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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폴 Sep 09. 2020

앵무새를 왜 죽일까?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작은 마을에서



여기 미국 남부의 아주 작은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편견과 차별이 있어요. 그 편견은 정직하고 무해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작은 마을의 어린 여자 아이가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편견과 그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관찰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편견’과 ‘정의’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주제는 무겁지만 소재들이 재미있고, 몇 번의 굵직한 사건들이 소설 읽기를 계속하게 하죠.



어린 화자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퍼 리가 처음 완성한 소설에서는 성인이 된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제의로 지금처럼 어린이 화자로 바꾸었어요.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회에서 쌓은 편견의 그늘이 없고, 남부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의 어린 화자인 스캇 핀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이가 의미를 붙이지 않고 경험하고 관찰하고 들은 이야기들이 모여서 소설의 주제가 만들어집니다.



소설 속 주인공 아이들은 놀 때 장난감이 없어 자기의 상상력에 의지해서 놀 수밖에 없었어요. 어린 시절에도 직접 뭔가를 고안하고 만들어 내서 노는 것이 전부라서 스스로를 즐겁게 해야 하는 해야 하는 작은 마을이었던 거죠. 소설 속에 보면 책 읽고 거기서 읽은 내용을 실제 마당에서 현실화시켜 노는 장면들도 나옵니다. 타잔놀이도 하고, 게티즈버그 전투 등 흉내 내서 노는 아이들 모습은 도시의 아이들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시간이 아주 많았고, 주위를 돌아다니거나 살펴볼 시간이 많아서 아이들이 보는 것은 다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작은 마을이라 이웃집의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이웃집을 특징을 알고 있으므로 모든 것들이 예측 가능한 삶을 사는 마을이죠.



제가 자란 마을은 <앵무새 죽이기>의 메이콤처럼 마을 사람들을 서로서로 알 뿐만 아니라 각 집안의 내력까지도 알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마을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하던 마을 몇 집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것도 저희 집에서 말이죠.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다행히 산꼭대기 묘지 옆에서 무사히 발견되어 일일천하로 끝났죠.



이 사건의 주인공은 저희 집 셋 째였어요. 가족들에게는 늘 조용한 아이로 보였지만, 사실은 조용하게 모험을 꿈꾸고 실천하는 행동가였어요. <15 소년 표류기>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며 모험을 꿈꾸었죠. 배를 만들어 띄워 보려고도 하고, 동네 언덕에 땅을 파고 집을 짓기도 했어요. 이 집은 거지 집으로 오해되어 당장 해체하라는 마을 전체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이 동생이 꾸민 일 중 아직도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너 그때 그랬었지’라며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동생이 초등 6학년 때였어요. 동생은 어느 날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로 친구들과 계획을 짭니다. 그 날은 친구 모두 부모님께 야단을 맞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렇다면 우리도 독립적인 아이들이고 뭔가 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고 머리를 맞댔죠. 우선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에 100 원 모으기를 했어요. 일주일 후 500원이 모였고, 이 돈으로 라면을 사고 비밀 계획을 실천하기로 한 날이 왔습니다. 일명 ‘가출로 우리의 독립심을 증명하자’ 작전이었죠.



마지막으로 동생은 똑같은 내용의 독립선언과 가출을 알리는 편지를 작성하고, 친구들에게 나눠주어 각자의 집에 남겨두고 오라고 조언도 해주었어요. 드디어 작전 수행의 날이 되었고, 둘째 언니와 마루에서 밥을 먹고 계시던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 작은 냄비와 수저를 챙겨 윗 옷 속으로 넣었어요. “ 또 뭐하노?” 엄마가 소리를 치시자 깜짝 놀라 냅다 대문으로 뛰었는데 뱃속에서는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요. 그 소리를 듣고 따라온 당시 중 3 동생도 그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의 목적지는 동네의 뒷산이었답니다. 뒷산이라지만 꼭대기까지는 한 시간 이상이 걸리고, 인적도 드물고, 드문드문 묘지도 있는 그곳은 잠을 자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곳이었죠. 감기약을 먹고 있던 친구는 보온병을 챙기고, 가장 나이 많은 동생은 산꼭대기라지만 숙제는 마무리하려고 가정 중학 문제집과 라디오를 챙겨 길을 떠났죠. 페트병이 없던 시절이라 산 길을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냄비에 담은 물은 찰랑찰랑 한 방울씩 머리 위로 흘러내렸습니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물은 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의 밝은 면을 볼 줄 알았던 동생은 실망하는 친구들을 다독이며 얼마 남지 않은 물로 라면을 끓여 먹고, 끙끙 거리며 해 본 적 없는 3인용 텐트를 쳤습니다.



