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연락이 온다. 사업을 할 예정인데 이런 저러한 아이템이 있다. 너는 이미 사업을 하고 있으니 내 아이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이 이야기 하자고.
얼마전에 만난 A는 50살에는 뭐 먹고살지 고민이 많은 40대였다. 대기업을 다니고 있으나 앞으로 임원까지 승진하기 어려우니 먹고살 거리를 찾고 있다. 근데 치킨집은 차리기 싫고, 마침 괜찮은 아이템이 있어 준비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아이템이 가능성이 있는지를 물었다.
A의 아이템은 '제 2외국어 전문 어학 사이트'였다. 요즘 영어, 중국어하는 아이들은 너무 많아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고 또 취업 시장이 만만치 않으니 앞으로 제2외국어가 부상할 것 같다고 했다..그중에서도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등 동남아시아 언어를 타겟으로 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배우려고 하니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며. 제2외국어에 특화된 문정아 중국어학원, 시원스쿨로 이해를 하된다고 했다. 이야기를 쭈욱 듣고 물었다. 아이템의 시장성은 당사자가 더 많이 조사를 했을 터이니 시장성 보다는 실현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같이 할 사람은 구했어요?'
4개 국어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어학 콘텐츠를 구상하고, 자기는 서비스 운영과 자금을 담당할 예정이라 했다. 또 어학 사이트를 이미 구축해 본 개발자와 미팅까지 마친 상태였다. 초반에는 사무실를 구하지 않고 최소한의 자금으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2억 정도가 소요될것 같다 했다. 초반에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것 같다는 고민까지 진지하게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지한 로드맵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지만 그 동안 내가 겪은 고생을 피했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팀 구성
4개 국어를 하는 친구는 어학 콘텐츠를 맡는다고 하나 아쉽게도 사업의 핵심인 제2외국어를 할 줄 몰랐다. 즉, 팀에 핵심역량이 없었다. 지금 아이템은 실현이 불가능했다. 어학 강의를 만들 수 있는 핵심 인력을 수급할 것을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또 대표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자금력'이니 절대로 자금이 매마르지 않도록 해달라 했다. '제일 나쁜 대표는 법을 어긴 대표가 아니라 직원 월급을 안 준 대표'라는 재미없는 농담과 함께
#아이템
팀에 핵심역량이 없으니 아이템에 대해서도 다시끔 고려했으면 했다.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행위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피봇)가 있을 정도로 아이템 변경은 쉽게 일어난다. 나 역시 3번째 창업 회사를 다니고 있고, 그 동안의 아이템이 모두 훌륭했으나 지난 회사는 모두 문을 닫았다. 아이템만으로 사업의 성공을 바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너무 작았거나, 시장이 무르익기 전에 시작했거나, 잘되기 전에 회사 자금이 매말랐거나, 수익 모델이 약했거나, 경쟁자가 너무 강력했거나, 갑작스레 대기업이 시장에 들어왔거나 등등
지금 아이템이 나쁘다, 좋다 차원이 아니라 내가 가진, 우리 팀이 가진 역량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하는 것이 보다 성공확률이 높을것 같다 이야기했다.
#시장성
2억을 써서 강의도 모두 구성하고 사이트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아무도 강의를 듣지 않거나, 충분한 수강생이 없다면?
우리는 자원(사람, 시간, 돈 등)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가능성'이 있는지를 충분히 검토해야 망하더라도(?) 타격이 적다. 때문에 이 사업이 될 사업인지 아닌지를 미리 테스트 해 보아야 한다. 제2외국어 동호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든지, 유튜브에 무료 강의를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라든지, 사업을 시작할지 말지를 판단할 '지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어려운 때가 와서 '왜 이 사업을 시작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올 수 있으니 반드시 시작 전에 사업성을 검토하라는 조언을 했다. 내가 곁에서 지켜본 대표님들은 회사가 어려울때 비슷한 고민을 했다.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다. 뚜껑을 열기까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하라고 하기에는 A는 잃을 것이 너무도 많았다. 어차피 앞으로 사업을 할 생각이면 시장성, 팀, 아이템에 대해 진중하니 생각을 했으면 한다고. A는 사업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겠다 했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몇년전까지는 긍정의 아이콘이었는데, 더 이상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나는 이미 상처투성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도 너무 입이 썼다. 마치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 또는 처음 창업 세계에 발을 디디는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얻기까지는 그 동안의 기회비용이 큰 것 같고, 아직도 이렇다하게 가진 것이 없었기에. 또 나도 잘 모르면서 감히 조언을 할 자격이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어렵고 힘든 경험도 함께 나누기 충분히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내 경험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언젠간 내가 걸어가는 길에 해뜰날이 올거라며 시작한 '창업 일지'를 쓴지 언 2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배울 것이 많은 애송이다. 앞으로 몇년을 더 써야 어둠 속 촛불같이 희망적인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돌아가기에는 제법 멀리 왔으니 나는 어쩔수 없이(?!) 가되,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비판적으로 조언할 예정이다. 달콤한 과실을 누리기에는 여긴 너무도 춥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