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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폴 Aug 11. 2020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혼자의 공간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3)

보이지 않는 적이 침범한 집을 벗어나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1963년 발표된 단편집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 단편은 레싱이 마흔 즈음, 그러니까 두 번의 이혼 후에 발표했지만, 실제 그녀의 삶에서 결혼과 육아로부터 받은 단상이 나타나 있어요. 소설 속 수전 롤링스는 결혼 전 한때 잘 나가던 광고업계에서 일했지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완벽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에서 낯선 적의 모습을 발견하고, 철저한 자기만의 공간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집 안에서 찾은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엄마에게 주어진 집 맨꼭대기 방은 결국 또 다른 가족실이 되어버립니다. 



수전의 내면에서는 이름 모를 짜증과 분노가 울부짖죠. 수전의 적이 된 악마는 남자의 형상을 하고 정원 벤치 위에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수전은 공포를 느낍니다. 그 공포가 수전의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차지할 까 봐 공포를 느끼는 겁니다. 수전은 어디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을 꿈꿉니다. 호텔방에서 그녀는 혼자일 수 있었고, 그녀를 짓누르는 압박이 조금 사라집니다. 혼자만의 방을 원하는 그녀에게 미혼의 호텔 매니저가 호기심을 보이자, 수전은 몸이 아파서 그런다고 거짓말을 꾸며내며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제 삶이 곧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아요. 원한다면 제 삶을 가져가세요. 철저히 혼자이면 좋겠어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

 

 수전은 주위에서 만들어 준 역할에 맞추어 열심히 그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쁩니다. 결국 진정한 그녀 자신되기를 추구하지만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탈출구를 찾습니다. 수전은 반복해서 싸움, 분노, 화, 비난을 억누르면서 지성의 힘이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요. 아무 문제가 없다. 질서 있게 잘 돌아간다. 모두 건조하고 무미한 삶을 살지만 그게 뭐 문제가 되겠어. 내 내면의 폭풍과 모래구멍 따위 내가 잘 아니까 나는 괜찮아. 아이 넷을 낳고 키우면서 12년간 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지만, 쉰이 되면 나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를 꽃피울 거야. 다시 내가 되는 방법을 찾을 거야. 나는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을 거야. 내 지성의 힘으로 극복할 거야. 남편도 그랬잖아. 그리고 위로해줬잖아. 내 시간이 있을 거라고. 맨 꼭대기 방에 내 방도 만들어줬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벌서 틈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토록 열심히 해 온 자신의 역할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은 부조리합니다. 남편과의 관계, 네 아이와의 관계, 가정부와의 관계, 관계 속에서 소통이 부재하고, 특히 남편은 좋은 남편이지만, 계속해서 수전의 역할을 규정해 줍니다. 부엌에서 케이크 만들기. 요리하기. 아이 챙기기. 바느질하기. 그 속에서 수전은 끊임없이 외롭습니다. 수전은 자기만의 공간을 원했고, 그 공간을 사기 위해 남편으로부터 얼마간의 돈을 받았죠. 결국 그 돈의 사용처를 찾던 과정에서 수전의 비밀공간을 남편이 알게 되고, 수전은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수전은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 필요하지 않은 공간,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하는 자유로운 공간을 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수전은 집 속의 다락방에서 여행지로 다시 낡은 호텔의 19호실로 공간을 옮겨보지만 혼자만의 공간에 머문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이 소설의 결말은 직접 꼭 확인해 보시기 바라요.