산 꼭대기에서 해는 빨리 저물고, 저녁도 먹은 데다 먼 산 길을 걸어 올라오느라 다섯 소녀들은 좁은 텐트 속에 다리를 접고 일렬로 나란히 누웠답니다. 이름 모를 산 짐승 소리. 벌레 소리가 들리고 겁먹은 목소리로 우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한번 더 독립 선언 실행의 굳은 마음을 다독이며 스르르 잠이 들었답니다. 잠결에 발이 텐트 밖으로 나가 이슬 젖은 축축한 땅기운에 닿자 흠칫 놀라 잠이 깼답니다. 멀리서 어렴풋하게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동생은 한 번 더 자신의 굳은 결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 곤히 자고 있는 친구들을 깨우지 않았어요. 그 산꼭대기 깜깜한 밤 중에 소녀들은 곤하게 잠을 잘 자고 있었고요.



펄럭! 갑자기 누군가 텐트를 들어 올렸고, 동생의 독립 선언 계획은 막을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없어지자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 전설 속에 저는 딱 한번 등장합니다. 당시 고1이었던 저의 역할은 제 책상 위에 놓인 동생의 편지를 발견하고 부모님께 알리는 역할이었죠. 제 책상 위에 올려진 편지 내용이 급히 부모님께 공개되고, 아이들이 산길로 올라가는 걸 봤다는 제보가 이어졌고 부모님들은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산을 헤매신 거죠.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다음날 동생들에게는 외출금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용감하고 창의적인 동생은 외출금지 명령이 내려진 삼엄한 분위기를 뚫고 몰래 집을 나가 친구들과 만났고, 남은 먹거리와 독립 출자금을 공평하게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동생의 치밀하고 원대했던 독립의 꿈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동생은 조용히 다음 꿈을 꾸었을 거예요.






             왜 앵무새를 죽일까?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꼭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옆 집에 사는 부 래들리 이야기와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 톰 로빈슨의 이야기가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당시 6살에서 9살로 성장 중에 있는 스캇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국 남부의 작은 읍 메이콤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이야기들도 읽어 보면 좋습니다. 여기서는 작가 하퍼 리와 소설 속 스캇, 오빠 젬, 친구 딜과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 그리고 옆 집의 외로운 청년 부 래들리, 억울한 흑인 톰 로빈슨 재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은 소설, 60 년간 미국 고교 필독서, 전 세계 4 천 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늘 <앵무새 죽이기>와 함께 하는 수식어입니다.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의 유명세에 비해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고 고향 마을에서 조용히 살았어요. 앵무새 인세 수입이 많았는데 기부도 하고 그랬어요.


하퍼 리의 고향은 미국 깊숙한 남부인 앨라배마 주의 먼로빌이었어요. 그곳에서 성장하던 당시 하퍼 리의 친척, 친구들이 실제로 <앵무새 죽이기> 소설 속에 나옵니다. 딜도 실제, 고모도 실제, 마을 사람도 실제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마을의 모습과 사건을 잘 관찰하고, 그 모습을 소설에 담은 듯합니다. 소설 속 메이콤 마을은 하퍼 리가 10살 즈음 살았던 1936년의 먼로빌이 모델이 된 거죠. 그리고 하퍼 리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는데, 아버지가 실제 맡았던 흑인 사건도 톰 로빈슨 사건의 원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퍼 리는 어릴 때 소설의 화자인 스캇처럼 선머슴이었고, 학습능력은 뛰어나지만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의 딜은 실제 트루먼 카포티가 원형이예요. 트루먼 카포티는 실제로 어린 시절 부모님 이혼으로 하퍼 리 마을에서 생활하곤 했다고 합니다. 하퍼 리의 아버지가 선물한 타자기로 소설의 써서 당대 뉴욕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트루먼 카포티가 누구냐면 오드리 헵번 주연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쓴 소설가입니다. 보잘것없는 출생이었고, 우울했던 유년기를 보냈지만 재능을 발판 삼아 극적 성공을 이룬 소설가였죠. 60년대 책을 팔아 백만장자가 된 대중 스타 작가였거든요. 인생 후반부는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행복하진 못했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스캇과 젬과 딜의 시선으로 보는 마을 모습이 있어 소설이 더 풍부해지거든요. 딜이 맡고 있는 역할도 비중이 있으니까 하퍼 리 이야기할 때는 같이 언급된답니다. 한때 영혼의 친구였거든요.


