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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마음이 멈춘다는 건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다.

by Choi

"저는 지금 제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병원 진료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수십 년을 돌고 돌아 이제야 문을 두드렸다.


"기준치수보다는 높은 항목이 제법 있어요. 혹시 최근에 큰 일이나 충격을 받은 일이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 물었다.


'선생님... 저의 뇌신경이 멈춘 거 같아요. 쉰이 된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형성된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계속 깨어 있고, 30년 넘게 내 일상을 계속 흔들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의사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하는 쪽을 택했다.


내가 말을 이끌기보다는,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 속으로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분이 과연 내 상태를 단순한 우울감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 감정의 뿌리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라는 요소가 자리하고 있음을 짚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심한 불안으로 번져 신체적인 반응까지 나타나고 있는지를,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난 확신이 필요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나를 치유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오고 갔다. 난 울지도 않았다. 담담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의사 선생님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빨리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식도 많고 이성적으로도 충분히 정리하실 수 있는 분 같아요.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은 이미 다 해보고 오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걸 다 해보고 오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아마도 혼자 감당하는 데 한계가 온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약물치료를 소량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주 미세한 용량부터 시작해서, 몸과 마음의 반응을 천천히 지켜보면서요. 그렇게 조금씩 바닥을 다지고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불안증이 초 극도로 심각하니, 그것부터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선생님은 나를 정확히 진단했고, 나의 지식을 존중해 주었다.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조목조목 이야기를 해주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그냥.. 느낀 건 2년 전 상담소보다는 현실적이고 나랑 잘 맞는 듯하다. 심리상담소에서 심리검사도 받아봤고, 상담도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가끔은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항의 의도를 파악했고, 그것을 피할 줄도 알았지만 결국 그건 내 진짜 상태를 숨기는 일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도움을 받고 싶으면서도 방어적이었다. 검사비만 몇십만 원에 상담비용만 몇백이었다. 게다 사용하는 설문지는 왜 죄다 직독 직해 인지.. 읽는 사람을 아주 혼란스럽게 만든 설문지였다.


그냥...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당시 나의 무력감과 우울감은 최고치였지만 지문지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그냥 돈만 다 날린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렇게 또 다른 곳을 알아보고 다녀 봤지만, 그곳 역시, 그저 돈만 더 받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나와의 인연은 그냥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어쩌면 상담소와 병원도 사람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더 잘 맞는 곳이 있는 듯하다. 나의 경우는 후자 병원 쪽이 더 잘 맞았다.


정신과 병원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담을 하는데, 나의 눈높이에 맞춰서 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과 역시 책에서 읽었던, 많은 모법답들 중 나에게 맞는 것을 적용시켜 알려주었다. 한 가지 도움이 되었던 건, 책을 읽다 보면 이 증상, 저 증상, 다 나의 증상과 비슷해서 도대체 나의 근본 원인을 알고 싶다가도 내가 의사가 아니니, 확신도 없었는데, 이런 부분들을 의사 선생님이 콕 찍어서 이야기를 해주니 이해가 되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정신도 번쩍 들었다고 할까?


"나이가 50이시면, 하고 싶은데로 하셔도 됩니다.
지금 성인이시잖아요. 아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을 먼저 좀 돌보세요.
자식보다, 부모님 보다 나를 먼저 좀 봐주세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


병원상담결과,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상태인지 더욱 확연히 알 수 있었고, 이런 면에서는 책이나 온라인등의 정보를 찾아서 나에 대해 막연히 판단하는 것보단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심신안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확신'이 생긴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이 병도 나의 일부이며, 지금 이 모습이 나이며, 이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하는 사람도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선생님 역시 '본인'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심리학 책에서 읽은 한 줄도 역시 언급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기에 더욱 강인해졌고, 지금도 이렇게 스스로 병원을 찾아올 만큼 의지가 강한 거라며, 그것 또한 나의 모습'이라 했다. 사실 책에서 이 말과 글을 읽을 때 나의 모습이 항상 오뚝이 같았기 때문에 더욱 많이 와닿았던 부분이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때 마침 선생님도 이런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진짜 나'


나의 문제는 현재 그녀가 만들어 놓은 '나'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는 게 큰 문제였고, 심지어 내 자식 머릿속에서도 '지금 내 모습'이 지워지기를 바랬다. 그건 내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그녀가 만든 나였으니까. 그런데 그게 '지금 현재 나'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영어를 공부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을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 2개를 졸업했다. 그녀의 비위를 맞추고, 그녀가 원하는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기 위해 난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정서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그녀의 기분이 좋아야 나의 하루도 편하기 때문에 난 그렇게 계속 애쓰고 또 애를 썼다. 지치고 지쳤다. 그때 겁먹지 말고 왜 그냥 내가 원하는 건 공부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선생님이 아니다 라고 말을 못 했을까? 심지어 마흔 중반 때도 그녀 기분을 맞추기 위해 '엄마 덕분에 이렇게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고 지금이라도 이렇게 가르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 거짓말을 했던 순간, 기분, 굴욕, 전화 넘어 느끼는 그녀의 으스대는 분위기, 느낌을 내 몸이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난 나의 존재가 참 싫다. 난 싫다 영어가. 선생님이. 공부가 정말 싫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무엇이 그토록 불안했을까?

무엇이 죽도록 그립고 그리워서 나이 마흔 넘어서까지 그녀에게 그런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


'엄마 사랑'


당당하지 못하고, 비겁하고, 비굴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웃긴 짓도 해야 하고, 철없는 짓도 일부러 가끔씩 해야 했다. 그게 자식의 도리라 했다. 그래서 어색하고 서먹하고 친한 척하지 않는 내 자식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무뚝뚝한 내 남편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항상 바라고 바랬다. 부모라는 이름아래에,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줘야지 요구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돈을 줬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는, 끊임없는 비난이 쉬지 않고 매일매일 나를 공격했다. 그녀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행동이 고쳐질 때까지 가르치려 했고 조정하려 했다.


나의 방어벽은 더욱더 높아지고, 그들 앞에서의 연기는 계속되었다. 집에서 낮잠을 잠깐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긴장이 되어 나의 심장은 터질 듯 빨리 뛰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런 진실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의 불안감과 화는 무럭무럭 자랐다. 껍데기만 무대에 서 있는 배우처럼 나의 속은 말라 비틀어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이런 비정상 가족의 규칙을 따랐던 이유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안전한 테두리 안 가족을 지키고 싶었고,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그 어떤 문제도 없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역시 나만 아프고, 나만 문제고, 나만 민감하고 예민해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걸로 간주되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그게 편하다.


그래서...


이젠 그 모든 연기를 멈췄다. 무대에서 내려왔다.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멈추어 버렸다.


'진짜 자아'를 찾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이런 고통과 기억을 깨웠다. 한평생 들어온 '너 너무 예민해서 그래'. 이 말도 따지고 따져보았다. 그렇다 난 예민하지만, 그게 비난과 비판을 한평생 받을만한 잘못은 아니다.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는 식의 판단은 잘못된 것임을 이제 안다.


억지로 연기한 껍질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치유를 시작하고 싶어서.

자유를 찾고 싶어서.

그나마 남은 인생.

수치심 없이,

내 나이 50이라,

스스로 무언가를 해도 되기 때문에,

그래서,

난, 오늘도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

.

.

"나이 50이면 성인입니다. 뭘 해도 됩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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