서구사회는 전통적으로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입니다. 소설 첫 부분에서 작가는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쓰고 있습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이 붙잡혔다”라고 덧붙이고요. 런던 교외의 멋진 주택, 완벽하게 잘 자라는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집안일을 돌봐 주는 파크스 부인까지. 합리적 이성에 근거하여 너무나 완벽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합리적 이성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수전이 가진 집, 아이, 남편은 행복의 모습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상태이고, 아마 수전의 이성 속에도 이런 모습이 가장 베스트라고 내장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속박, 짜증, 분노 이런 단어는 지성으로 억누르려고 합니다. 이렇게 잘 갖춰진 가정의 모습은 수전이 지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모습이었겠죠. 하지만 수전이 믿은 합리적 지성은 학습되거나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사회적 합리성일 뿐 수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도리스 레싱 자신의 통찰과도 일치합니다. “어머니 세대는 아이를 낳으면서 삶이 정지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대부분 신경증에 걸리기도 하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제 일어나는 일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전이 자신의 가정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은 합리적 시각에서 보면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수전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마음의 적은 비이성적임을 알고 있으므로 남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전이 존중하고 좋아하는 자아가 실제의 결혼 생활에서 균열을 감지하고, 불안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죠. 결혼 전 광고회사에서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수전도 사회 전체의 합리적 관점을 자신의 지성이라고 믿었고, 남편도 같은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고, 남편에게는 문제가 없는 합리성이, 수전에게는 균열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완벽함 속에 꽉 묶인 삶. 그 속에 틈이 벌어지니까 불안이 다가온 것입니다.



수전이 가진 합리적인 이성과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은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의 천사와 비슷합니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했던 1930년대부터 1900년까지가 빅토리아 시대입니다. 이 시기 중산층 가정의 아내를 ‘집안의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집안의 천사? 어떤 의미인지 바로 느낌 오시죠? 진정한 아내의 힘은 가정을 신성한 곳으로 만든다! 여성은 집에서 자녀와 집을 돌보며 바깥일에는 순진해야 하는 천사 같은 존재가 그 당시 현모양처의 모습이었던 거죠. 어찌나 이 이미지가 강했던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도 물론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이 가정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고 다소 과격하게 주장했을 정도입니다. 영국 사회에서 이어져 내려온 가정의 천사로서의 아내의 이미지가 수전의 마음속 어딘가 붙박여 있었을 것이고, 그 이미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을 듯합니다.



레싱이 이 소설을 썼던 영국 사회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자아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카뮈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영향을 받기도 했어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람들은 모든 혁명이 폭력적인 것으로 끝나는 모습에 절망했지요. 그래서 전후 젊은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중 여성과 관련하여 순종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사회적 흐름이 19호실로 가다에 반영될 수도 있었겠다 생각됩니다. 



어딘가 중요한 느낌인데 확 와 닿지 않았던 말, 너의 세계.

 

당신은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나요? 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 미혼인 선배 언니가 저에게 묻더군요. “결혼하면 너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니?”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나의 세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자아정체성에 관한 그 질문은 당시 아득한 신기루처럼 들렸습니다. 주위 친구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도 있습니다. 하루 세 끼 차리는 것이 너무 힘들다, 아이들 방학이면 사라지고 싶다, 땅 속으로 꺼지고 싶다고요. 그래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친구도 있습니다. 비행기는 타지 않더라도 넓은 공항에서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거죠. 모두 혼자만의 공간을 간절히 바라거나 실제로 오롯이 자기만의 공간을 위해 가끔 떠나는 거죠.



얼마 전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는 책의 한 구절이 뒤통수를 치듯 강렬하게 와 닿았어요. "결혼은 개성화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대본-가정의 천사, 사랑의 결실, 신성한 모성애, 성공적인 육아, 나의 일-에 충실하여 결혼을 하였지만, 애정관계가 분노로 오염되면서 우울, 의미 상실, 외도, 이혼의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결혼은 각자의 개성화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 개성화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자신의 발전과 성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규정한 역할에 묶여 정체되지 않고,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아가는 거죠.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래오래 걸어가야 할 거예요.



덧붙여 책을 읽고 난 후 자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주위 친구들에게 여러 번 물어보았습니다. ‘수전이 왜 19호실로 갔는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 한 친구는 불교 사상에 근거하여 “고정된 나란 없는 거야. 지금 현재에 충실하면 돼.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가 찾는 곳은 없을지도 몰라.” 하고 답해줬어요. 또 한 친구는 “그 마음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완벽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 거야.” 



마지막으로 한 선배 언니는 우리 모두 이런 마음일 것 같다면서 다음 인용문을 보내주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 가든 있을 곳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가고 싶다. … 우리에게 있을 곳이란 없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그 문제를 잊고 있을 뿐이든지,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누구와 있어도, 있을 곳이 없다. 비록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있어도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바깥세상으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81)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1 편


https://brunch.co.kr/@goghear/2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2편


https://brunch.co.kr/@goghea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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