하퍼 리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해서 영국 옥스퍼드 대로 교환학생도 다녀왔고요. 그런데 전공은 법률이었어요.  법대를 다니면서 글쓰기가 주춤해졌을 거예요. 그러다 전공에 흥미를 잃고 뉴욕으로 가서 항공사 티켓 판매원 일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 쓰기를 좋아해서 한번 시작하면 거의 움직이지 않고, 계속 썼다고 합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쓰는 타입이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쓰기 시작하면 나가지 않고 몇 날이라도 쓰고, 종이를 사거나 잠깐 먹으러 나가는 시간 외에는 계속 쓴다고 밝힌 적도 있어요.


<앵무새 죽이기>의 제목이 인상적이죠.  이 앵무새는 소설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답니다. 우선 앵무새는 말하는 그 앵무새가 아니고 미국 남부 지역에 흔한 지빠귀새의 일종이에요.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될 당시 <앵무새 죽이기>로 소개되고, 그 제목이 친숙해서 바꿀 수 없어서 계속 이 제목으로 출간되고 있을 거예요. 이 새는 인간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노래할 뿐 인간들의 창고에 둥지를 짓거나 곡식을 쪼아 먹거나 하는 해를 끼치지 않고 즐거운 노래만 들려주는 해를 주지 않는 새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새를 죽이는 건 죄라는 의미입니다.


소설의 중심 주제는 미국 남부 사회의 흑인에 대한 차별입니다. 차별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오랜 편견에서 비롯됩니다. 흑인은 부도덕하다, 흑인은 백인과는 다르다, 흑인은 위험하다. 이 편견은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팔려 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의 노예였던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자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미국 남부에서는 그 후로도 흑인과 백인의 분리정책법을 통해 흑인 차별은 지속되었습니다. 이 오랜 차별과 백인 마음속에 자리 잡은 편견이 <앵무새 죽이기>에서 전개되는 것입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실제 미국에서는 흑인 시민권 운동이 절정에 이르러 열매를 맺으려던 때입니다. 이 시기의 흑인 시민권 운동의 흐름과 미국 전체가 겪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을 살펴보면 소설 속 미국 남부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소설 속에 흑인 사건 재판의 터무니없음에 대해서도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모디 아줌마는 스캇과 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읍내에는 공정한 게임이란 백인들에게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 공정한 재판은 우리 백인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몇몇의 움직임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루고 그 물결이 흑인의 시민권 획득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려는 그때 <앵무새 죽이기>가 출간된 거죠.


1954년 미국 대법원은 흑백 분리 교육은 위헌이며, 분리 교육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오랫동안 뿌리 박힌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분리 교육이 헌법에 위배됨을 밝힌 판결이며 미국 전역에 영향을 줍니다. 사건은 1951년 린다라는 흑인 여자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 올리버는 8살인 딸을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하도록 시키려고 했어요. 하지만 학교 측은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합니다. 그 학교에는 백인만 다니고 있었거든요. 올리버는 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어요.


그리고 1955년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시작한 버스 승차 거부 투쟁이 남부 전역으로 점점 퍼져갔어요. 1960년에 <앵무새 죽이기> 소설이 출간되었고, 1963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 연설을 합니다. 이런 실제 역사적인 흐름은 <앵무새 죽이기>에 나타나 있는 흑인에 대한 견고한 편견에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이 소설이 사회적 흐름을 바꾼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변화가 실제 남부 사회에 반영이 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하퍼 리가 담았을 겁니다.


