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을 겪었기에...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는 선물을 건네줍니다. 비가 쏟아져도, 바람이 몰아쳐도, 그 품은 모든 것을 감싸 안죠. 하지만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때로는 따뜻한 인사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소음으로.
지난 오월의 어느 날, 퇴근 후 향한 안양사 주차장. 시계바늘이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등산을 시작하여 데크에 오르자 안양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아이들 어릴적 함께 걸었던 경인교대의 추억이, 서울과 과천을 오가며 바라보던 제2경인고속도로의 풍경이 마치 오래된 사진첩처럼 눈앞에 펼쳐졌죠. 차량의 소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지만, 그것마저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아래 데크에는 오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 백패커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백패커의 여유로운 몸짓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었죠. 점심에 먹지 못했던 샐러드를 꺼내어 맥주 한 캔과 함께 입에 넣는 순간, 하늘에서 첫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서둘러 텐트 안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빗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가장 원시적인 자장가죠.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도, 유튜브 화면을 바라보는 눈에도 그 소리가 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정이 넘어서면서 거센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새벽 두 시까지 잠과 깨어남의 경계를 오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 아래 데크에서 들려오는 고스톱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들었습니다. 아마도 빗소리가 모든 것을 감춰줄 것이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간헐적인 돌풍소리 속에서 사람의 소음은 더욱 또렷하게 귀를 파고들었죠.
그래도 이 정도는 자연 속에서 만나는 작은 해프닝이라 여겼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어서였을까. 아랫 데크에서 민망한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기운을 받으러 온 이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삼성산에서 무당굿 소리나 새벽 등산객들의 박수 소리에 대한 이야기들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일출은 거의 포기하고 내가 행동하지 않았는데, 부끄럽고 불쾌하고 죄지은 마음을 안고 해가 뜨는 동시에 서둘러 패킹을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기억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다시 그곳을 찾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진정한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를, 그래서 자연이 건네는 순수한 선물을 온전히 받을 수 있기를 다시 한번 바래 봅니다.
굳이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시간이 이렇게 지난 상황에서 왜 후기까지 남기나 하실거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작은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아쉬움, 그것은 단순히 불쾌했던 기억 때문만은 아니죠.
자연 앞에서 우리는 모두 작은 존재가 됩니다. 그 겸손함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백패킹의 묵시적인 예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작은 원칙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죠. 마치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파문처럼, 그 소음들은 자연과 제 마음의 평온을 깨뜨렸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실까. 혹은 자연 속에서의 예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될까. 그런 작은 바람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연 속에서 조금 더 사려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여전히 삼성산의 그 풍경은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이,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죠. 언젠가는 다시 그곳을 찾아, 설령 빗소리와 돌풍소리가 맞아주더라도 그 속에서 자연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받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입니다.
리벤지 삼성산 해야될텐데... 좋은 분들과 같이 가서 데크를 가득 채우면 되려나요? ㅎㅎ
다행히 이틀뒤 너무 좋은 기억을 남겼던 민둥산 산행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잘못한걸 자연으로 위로받은 뭐 그런격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