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는 장사 일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일이 참으로 정직하고 사리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제법 공정한 직업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꾀어내거나, 선동하거나, 부추기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거나, 미래를 장담하거나, 특별히 책임질 일도 없었다. 가상의 숫자에 매달려 소수점 자리 잉여에 기생하는 몇몇 직종들의 오명에서도 자유로웠다. 주인은 원하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고 고객은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평등하고 떳떳한 일인가. 현태는 이렇듯 유감없고 단순한 거래의 균형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이 세계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견고한 기반처럼 느껴졌다.
“장사도 뭐 번듯한 거면 모르겠다. 맨날 방구석에서 꽃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꽃이 어때서요?”
현태는 쌀쌀맞게 내뱉었다. 그러는 당신은 기껏해야 생명보험이나 팔러 다니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싶은 걸 참느라 얼굴이 핼쑥해질 지경이었다. 그녀가 했던 일이란 건 고작해야 “혹시 애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일이 나한테는 안 생길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실제로 주변을 좀 둘러보세요. 끔찍한 일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들은 또 얼마나 약삭빠르고 야무지다구요. 미리미리 준비하고 확실하게 챙겨야죠. 도대체 무슨 대책이라도 있으세요? 어쩜 그렇게 태평해요?” 따위의 불길한 말들을 속삭이며 계약서에 사인을 하도록 사람들을 겁박하는 일이었지 않나. 그래서 결국 그녀 자신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 일도 그만두고 남편과도 이혼한 채 구차하게 말년을 보내고 있는 주제에.
“네 능력에 걸맞은 번듯하고 전망 있는 일을 하란 얘기야."
현태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닌데도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게 뭔데요?"
"네 동생하고 성우를 좀 봐라.”
결국 미숙은 - 늘 그렇듯 기다렸다는 듯이 - 그의 여동생인 현지와 현지의 남편인 성우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각각 경제학과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미숙에게는 ‘능력에 걸맞은 번듯하고 전망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본보기였다. 하지만 현태에게 그들은 고작해야 아무런 상환 능력도 없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경제 체계의 잉여물 혹은 배설물로 보일 뿐이었다.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는 무엇이 가장 이득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속물들 중의 속물, 기생물들이었다. 게다가 학자들이란 천성적으로 오만하고 작위적인 족속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적 사기 운운하는 자아비판마저도 난해한 전문용어에 일부러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섞어 세련미를 더하는 교만처럼 기만적인 기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순결하고 존엄한 순교자라도 되는 냥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마치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보모의 젖을 빨려고 달려드는 아이처럼 징그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미숙이 입씨름 끝에 꼭 만능 무기처럼 현지와 성우를 끄집어낼 때마다 현태는 할 말이 싹둑 막히곤 했다. 설사 그것이 뜬구름 잡는 삶일지라도 멋져 보이는 것만큼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주차장 위로 파란색 하늘이 짙은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가지 각색 피부의 여러 인종들과 친구가 되어, 유창하게 영어로 어울리고 치열하게 토론도 하고, 몇 백 년 된 도서관에 하루 종일 파묻혀 수십 권의 책들을 뒤적이고, 밤을 새워가며 짐작조차 가지 않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게 될 그들과 비교하면 자신은 하릴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만약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보다 가장 지독한 기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일일이 분노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부러움, 부끄러움, 비루함, 막막함, 억울함, 체념, 낙심 등은 돈을 벌고, 물건을 사고, 공과금과 세금을 내고, 핸드폰 문자를 받고, 먹고, 씻고, 싸야만 하는 매일의 수고처럼 감수해야 하는 일종의 삶의 조건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등에 날개가 없음을 화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분노할 것인가.
“그만 하세요. 저 지금 바빠요. 왜 전화하셨어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딴 게 아니라 경숙 아줌마 딸이 이번에 결혼하는데 너한테 부케 좀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 이왕 돈 쓰는 거 친구 아들한테 쓰면 더 좋지 않겠냐면서. 네가 요즘 바쁘다고 거절했는데도 막무가내라 어쩔 수가 없었어. 걔도 웃기는 애야. 그냥 식장에서 주문하면 되는데 굳이 널 들먹일 건 뭐니. 조그만 꽃집이나 한다고 부케 값 정도도 아쉬울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그는 입술 껍질을 자근자근 씹었다. 이미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얘기 같은 건 듣고 있지도 않았다. 빨리 전화를 끊고 그녀의 목소리를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현태도 다른 자식들처럼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점에 대해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금이라도 미숙이 자신의 친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상상할 때도 있었다. 그럼 세상은 비로소 원래의 정결한 질서를 되찾게 되고 그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이치까지 넉넉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알았어요. 신부 쪽하고 상의해 봐야 되니까 저한테 전화 주라고 하세요.”
“괜히 엄마 친구 딸이라고 싸게 해주지 말고 제대로 값 쳐서 받아. 아니 아니, 더 비싸게 받아라. 사람이 원래 봐주면 더 무시하는 법이야.”
“네, 알았어요.”
그는 전화를 끊으며 어금니를 우두둑 갈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자식이 어머니에 대해 그 어떤 생각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리에 앉아 다시 묵묵히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튤립, 메두사, 안개꽃으로 꽃다발 세 개를 더 만들고 나니 시간은 이미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앞치마에 잔뜩 붙어있는 이파리 조각들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며 옆구리가 말할 수 없이 쑤셨다. 손을 씻으려고 따듯한 물에 손을 담그자마자 그는 버럭 신음소리를 내며 열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손등과 손가락이 펄펄 끓는 물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쓰라렸다. 요즘 하루 종일 젖은 꽃을 만지느라 그의 손은 온통 부르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는 커다란 통에 담겨 있는 백색의 핸드크림을 듬뿍 떠내어 손등이며 손가락에 문질러 댔다. 이렇게 부르튼 손을 벅벅 문지르고 있자니 아까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댔던 불평들이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는 아까와는 다른 대답을 하느라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