소설의 실제 시간적인 배경은 1930년대 미국 남부입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백인 중산층의 일자리 부족으로 전통적으로 흑인이 가졌던 일자리까지 백인이 하려고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흑인들은 목화밭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흑인과의 갈등 심화되고 있었죠. 소설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버밍햄에서는 연좌농성 파업, 식량 배급을 타려는 줄이 점점 길어졌으며, 시골 사람들은 점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못살게 되었다”는 부분이 나오거든요.


소설의 구조를 살펴보려면 소설의 첫 문장을 보아야 합니다. 첫 문장은 “젬 오빠의 팔이 심하게 부러진 것은 오빠가 열세 살이 다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결과예요. 이 부분이 가장 처음에 제시되고, 이어서 마지막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까지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사이사이에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다루면 좋을 부분이 많지만, 편견과 차별과 공정함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할게요.


이 소설은 공간 자체가 편견과 배척이라는 주제와 연결됩니다. 우선 소설의 중심인 메이콤은 앨라배마 주의 깊숙한 외딴곳에 있습니다. 자연스레 외지인의 왕래가 많지 않았죠. “메이콤은 백 년이 지나도록 옛날 규모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동성동본끼리 결혼한 이 지역 사람들은 어렴풋하게나마 서로 닮아보였습니다”. 메이콤은 새로운 사상이 전달되는 속도가 느리고, 외부의 가치관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죠. 한번 형성된 집단의 가치관은 오랜 시간 동안 끈끈하게 마을 사람들의 내부에 자리합니다.


고립된 공간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구성원의 고립과 외로움과 소통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부 래들리는 지난 15년 동안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이죠. 그의 집은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래들리 집은 일요일에도 평일에도 굳게 닫혀 있어요. 그 집 자체와 집의 닫힌 문은 래들리의 외로움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소설 처음 부분에 아이들이 부 래들리에 호기심을 보이며, 계속 부 래들리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마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거였어요. 부 래들리는 만날 수도 없고, 말을 들을 수도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서 그가 보여 주는 호의는 따뜻합니다. 부 래들리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몰래 몇 개의 선물과 도움을 주는 인물로 나옵니다. 래들리 집 마당의 떡갈나무 두 그루 옹이구멍에 든 선물인 인디언 얼굴을 새긴 동전, 껌, 비누로 깎은 인형, 녹슨 메달, 고장 난 시계와 시곗줄이 부 래들리와 연관이 있습니다.


부 래들리는  외롭지만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있어요. 그중에 아이들이 부 래들리가 너무 궁금해서 급기야 밤에 래들리 집을 몰래 들어가는 장면이 있어요. 이때 부의 형이 아이들을 흑인으로 오해해 공포탄을 쏩니다. 아이들이 혼비백산해서 뛰어오다 스캇 오빠의 청바지가 울타리 철사에 걸립니다. 급하니까 벗어 두었다가 바지를 가져와야 해서 다시 가보니 청바지는 마치 찾으러 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서툴게 꿰매 져서 곱게 개켜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부 래들리가 아이들에게 주는 큰 선물 부분은 소설을 극적으로 만듭니다. 이 큰 선물이 무엇인지도 찾아보면서, 부 래들리 부분은 놓치지 않고 읽으면 좋습니다.


흑인 마을은 더 고립된 곳에 위치합니다. 흑인 거주지역은 읍내 남쪽 경계 밖에 위치합니다. 흑인은 백인의 마을을 지나거나 백인의 집에서 일하는 매 순간마다 차별과 편견과 모욕을 온몸으로 느꼈을 겁니다 미국 남부 지역은 흑백 분리 정책에 의해 오랫동안 공적인 생활 속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가 법에 의해 고착화되어 있었거든요. 흑인 교회 이름은 퍼스트 퍼처스 교회였는데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처음 번 돈으로 구입했기 때문 이었어요. 일요일에는 흑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평일에는 백인들이 노름하는 장소로 쓰였어요. 소설의 법정 장면에서도 흑인들은 모두 2층 좌석에 앉습니다.


