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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olife May 11. 2020

딩크 할까 말까

애 가질까 말까 

나는 원래 아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은 안 해도 애는 갖고 싶다던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는 아기를 가질까 설레기도 했다. 고민을 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귀여운 아기를 갖고 싶단 생각에 설레는 마음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앞 뒤 재지 않았던 게, 우린 그때 미국에서 영주권도 받기 전이었고 집도 불안정해서 어쩔 땐 단기 룸메이트 생활을 하기도 했던 때이다. 둘이 적지 않은 돈을 모으고 있을 때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불안정하다기보다는 영주권 조차 없이 (신분에서부터) 안정적이지 않았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애를 가질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젊은이의 무모한 도전 같은 거였을까. 아니면 모르고 하니 할 수 있는 그런 거였을까. 


그냥 우린 들뜬 마음인지 무엇인지 (아니, 아무것도 모르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아기를 갖기로 결정했고 바로 다음 달에 임신테스트기에 희미한 두줄을 보았다. 하지만 곧 다시 생리가 시작되어 그 유명한 '화유'를 겪게 되었다. 화유란 화학적 유산이라는 뜻인데,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했으나 착상에 실패한 경우, 즉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임신테스트기 두 줄만 보면 그냥 임신이고, 아기를 낳는 줄만 알았던 무지한 나는 그 유명한 '화학적 유산'의 줄임말인 '화유'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놀란 것은 이 일을 겪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오히려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봤을 때, 우리의 감정은 기쁨보다는 부담과 걱정이 조금 더 앞선 게 사실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3년간 피임했다.


아기를 갖는 것을 가볍게 결정하고 큰 코 다쳤던 경험을 한 뒤, 집도 스튜디오에서 장기 렌트를 하다가 원베드 큰 집으로 이사를 갔고, 이직도 해서 더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우리의 생활은 점차 안정이 되어갔다. 그리고 곧 영주권도 받았다. 영주권을 받은 뒤에는 남편의 이직을 계획했고, 또 미국에서 결혼한 지 2년 만에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올렸고, 우리는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주도 했고, 집도 샀다. 


사실 텍사스로 이주를 온 뒤에는 오히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 안 좋아졌다. 이주를 하면서 감기에 심하게 걸린 나는 점점 더 아팠고, 알레르기인지 뭔지 모를 증상과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면서 취직 자체를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2월 말 즈음에 이주를 왔는데 그 해는 정말 꼼짝없이 아프기만 했다. 계획에 없던 외벌이를 하게 되니 당연히 우리의 경제 상황은 그 전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불안하지 않았다. 물론 남편의 월급만으로 우리 둘이 살기엔 충분했고, 건강 보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내가 아픈 것은 사실 큰 병이 아닌 부비동염이었다.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주하기 한 달 쯔음 전에 내가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이사에 관련된 전 과정을 준비했다. 남편도 잠깐 휴가를 써서 텍사스에서 5일 정도 머물며 집을 구했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뒤에 이사를 했다. 뉴욕 안에서 이사를 하는 것도 알아볼 게 많은 이민 1세대. 그런데다가 이주는 이민 같은 일이었기에, 그 일을 모두 겪은 뒤 나는 작은 병이었지만 이 병으로부터 신경통까지 경험하면서... 3년 동안 겪은 이민 과정의 후폭풍을 겪는 것 같았다. 3달 전에 올린 한국에서의 결혼식도 한몫했던 것 같다. 이주를 온 뒤 바로 커리어 페어에 나가 취직을 하려 했던 (사실 면접도 몇 개 잡아놨었던) 나는 고통에 발목이 묶여 1년을 꼬박 쉼 아닌 쉼을 하게 되었다. 봄에 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겨울이 되어갔고, 곧 렌트를 연장할 시기였다. 


고통에서 해방된 뒤, 나는 집을 사려고 알아봤다. 둘만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하지만 작지 않은 집으로. 3년 동안 우리가 열심히 모았던 (이 때는 돈이라도 많이 모아놓자는 생각이었다.) 돈과 결혼할 때 부모님께 받았던 돈을 합쳐 집을 사기로. 사실 '집을 사자' 했던 것보다는 집을 사는 과정을 알아보면서 내가 집을 살 수는 있는 건가 확인 해려던 거였다. 마침 이자율이 많이 떨어졌고, 겨울이라 집 매매가 적어져 좋은 딜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누가 내놓은 집도 보고, 새집을 짓는 것도 보고. 엄청난 발품을 팔아 모기지부터 집 사기까지 또 한 번 실행을 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외벌이다. 


집에 방이 2개가 있다. 큰 방에 호텔 침대같이 높은 킹 베드를 사고, 소파도 사고 그림도 그려 걸어놓으니 아주 사치스러운 우리만의 방이 완성되었다. 거실에도 큰 소파를 사고 멋들어진 디자인의 커피 테이블도 놓았다. 작은 방은 서재 겸 손님방으로 꾸밀까 싶은데 아직은 우리가 쓰던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우리는 또 고민한다. 이제 내가 일을 시작하고 딩크족이 될지, 아기를 가질지. 아직 꾸미지 못한,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방이 우리의 고민이 끝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한 지 5년째, 아기를 좋아하던 나는 아기를 봐도 별 감흥이 없다. 그냥 강아지가 너무 귀엽지만 키울 수는 없는 그런 마음이다. 우리는 5년째 딩크를 할지 아기를 가질지 고민 중이다. 미국 회사 생활을 경험해보고 같이 사업을 하자던 우리의 꿈은 아기를 가지면 절대 실현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매년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나고픈 우리는, 아기가 생기면 그런 여행을 꿈도 못 꿀 것 같다. 당연히 한 사람의 먹을, 입을 양이 늘어남으로 1인분의 비용이 더 들 것이다. 우리가 딩크를 고려하는 것은 경제적인 것을 넘어선다. 무언가 자유롭게 하기에는 지금도 힘든데, 아이까지 생기면 그 힘듦이 두배로 되고... 그걸 감당하면서까지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혹시나 그게 아이한테 해가 된다면 그걸 감당하겠냐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기를 갖지 않는다 해서 그렇게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솔직히 둘이 미국 여행뿐 아니라 유럽도 다녀왔고 소소한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다. 결혼 전에 각자 여행 경험도 많아 여행에 대한 미친듯한 욕구가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여러 곳에서 살아보면서 '어디서'보다 '누구와' 사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굳어졌고, 또 우리가 원하는 환경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아기가 있다면 우리는 정말 우리가 꿈꾸는 것을 못할까...? 


나는 이제 유모차를 끄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설레는 감정보다는 현실적인 게 더 와 닿는다. 다만 그 현실.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인 것일 뿐. 아주 두렵고 부정하고만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현실적인 것들을 알게 되어서, 어느 정도 알고 결정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만약 아기를 갖는다면 좀 더 강한 사람으로 우리가 원하는 꿈을 향해 더 잘 해쳐나가고 싶다. 과연 내가, 아니,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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