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입깃해파리, Nemopilena nomurai
우리나라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바다 친구들이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동해는 평균 수온이 낮아 생물종이 많지 않고 그나마 위험한 일이라면 조류에 떠밀려 성게에 찔리는 건데, 강인한 동해 다이버들은 조류 따위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종이 상대적으로 다양한 따뜻한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열대 바다처럼 사납게 쫓아오는 타이탄트리거가 살지도 않고, 그나마 독을 가진 라이언피시는 다가가지 않으면 굳이 와서 공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해 여름, 제주도 다이빙을 하면서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아주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다이빙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무라입깃해파리' 덕분에.
이름도 긴 해파리다. 하지만 뭔가 이름을 알고나서 해파리를 마주치니 저 큰 아이가 노무라입깃해파리 같다. 이상하게도 태초부터 이름이 이렇게 생긴 것 처럼 그런 느낌이 온다. 아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저해파리였구나.
'노무라'는 일본인 노무라 칸이치가 발견해서 '노무라'라는 이름이 붙는다. '입깃'은 해파리의 입에 깃털 같은 것이 있어서 입깃해파리다. 머리 지름이 2m 정도이고 촉수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다. 작은 물고기들이 자포에 쏘이면 마비되어 해파리의 먹이가 된다. 사람이 쏘이면 채찍을 맞은 듯이 아프다고 한다. 나는 두어 번 조우한 적은 있으나 멀리서 바라만 봤기 때문에 해파리를 만난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M다이버는 멀리서 사진을 찍기만 했는데도 입술에 촉수가 닿아 육지에 올라와서도 따끔거려서 몇 시간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처음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봤을 때는 기뻤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큰 생물을 만나는 건 정말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큰 머리통과 분홍빛 몸짓의 하늘거림이라니. 거대한 몸뚱이가 유유히 움직이는 모습이 마음을 울렁가리게 했다. 이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모양에 눈을 뗄 수 없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길게 난 수천 개의 촉수를 보자 절대 스치면 안 되겠다는 무서운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왜 저 모양이 무서울까? 공포로 각인된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다. 저 모양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어디였는지 과거로부터 기억을 되살렸다.
내 나이 7살, 금성텔레비전에서.
난 이 해파리가 하늘에 떠 있는 걸 봤다.
그렇다.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에 하늘에 떠 있는 대형해파리가 등장했다.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을 하는 중요한 괴물로 이름은 크라켄이다. 후뢰시맨이 악당을 힘들게 처리하면 갑자기 징그러운 크라켄이 나타나 금방 쓰러트린 악당을 커다랗게 키운 후에 사라진다. 그러면 후뢰시맨들이 커다래진 적에게 공격을 당하여 잠시 밀리다가 마침내 다섯 명이 힘을 합하여 쓰러트리는 설정이다. 애초에 다섯 명이 무기를 합쳐서 크라켄도 적도 물리치면 그만인데 매번 같은 고생을 한다. 어쨌든, 저 친구 이름이 크라켄인 건 무서운 바다괴물을 상징하려고 쓴 것 같은데 사실 전설 속의 크라켄은 해파리가 아니라 대왕오징어다.
대왕오징어는 12m~18m 길이의 눈의 지름만 30cm 정도인 심해(300~1000m)에 사는 오징어이다. 인간이 살아 있는 대왕오징어를 직접 만나 촬영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잠수정을 만드는 기술과 오징어를 유인하는 방법을 고안하면서 수심 2500미터에서 잠수정을 스쳐 지나간 대왕오징어의 몸통을 찍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보통 아래의 사진처럼 죽어서 육지로 떠밀려서 발견되거나, 향유고래의 배 속을 해부해서 그 존재를 알 수 있는데, 다리 6m짜리가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과학자들이 전체 크기를 추정한 적도 있다. 대왕오징어 맛은 기대 이하란다. 어마어마한 수압을 견디기 위해 존재하는 염화암모늄이 썩은 내를 낸다고.
예전에 영화관 앞에서 팔던 길다랗고 통통한 문어다리는 문어가 아니라 오징어다리다. 문어는 꽤 비싸고 그렇게 큰 아이가 없다. 시장에서는 가문어라고하며, 홈볼트오징어(2m)가 원래 이름이다.
노무라입깃해파리도 식용을 하기는 한다. 비린맛이 있어 식감이 별로이기에 해파리냉채에 주로 쓰는 건 '숲뿌리해파리'이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해 여름, 해파리가 다량으로 출몰하여 각종 해수욕장에서 골머리를 앓았다. 수온이 높을수록 활동을 잘하는 아이들이라 노무라입깃해파리들이 떼로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해파리가 많아졌다고 우려하는 기사를 썼다.
10월 강릉으로 난파선 다이빙을 간 J강사는 난파선의 좁은 길을 통과하다가 길을 막은(사실은 갇혀버린) 해파리를 만나 공포에 질리기도 했다. 공간이 좀 더 있었기에 망정이지 좁은 통로였으면 꼼짝없이 돌아가야 했다.
https://youtu.be/L7BKnHREAK8?si=fnvGWW8UDK9kBXv-
온도가 따뜻할 때만 활개를 치는 노무라입깃해파리라 동해에서 10월에 등장하는 것은 걱정할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수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80년대보다 무려 2도가 높아져 바다의 생태계도 많이 달라졌다. 사과의 재배지가 대구에서 강원도로 올라간 것처럼, 바다도 마찬가지. 제주도에 살고 있던 친구들이 동해에서 종종 보인다. 노무라입깃해파리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해파리는 지느러미가 없기 때문에 목표를 정해서 다닐 수 없다. 그저 해류를 따라다닐 뿐이다. 위, 아래의 수직운동을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결국엔 해류가 해파리의 갈 곳을 정한다. 차가워지면 해파리도 한 해의 삶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계속 살고 있는 건 지구온난화 덕분이다.
흔들흔들 해류에 몸을 맡기는 해파리처럼 인간도 그렇게 살면 좋을 텐데. 아등바등 무언갈 위해 살아가다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독성 있는 해파리를 만나고 또 이를 걱정하고 퇴치한다고 애를 쓴다.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해류에 떠밀려 닿을 것만 같은 노무라입깃해파리가.
그리고 인간의 기형적인 산업활동이.
<출처>
거의 모든 것의 바다(박수현)
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에디스 위더)
https://youtu.be/rXkOPv3wVZw?si=zaeqPMqxvj4FWiVm
사진제공 : 이소영다이버, 조민지다이버, 진영삼강사