스캇이 이렇게 분리된 흑인들의 동네와 삶을 엿볼 수 있는 통로는 핀치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는 캘퍼니아 아줌마입니다. 스캇은 캘퍼니아 아줌마를 통해 흑인 사회를 경험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스캇은 점차 캘퍼니아 아줌아의 친구가 되고 싶었고, 아줌마가 어떻게 사는가, 아줌마의 친구는 누구인가 알고 싶었죠. 하지만 백인 여자 아이가 흑인 마을을 방문하는 일은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었죠. 마치 ‘달의 반대편’을 보는 것처럼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도 캘퍼니아 아줌마를 통해 흑인 교회도 가보고 아줌마의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습니다.








    그 사람 신발을 신고 걸어 보기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스캇의 아버지이면서 톰 로빈슨의 변론을 맡는 변호사입니다.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애티커스 핀치는 백인 변호사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흑인에 대한 생각이 흑인의 무죄를 유죄로 인정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님을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걸어 보며’ 상대방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실천하는 인물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심지어 그를 비난하는 이웃에 대해 애티커스 핀치가 보여주는 태도는  인상 깊습니다. 애티커스 핀치가 하는 말들은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대해 능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그 아저씨는 바탕이 좋은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뿐이었지.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남부의 작은 읍내마다 폭도들은 하나같이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톰 로빈슨 사건을 맡게 되어 애티커스와 아이들은 마을에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법원은 톰 로빈슨을 변호하도록 애티커스 핀치를 임명합니다. 애티커스는 그동안 흑인을 변론해 온 변호사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애티커스는 흑인 톰 로빈슨을 진심으로 변호할 작정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애티커스가 흑인을 변호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 사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애티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톰 로빈슨 사건 말이다. 아주 중요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읍내에서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야.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품위를 지닌 사람입니다. 애티커스는 불가능하리라 예상하면서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래서 때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애티커스가 마지막 변론에서 강조하는 말은 편견에 갇힌 백인들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강력합니다. 애티커스는 최종변론에서 백인은 흑인에 대해 사실이 아닌 가정을 오랫동안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백인 여성 주위에 흑인이 있으면 위험하고, 흑인은 원래 부도덕하다는 가정을 한다고 일침을 가하는 장면은 법정에 앉은 모든 백인의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그래서 평상시 흑인 재판과는 달리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애티커스의 변론이 백인 배심원들에게 영향을 준 거죠. 이 애티커스의 변론은 과연 톰 로빈슨에 대한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부 래들리와 재판 장면 외에도 꼭 읽어보면 좋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다음 부분도 어떻게 그려지는지 꼭 찾아보시기 바라요. 스캇이 학교에 간 첫날 만난 21살의 캐럴라인 선생님 이야기 부분은 그 시절 메이콤 마을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 수 있어요. 스캇이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뒷집에 사는 듀보스 할머니 이야기. 너무 가난해서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다녀서 십이지장충에 걸린 월터 커닝햄 이야기. 학교에서도 가장 지저분한 유얼 집안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핼러윈 행사가 끝나고 스캇과 젬에게 일어난 사건 부분은 꼭 읽어 보시 길 추천합니다. 그래야 소설의 주제가 완성되거든요.


작가가 <앵무새 죽이기>에서 전달하려는 가장 큰 주제는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말은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라고 할 수 있어요. 흑인 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여러 모양의 편견들이 들어 있을 겁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그저 오래전부터 사실처럼 굳어진 것들이죠. 소설 중에 애티커스는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면 사실만 남게 된다’ 말을 합니다. 진실과 사실만 남겨 두고 사고하기란 무척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편견이나 왜곡된 사실로 인하여 무해한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끝으로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우연히 보게 된 신문기사를 공유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2020년 8월 29일 백인 여성 강간 누명을 쓰고 44년 복역한 미국 흑인 남성 로니 롱이 출소했다는 기사였어요. 이 남성은 1976년 당시 백인 여성을 강간하고 강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종신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재판의 배심원은 모두 백인이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의도적으로 숨긴 사실이 밝혀지면서 누명이 벗어졌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우리 안의 편견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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