 느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미래를 예측한 것과 같지 않을까? '아, 나는 이 일을 하면 100% 성공할 거야'라는 확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느낌이잖아.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런 확신을 갖고도 큰 동요 없이 제 할 일을 한 하루키가 대단하다. 심지어 소설을 완성해서 문예지에 출품한 것도 잊고 살았다니. 만약 나 같은 팔랑귀가 그런 계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재즈바 따위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소설을 써야겠어'라며 일주일에 2번쯤 재즈바 문을 닫고 매일 소설만 썼을 거다. 문예지에 출품한 다음에는 수상하기를 매일매일 손꼽아 기도하지, 절대 잊고 있지는 않았을걸? 게다가 확신이 들었다고 해도 나는 의심이 많은 성격이니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하고 확신을 의심하며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러면 확신이 아닌 건가?;


 어쨌든 하루키가 이런 계시를 받아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하루키에게 소설가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준 직업인 셈이다. 천직을 스스로 느꼈다니 다시 한번 부럽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방황하는 취준생과 이직 희망자들에게 한 번씩 저런 계시가 내려졌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내 귀여운 신간도 오늘 인쇄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번 신간은 생각보다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라는 계시나 에피파니가 나한테도 내려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그런 계시가 내려지지 않았는데, 아마 하루키처럼 다친 비둘기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니 빨리 밖에 나가봐야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든다. 새를 무서워하니 다친 비둘기를 발견해도 그냥 눈으로 쓱 보고 지나갈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만약 내게 저런 에피파니가 다가온다면 반드시 성공이나 좋은 일들로만 느껴지길 바라본다.


P.S:그러고 보니 고쿠분지가 나와서 반가웠다. 나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고쿠분지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3개월 동안 살았는데, 참 좋은 곳이었다. 시골과 도시가 함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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