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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Feb 05. 2024

입회(立會)

2024. 2. 6 서울 장충동

1434년,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는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신부 잔느 드 쉬나느의 약혼식에 입회(會)하였다.

젊은 여인은 그녀의 오른손을 아르놀피니의 왼손 위에 얹었고 아르놀피니는 그들의 결합의 엄숙한 표시로서 그의 오른손을 그녀의 왼손으로 가져갔다.

화가는 물감에 퍽퍽한 계란 반죽 대신 기름을 섞었다. 그는 색깔들이 서로 섞여 들어가는 부드러운 변화를 표현하고 투명한 층, 또는 겉칠(glaze)에 이용할 수 있는 광택 있는 색채를 만들어내었으며 뾰족한 붓으로 반짝이는 하이라이트를 찍어 넣고 경이로운 정확한 묘사를 성취해 내었다.

불침하던 긴긴밤, 내가 가진 물감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노란색 희미한 취침등에 기대어 그림을 그렸다. 잘게 부수어진 흑후추의 진한 향과 질감, 선명한 석류빛 발사믹 펄과 샛노란 색 레몬, 알싸한 고추냉이, 선홍빛 하몬, 와인보다 깊게 물든 버건디 색 백년초 글레이즈에 푹 잠긴 구운 양송이를 그렸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두 손 가득 석화와 새우를 씻어내고 달큰한 향이 나는 겨울 냉이를 올리고 싶었다. 아름답게 선명한 빨강, 노랑, 초록, 보라색을 접시에 담고 싶었다.

친애하는 너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의 짧은 계절, 네가 입회해 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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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란스런 바다
발사믹 펄을 곁들인 석화
(석화, 흑후추 미뇨네뜨, 겨울 냉이, 발사믹 펄, 레몬)


2. 푸르른 이 여름 지나
새우 세비체
(새우, 겨자 잎, 키위, 라임)


3. 눈부시게 빛나던 우리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따
(하몬, 그라 파다노 치즈, 올리브)


4. 그늘을 내어주던 나무야
백년초 글레이즈와 버섯 플란차
(양송이, 톳, 오렌지, 백년초)


와인 : 엘 피카로 2022 (El Pic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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